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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의 세계화가 빚어낸 허상[culture critic] 케이팝의 세계화는 어떻게 한국의 비참함을 윤색하는가
윤광은 | 승인 2019.12.12 13:28

[미디어스] 방탄소년단은 국내외적으로 묘한 양면 구도에 놓여있다. 북미에서는 정체성 정치의 흐름 속에 새로운 가치를 대변하는 문화적 아이콘으로 발명되었지만, 글로벌 스타의 위상이 역수입된 한국에서는 나라를 빛낸 영웅, 흙수저 기획사의 자수성가라는 오래된 가치의 화신으로 추앙받는다. 아이돌 문화에 우호적이지 않은 남성 여론조차 방탄소년단을 영웅시한다. 국가주의적 자긍심과 동양인의 인종적 위상을 넘어 우상이 된 이들을 향한 동경심이다. 방탄소년단은 대외적으로 진보적 가치에 올라탄 반면, 보수적 가치가 주류인 국내 여론을 의식하고 실망시키지 않아야 하는 딜레마에 있다. 올해 발표된 앨범 ‘MAP OF THE SOUL : PERSONA’의 타이틀곡을 보라. 사회의 마이너를 호명하는 듯한 '작은 것들을 위한 시'란 제목이지만, 가사는 사랑 노래의 문법을 취한 팬송이다. 그들은 공적 주제에 대한 참여를 거절하고 팬들과의 관계 안에 머물 것을 천명한다("세계의 평화 no way, 거대한 질서 no way, 그저 널 지킬 거야 난 boy with love"). 여기서 '작은 것'이란 공적인 것의 거창함의 반대말로서 사적인 것인 셈이다. 향후 방탄소년단의 행보에 관해 궁금한 것은 그들이 이 딜레마 위에서 어떤 음악적·사회적 걸음걸이를 걸을 것이냐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도 존재 자체로 사회에 이로움을 주고 있다. 한국을 잘 알지 못하던 외국인들, 한국에 틀에 박힌 편견을 갖고 있던 외국인들에게 나라 이름을 알리는 건 물론 '매력적인' 한국인의 모습을 전시하고 있다. 어느 한국계 미국인 유튜버가 말했었나.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북미에서 동양인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 이미지를 재생산했지만 방탄소년단은 서양인과 다를 바 없이 멋있는 존재로 유행하고 있다고. 방탄소년단의 이미지는 이미 북미에서 선행한 PC 트렌드, 아시안 컬처 선호의 반영이기도 하지만, 그들과 같은 한국인 나아가 동양인들에게 다시금 반영될 수 있다. 국력과 피부색이 다른 나라 사람들 앞에서 가슴을 펴고 행동하도록 우산을 씌워주는 일과 같다. 좀 더 직접적인 예시를 들면, 미국에서 살아가는 동양인 아이들이 학교에서 인종 차별을 겪는 대신 파란 눈의 급우들과 방탄소년단을 소재로 대화를 나누도록 이끄는 효과가 있다. 이건 틀림없는 범국가적 차원의 공익적 기여다. 비록 방탄소년단의 활동 목적은 사적 영리 활동이지만, 한국인 뮤지션이 빌보드에서 이룬 초유의 성취는 존중해야 하고, 그들에게 유무형의 도움을 입게 되는 사람들이 있으니 박수를 쳐도 아깝지 않다.

세계적 케이팝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지난해 10월 미국 뉴욕의 시티필드에서 '러브 유어셀프'(Love Yourself) 북미투어의 대미를 장식하는 피날레 공연을 하고 있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런데 방탄소년단이 '국격'을 높였다, '국위 선양'을 했다는 반응은 난감하다. 국가의 격과 위상은 한 나라를 알려주는 수준과 평판이다. 극소수 국민이 해외에서 뭘 한다고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국가 자체의 수준, 사회상이 변화해야 바뀌고, 사회 전체가 노력하고 스스로 일구어야 한다. 국격은 한국이란 나라에서 보다 정의로운 원칙이 관철되고 더 많은 사람이 평등하고 윤택하게 살며 서로를 존중하는 관습이 자리 잡을 때 자연스레 올라간다(사실 그런 나라에 살고 있다면 딱히 국격 같은 거에 기대지 않아도 자신이 사는 곳에 자긍심을 가질 것 같다). 실제로 달라진 건 없는데, 방탄소년단 덕에 서양인들이 한국을 남다르게 봤다고 국격이 오른다? 그건 남의 시선에 자신의 존재 가치를 맡기는 자존감 결핍이다. 꼬집어 말하자면, 방탄소년단의 미국 진출에 열광하는 분위기엔 서구를 향한 열등감과 동경심이 스며 있다.

이건 케이팝의 (재)세계화와도 밀접한 논점이다. 케이팝은 점점 국경을 넘어 소비되고 제작과 유통에 참여하는 주체들의 국적도 다원화되는데, 케이팝을 한국이 낳은 국보처럼 배타적으로 소유하려는 심리도 함께 일어선다. 사람들은 케이팝이 세계지도에 점선을 남기며 행군하는 것을 자랑스러워 하지만, 그것을 세계인들과 서로 동등한 주체로 연결되는 기회보다는 어떤 문화적 지배력으로 이해하는 것 같다. 일례로 올해 JYP 엔터테인먼트는 일본과의 합작 프로젝트를 발표했는데, 케이팝 팬덤 사이에선 “왜 우월한 케이팝의 기술을 낙후된 제이팝, 사이 나쁜 일본에 퍼주려 하느냐.” 볼멘소리가 나왔다. 저들의 마음속에서 방탄소년단은 광개토대왕의 재림이고, 케이팝은 반가사유상이라도 되는 걸까? 더 우려스러운 경향으론, 케이팝의 북미 진출을 향한 열광 틈새로 엿보이는 동남아 케이팝 팬들에 대한 경시와 멸시가 있다. 이런 경향은 팬덤 커뮤니티 일각에서 맴돌고 있지만, 인종주의와 문화적 제국주의의 혐의를 부인할 수 없다.

방탄소년단의 성공 신화와 함께, 케이팝이 세계화됐단 말이 떠돈다. 이 말은 사실 틀렸다. 케이팝은 이미 세계화에 돌입한 상태였다. 벌써 십 년 전에 태국인과 중국인이 케이팝 그룹으로 데뷔했었고, 동아시아 각국은 물론 유럽과 남미에도 팬덤이 퍼져있었다. 방탄은 케이팝을 세계화한 게 아니라 북미에서 주류 아티스트가 되며 케이팝을 ‘재 세계화’한 것이다. 물론 글로벌 트렌드와 세계 문화시장의 중심, 지금껏 한국이 문물을 받아들이기만 하던 선진 음악산업의 나라에 케이팝 가수가 진출한 건 중요한 사건이다.

하지만 방탄소년단이 케이팝을 세계화했다는 수사, 북미를 곧 세계로 간주하는 환호 사이로 그 바깥의 국제 사회는 '세계'에서 부지불식간에 지워진다. 올 한 해 유수의 방송사들은 케이팝 글로벌 트렌드의 물살 위에서 노를 저었다. JTBC는 <Stage K>, 엠넷은 <유학소녀>란 방송을 기획했는데, 각각 세계 각국의 여성들이 케이팝 퍼포먼스를 통해 국가 대항전을 펼치고, 해외 케이팝 팬들이 내한해 한국의 문화를 배운다는 내용이다. 재미있는 건 참가자 대다수가 백인 여성이란 점이다. 백인 여성을 향한 성적 판타지가 스며 있는 건 둘째 치더라도, 케이팝 해외 팬덤에서 비중이 큰 동남아 팬덤이 지난 십 년 간 '백인' 팬덤의 몇 분의 일이라도 호명됐었나? 내 기억으론 그렇지 않다. 케이팝이 세계화되는 사이, 그것을 통해 바라보고 이해하는 세계는 오히려 협소하게 좁혀지는 역설이다. 케이팝의 세계화에 대한 열광은 한국인 마음속에 내면화된, 한국인 자신까지 포함된 인종적 권력관계와 서열의식의 반영이다. 한국적인 것이 북미에 인정받았다는 식의 담론이 만연한 사이 역설적으로 서구인과 아시안을 가르는 높낮이엔 더욱더 경사가 생긴다.

MBC 에브리원 예능프로그램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한국의 세계화는 지난 30년을 거쳐 새로운 챕터에 도착했다. 칠팔십 년대 한국의 정신 상태가 근대화의 후발주자로서 낙오되지 말고 세계를 쫓아가자는 것이었다면, 90년대엔 '한강의 기적'을 바탕으로 세계로 나아가 그 일원이 되자는 의욕에 차 있었다. 그 가시적 결과가 OECD 가입 같은 것이었다. 이젠 그 흐름이 거꾸로 뒤집혀 마침내 '케이의 문물'을 세계적인 것으로 전파하고 서구인들을 한국에 불러들이는 상황이 왔다. 혹은 그렇다고 믿는 환상을 자국인들이 열렬히 공유하고 있다. <윤식당>, <현지에서 먹힐까>, <스페인 하숙>처럼 세계에서 통하는 한국을 보여주는 방송의 난립이 그렇지 않은가. 말 그대로 외국인을 한국에 불러들여 '신세계'를 맛 보여주는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도 있다. 저 방송들의 본질은 한국을 접한 서구인의 표정을 가공하는 건데, 그들이 감탄하고 경악하는 조국의 '어메이징함'을 관음하는 자위행위에 가깝다. 방탄소년단은 그래미 시상식 공연, 빌보드 차트 성적, SNL 출연, 월드 투어, 미국 셀렙들의 팬 인증 등 거짓말 같은 '물증'으로 환상이 현실이라고 실증해주는 마술적 리얼리즘이랄까.

이건 국력의 팽창이라기보다 경제적 토대를 살찌우지 못하는 몇몇 문화산업과 스마트폰 시대가 일으킨 이적이다. 국내에서 20년 간 과잉 축적된 IT 인프라와 콘텐츠가 유튜브와 SNS 시대를 만나 밖으로 터져 나갔고, 모바일 스트리밍이 세계를 광대역으로 연결한 시대에 경쟁력을 발휘했다. 많은 사람이 방탄소년단 글로벌 성공의 한 요인으로 SNS와 그를 통해 자생적으로 활동하는 팬덤을 꼽던데, 그 역시 이 현상의 반영인 셈이다. 하지만 유튜브와 케이블 방송을 아울러 전방위적으로 전도되는 ‘케이 문화’의 내용물이 떳떳하고 아늑하기만 할까? 나아가 그것이 국내에 얼룩진 비참함을 세탁하는 표백제로 쓰이고 있진 않을까? 불닭볶음면의 가공할 매운맛처럼 외부인의 시선으로 원시화된 한국의 일상 문물, 외모 지상주의와 열악한 여성 인권 위에 세워진 '케이 뷰티 산업', 십대 연습생들의 나날을 담보로 구축된 '케이팝의 군무'를 맘 편히 자랑스러워해도 되는 걸까. 한국적인 것이 세계의 중심에서 부흥한다는 환상 뒤꼍에서, 한국의 실업난과 자살률, 차별과 혐오는 사그라들지 않는다.

윤광은  https://brunch.co.kr/@mcwanna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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