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MBC에게 정체를 밝히라고 주장한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MBC는 KBS처럼 수신료로 운영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SBS처럼 민간기업이 소유하는 방식도 아니다. MBC의 대주주는 방송문화진흥회(70%)와 정수장학회(30%)이다. MBC를 공영방송이라고 하기도 그렇고 민영방송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이유이다. 이도 저도 아닌 MBC에게 이명박 정부의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정명(正名; ‘이름을 바로 잡는다’는 의미로 사용)을 요구한 적이 있다. 말하자면 MBC 스스로 공영방송인지 민영방송인지 선택하라는 압력이었다. 사실 내심 민영방송이 되기를 바랐을지도 모른다.

최근 방송통신위원회의 ‘공민영방송 개편안’이 공개되었다. 올해 4월부터 운영한 방송제도개선 추진반의 연구결과로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적잖이 논란이 되고 있다. 여러 안을 담고 있지만 핵심은 두 가지이다. 첫째, 유료방송을 지상파방송과 함께 묶을지, 인터넷사업자인 OTT와 동일하게 다룰지의 문제이다. 둘째 방송을 공영방송, 공공서비스방송, 민영방송 세 영역으로 구분한다는 것이다. 공영방송과 민영방송의 중간영역으로 공공서비스방송(PSB)을 둔 것이 특징이다.

방송사는 공공서비스방송이나 민영방송 중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고 한다. 방송사 스스로 공공서비스방송임을 자처하면 그에 맞는 공적 책무(규제)와 공적 재원(지원)을 정한다는 것이다. 외형적으로 보면 방송사에게 선택과 책임이라는 자율권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그럼에도 이번 정책은 자율이 아니라 선택의 강요로 비춰진다.

우선 공공서비스방송의 실체가 없다. 공공서비스방송이 공영방송과 민영방송의 중간지대라면 여기에 해당하는 방송은 사실 성격이 모호한 MBC밖에 없다. 만약 MBC가 민영방송을 선택한다면 공공서비스방송 개념을 애써 도입할 필요가 없게 된다. 공영은 공영, 민영은 민영, 국영은 국영이라고 하면 된다. MBC가 반대의 선택을 한다면 공공서비스방송은 다름 아닌 MBC이다. MBC를 공공서비스방송이라고 부르든 ‘방송문화진흥회가 최다출자자인 방송사업자’라고 부르든 큰 차이가 없다. 명칭이나 분류를 위한 분류는 중요하지 않다.

김빠지는 얘기지만 이번 안대로라면 MBC는 민영방송 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게 합리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공공서비스방송에 추가로 국악방송, 국정홍보방송과 같은 국영방송까지 연계할 가능성도 회자되고 있다. 그렇다면 MBC가 국영채널과 함께 공공서비스방송에 남을 것인지, SBS와 함께 민영방송으로 묶일 것인지 선택의 문제이다. 그런데 공적 재원을 어마어마하게 투입할 것이 아니라면(사실 가능하지도 않다) MBC가 국영방송과 함께 남을 이유가 없다. 많이 돌아왔지만 결국 MBC에게 민영방송을 선택하라는 주문과 다르지 않다. 자율이 아니라 선택 강요로 보이는 이유이다.

영국의 공공서비스방송 제도는 이번 안과 취지가 다르다. 공영과 민영을 구분하기 위한 개념이 아니라 통합하는 개념이다. 공공서비스방송은 민영이든 공영이든 지상파방송을 의미한다. 국민들이 원하는 방송서비스를 지상파방송(공공서비스방송)이 수행하도록 하고 대신 재원이 가능한지 항상 살펴본다는 게 원리이다. 따라서 공공서비스방송은 방송사가 선택할 사안이 아니라 정부나 규제기관이 선택할 제도이다.

의견수렴과정 중이니 방송통신위원회의 향후 공공서비스방송 정책은 많은 여지가 남아 있다. 사실 우리가 영국의 공공서비스방송 제도를 꼭 도입할 필요는 없다. 다만 공공서비스방송 제도를 도입할지 말지는 규제기관이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책임감 있게 채널범위, 공적 책무의 명확성, 공적 재원의 구체성 등을 먼저 제시해야 한다. 사업자들에게 희미한 안갯속 선택을 강요한다면 결국 공공서비스방송 제도를 도입할 의도는 없는 거나 다름없다.

그나저나 MBC가 공영인지 민영인지는 꼭 그렇게 구분해야 하는 걸까. 방송과 통신이 허물어지는 마당에 무슨 대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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