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입니다. 동남권 신공항 문제는 뜻밖에도(!) 이명박 정부의 운명을 '레임덕'으로 이끄는 사건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4.27 재보선 결과에 따라 한국 정치의 소용돌이는 보다 빠르고 강하게 찾아올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미 도래한 그리고 곧 도래할 '정치의 계절'을 맞아, <미디어스>가 새로운 정치칼럼을 선보입니다. '우리 시대의 큰 스승'이란 칭호로 유명하고, 온라인에서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상한 모자'님이 주 1회 이상, 되도록 자주 정치 현안에 대한 비평을 게재합니다. 도래한 '정치의 계절', 가장 신선한 '정치적 감각'을 맛보시길 바랍니다.

▲ 이명박 대통령이 1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정부의 동남권 신공항 건설 백지화 결정에 대한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연합뉴스
소위 동남권신공항 문제로 정국이 어수선하다. 오랜 기간 밀양시와 부산시 간의 갈등을 증폭시켰던 이 문제는 이명박 정부가 공식적으로 임기 내에 사업을 추진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하면서 가장 뜨거운 중앙정치 이슈가 되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정치논리보다 경제논리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으나 이 사안은 이미 지역에서 갈등을 불러일으킬 때부터 정치적 문제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즉, 이명박 정부가 어떠한 정치적 예상도 없이 이러한 거사를 실행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하고 순진한 생각이다.

정국이 어떻게 요동치게 될까? 소위 친이, 친박 모두 겉으로는 '확전 자제'를 이야기하고 있으나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는 상황일 것이다. 동남권신공항 백지화로 인해 가장 심한 타격을 받은 지역은 밀양시와 인근 지역이다. 부산시의 경우 동남권신공항 사업이 백지화되더라도 김해공항의 과부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당위가 남아 있기 때문에 김해공항을 확장하거나 가덕도로 확장 이전하는 방법을 여전히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밀양시는 다르다. 한껏 기대감을 높여 놓았는데 순식간에 바람 빠진 풍선 신세가 된 것이다.

여기에 고려해야 할 것이 또 한 가지. 밀양과 가덕도의 대결은 지역적 입지 조건 덕분에 대구경북권과 부산경남권의 대결로 비화된 측면도 있다. 박근혜 의원은 대구경북 지역에 정치적 기반을 가지고 있다. 이미 과학비지니스벨트 문제로 곤란에 처한 상황에서 대구경북에서까지 국책사업 유치 논란에 발목을 잡혀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 있었을 것이다. 박근혜 의원과 소위 친박계 의원들이 청와대도 예상하지 못했을 만큼(?) 세게 나오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때문에 이후에도 친이, 친박 간의 갈등은 계속해서 증폭될 것이다. 이미 상당부분 헝클어진 과학비지니스벨트 문제를 매듭지어야 하고 이러한 과정에서 이재오 특임장관 같은 사람들이 지역 간의 갈등 상황을 핑계로 행정구역개편 등을 연동한 개헌 논의에 다시 불을 지피려 할 수도 있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언론과 대중은 박근혜 의원의 입을 쳐다본다. 상황은 계속해서 꼬여만 갈 수밖에 없다.

▲ 31일 오전,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신공항과 관련한 입장을 밝히고 있는 모습ⓒ연합뉴스
하지만 동남권신공항 문제가 이러한 정치적 모략의 차원에서만 고민거리를 던져주는 것은 아니다. 이명박 정부의 결정에 대한 '건전한 비판'을 보도록 하자. 이러한 비판은 크게 두 가지 버전으로 요약할 수 있다. '경제성이 없는 국책사업을 선거 때 표를 의식하고 마구 공약하는 것은 비윤리적이다'라는 것과 '국민과의 약속을 권력을 획득하고 나서 헌신짝 버리듯 하는 것은 비윤리적이다'라는 비판이 그것이다. 비교적 국책사업과 관련한 지역개발이슈에서 자유로운 진보신당, 사회당 등의 진보정당도 (민주노동당의 경우는 약간 입장이 다른 듯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좀 더 생산적인 논의를 위해서는 이러한 갈등의 다른 측면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 문제는 이른바 '지역균형개발정책'이라는 의제와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균형개발정책이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국책사업의 경제적 효과를 다소 희생하며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지역균형개발정책이라는 의제 자체가 수도권과 분리된 지역거점을 형성하고 이를 중심으로 독립된 광역경제권을 형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나 기업의 이전, 택지지구의 형성 등이 선제적으로 집행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보수양당이 호남과 영남에 주요한 정치적 기반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식의 사업은 상대적으로 큰 걸림돌 없이 추진되어 왔다. 하지만 수도권에 주요한 기반을 갖고 있는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고 기존에 추진되었던 지역균형개발정책에 기초한 국책사업이 하나 둘 실패로 귀결되면서 이러한 방식의 사업에 반대하는 흐름이 표면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경기도의 GTX사업 같은 것이 그렇다. GTX는 단지 서울을 관통하는 철도망을 확보하는 것에 그치는 사업이 아니다. 이 사업은 서울, 경기도 등의 수도권을 커다란 하나의 광역경제권으로 묶어 집중적으로 발전시키자는 '메가시티 리전(Megacity Region)'이라는 정책적 전망을 전제하는 것이다. 이들의 정책 논리를 다시 설명하자면 현재 수도권으로도 세계적 수준에서 다른 도시들과 경쟁하기 힘들기 때문에 수도권을 집중적으로 더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이것은 경쟁을 해서 소수를 발전시키면 자연적으로 다수가 혜택을 보게 된다는 극단적인 시장주의 논리와 사실상 동일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은 시장에서도 그렇듯 필연적으로 상대적 불평등과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킨다.

만일 동남권신공항 문제가 지역균형개발정책의 실패라면 우리는 위에서 언급한 수도권중심의 개발정책이 옳은 것인지 여부를 판단해야 할 수도 있다. 만일 동남권신공항 문제가 지역균형개발정책의 총체적인 실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면 지금까지 진행된 지역균형개발정책의 어떤 부분이 잘못되었는지를 판단해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동남권신공항문제가 수도권 중심의 개발정책과 지금까지 집행되어 온 지역균형개발정책 모두의 실패라면 대안적인 지역개발정책은 무엇인지를 논의하고 대안을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물론 나와 같은 범인에 지나지 않는 사람들이 접근할 수 없는 곳에서 학식이 높으신 분들이 이미 관련 연구를 많이 진행해놓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연구를 많이 했더라도 입법을 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 정쟁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에 놓여 있는 정치권에서 이러한 차분한 논의가 생산적으로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언제나 시기상조인 것 같다.

키보드 워리어, 직업적 활동가, 아마추어 기타리스트. 전 진보신당 경기도당 정책국장.
<레닌을 사랑한 오타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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