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시침이 9, 분침과 초침이 12를 가리키는 순간, “땡~ 전두환 대통령은…” 어김없이 9시 뉴스가 시작됐다. 머리숱 적은 지도자의 오늘자 소식이 지나자, 희뿌연 최루탄 연기 자욱한 아스팔트 도로 위에서 화염병을 던지고 난 대학생들이 쇠파이프를 들고 또래의 전투경찰과 맞섰다. 몇 장면 더 흘러 갈색 두루마기를 입은 중년 남성이 등장했다. 호남 출신 정치인 김대중 씨였다.

찬바람이 불자 마을 큰 벽마다 대통령 선거 포스터가 붙었다. 군부대가 많은 동네라서인지는 몰라도 기호 1번 노태우를 지지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정권이 바뀌면 군이 가만있지 않을 거라고 수군대는 사람도 있었다.

“나 이 사람 보통 사람입니다. 믿어주세요”

장군 출신 집권당 후보의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개그맨들이 성대모사하고 곧 꼬맹이들도 따라했다.

13대 대통령선거 열기가 막바지로 치닫던 1987년 12월 어느 주말, 군인아파트와 군인관사에 아이들만 남았다. 어른들은 군인버스를 타고 여의도 유세장에 갔다. 그날 느지막이 돌아온 부모는 아들 형제에게 하얀 비닐봉투를 건넸다. 점심때 받은 김밥 도시락과 우유, 그리고 물병이 담겨 있었다.

같이 딸려온 얇은 선거 책자에 자연스레 손이 갔다. 국민학교 4학년에 불과했던 나에게 다른 건 다 잊혀졌지만 컬러로 된 홍보만화만은 어렴풋이 기억에 남았다. 노태우(盧泰愚)에서 이름 두 자를 ‘클 태’, ‘어리석을 우’ 즉, ‘크게 어리석은 자’로 풀이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 재헌 씨가 이달 23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아 윤상원 열사 묘소 앞에서 무릎 꿇고 있다. '5·18 피고인'으로 처벌받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직계가족 가운데 광주를 찾아 오월 영령에게 사죄한 이는 재헌 씨가 처음이다.(국립 5·18민주묘지 사무소 제공)

성인이 되서야 그 뒤에 숨은 의도를 알았다. 고전 장자(莊子)에 대지약우(大智若愚)라는 말이 있다. ‘크게 지혜로운 사람은 마치 어리석은 것 같다’는 뜻이다. 한자 ‘泰’와 ‘太’, ‘大’가 같은 의미로 섞여 사용되는 걸 이용해서, 태우(泰愚)와 대지약우(大智若愚)를 엮었던 것이다.

그는 결국 6공화국 첫 번째 대통령에 당선됐다. 88서울올림픽 개막을 선언했고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남과 북이 UN에 동시에 가입했으며 남북 사이에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가 만들어졌다. 나아가 한반도 비핵화를 공표했다. 소련 및 중화인민공화국과의 수교도 이뤄냈다. 그런 반면에 여소야대 정국에서 정치적 반대파를 용공으로 몰아 탄압했다. 공안정국 아래서 노동자와 학생들의 분신이 잇따랐다. 명지대생 강경대, 성균관대생 김귀정이 경찰진압에 목숨을 잃었다.

권좌에서 물러난 후 전두환과 함께 내란혐의로 기소되어 12·12 군사반란과 5·18 광주민주화투쟁 진압 주범으로 구속되었다가 2년 만에 특별사면 되었다. 전립선암을 앓던 그는 수술 이후 건강이 더 나빠져 지금은 거동은커녕 의사소통도 어렵다고 한다.

8월 23일에 그의 장남 노재헌 씨가 5·18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했다. 12월 5일에는 광주 남구 ‘오월 어머니집’에 방문해 1980년 광주항쟁 당시 고초를 겪은 분들과 가족을 잃은 분들에게 사죄했다.

‘지장보살본원경’에서 어떤 바라문의 딸은 악업을 지어 지옥에 떨어진 어머니를 위해 집을 팔아 마련한 향과 꽃과 여러 가지 공양물을 부처님의 탑과 사원에 올리고 간절히 기도한다. 딸아이의 정성이 빚어낸 공덕으로 모친은 마침내 천상에 태어난다.

밝은 세상 새 부처님은 전각 안에 모신 불상보다는 먼저 이웃과 가족 그리고 고통 받는 이들을 살아있는 부처로 알아 받들어 불공하라고 말씀하신다.

노재헌씨가 아버지 대신 5·18 피해자들 앞에서 보여준 참회가 진심이라면 그것이 설사 노 전 대통령의 뜻과 어긋난다 할지라도 산 채로 지옥생활하고 있는 부친에게 자식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효도가 아닐까?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사죄하겠다"는 그의 마음에 경배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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