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들이 지나치게 화려한 세계만을 다루는 경향이, 최근엔 그 정도가 너무 강해지고 있다. 동시에 과거에 재벌드라마 반대편에서 중심을 잡아왔던 <전원일기> 같은 종류의 서민드라마는 점점 사라지는 추세다.

가장 최근에 인기를 끌었던 트렌디드라마인 <시크릿가든>은 백화점을 소유했으며 명품을 마음 내키는 대로 여자에게 선물해줄 수 있는 '왕자님'의 이야기였다. 보통 사람들은 벌벌 떨 법한 명품들이 여기에선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질 정도로 넘쳐났다. 작년의 '국민드라마'인 <제빵왕 김탁구>는 한 고아가 기업 오너 집안으로 들어간다는 이야기였다.

요즘 월화엔 <마이더스>가 방영되고 있다. 이 드라마는 첫 회에 주인공에게 건네진 1억 원짜리 수표를 클로즈업해서 시청자의 욕망을 자극했다. 드라마에서 명품이나 외제차, 고급 주택 등은 자주 나와도 돈이 구체적으로 제시되는 경우는 별로 없었는데 이젠 돈이 전면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돈이 만들어주는 주인공의 화려한 생활상이나, 한국 최고의 땅부자 가문 사람들이 누리는 사치스럽고 방탕한 세계가 세밀히 묘사된다.

수목엔 <로열 패밀리>가 있고 얼마 전까진 <마이 프린세스>가 있었다. <로열 패밀리>는 차기 대통령과 1대1 협상을 할 정도로 힘 있는 재벌가문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다. <마이 프린세스>에선 어느 날 공주가 된 주인공이 명품으로 둘러싸이는 모습이 연출됐다.

주말엔 <욕망의 불꽃>이 재벌가의 집안싸움을 그려줬다. <반짝반짝 빛나는>에서는 식당집 딸이 200억 대 자산을 가진 중견 기업인의 딸이 된다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여기선 여주인공이 명품 가방과 옷을 부여잡고 한껏 행복해하는 모습이 방영됐었다. <웃어요, 엄마>는 딸을 연예계 스타로 만들어가는 이야기다.

청소년 드라마마저

과거엔 주말드라마나 일일드라마가 소시민 가족의 따뜻한 정을 주제로 할 때가 많았는데 요즘엔 막장드라마로 얼룩지는 추세다. 화려하거나, 자극적이거나 아니면 둘 다인 것이다. 요즘 화제를 모으는 일일드라마인 <웃어라 동해야>도 주인공이 부잣집 자식이 된다는 화려한 코드와 악녀 등 막장 코드를 모두 장착하고 있다.

과거엔 청소년의 성장을 차분하게 그려가는 드라마들도 항상 있었다. 반면에 요즘엔 청소년 드라마마저도 <꽃보다 남자>나 <드림하이>처럼 화려한 세계를 그린다. <꽃보다 남자>에선 세탁소집 딸인 여주인공마저 고가의 의류나 소품을 착용해 화제가 됐었다.

이런 추세는 화려한 세상을 동경하고 화끈한 인생역전을 꿈꾸는 시청자들의 욕망이 투영된 것이다. 동시에 TV에서 그려지는 이런 모습들이 다시 시청자들의 욕망을 자극해, 더욱 그런 추세로 갈 수밖에 없는 조건을 만드는 악순환을 형성하게 된다.

한국은 과거에 소비중심 사회가 아니었다. 1980년대에 이르러 조금씩 소비를 향한 열망이 살아나게 된다. 이때 처음으로 브랜드 청바지가 등장했다. 청바지라는 사용가치가 아닌 특정 브랜드를 향한 욕망이 소비의 대상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 특정 브랜드는 결국 보다 높은 계층의 표식으로 인식된다.

1990년대에 소비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때 10만 원이 넘는 브랜드 청바지가 인기를 끌고, 1999년에 이르면 세계에서 가장 비싼 수준의 커피전문점이 한국에 등장한다. 이런 것들은 모두 보다 화려한 삶, 보다 우아한 삶을 상징하는 기호가 되었다. 사람들은 그러한 기호에 집착하는 이들을 일컬어 '된장남, 된장녀'라며 혐오하지만, 누구나 그러한 '된장질'을 원없이 해보길 열망하고 있다.

욕망의 교육

1990년대 소비의 시대를 열어젖힌 트렌디 드라마가 <사랑을 그대 품안에>였다. 이 작품은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특히 주인공인 차인표를 향한 열광이 하늘을 찔렀다. 차인표는 여기서 백화점 후계자로 등장한다. 이 드라마는 시원시원한 앵글로 백화점의 풍광을 계속 보여줬었다.

최근에 열광적인 반응을 얻은 <시크릿 가든>의 무대도 백화점이었다. 여기서 현빈은 백화점 명품들을 아무렇게나 집어 썼다. 재벌가의 욕망을 치열하게 그린다는 <욕망의 불꽃>에서, 욕망의 화신으로 등장하는 여주인공의 일터 또한 백화점이다.

이는 매우 상징적이다. 현대적인 소비의 욕망이 발명된 곳이 바로 백화점이기 때문이다. 19세기 중반 프랑스 파리의 백화점이 그 원형이다. 백화점은 당시 사람들이 충격을 받을 만한 화려한 건물을 지었다. 사람들은 물건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그 화려한 세계의 일원이 되려는 욕망으로 그곳에 갔다. 백화점이 욕망을 만들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전까지는 이런 식의 소비 욕망이 없었다. 없던 것을 만들어내려면 화려한 건물을 만드는 것 외에, 더욱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백화점은 대대적인 광고를 했다. 단순히 물건의 품질이 좋다는 광고가 아니었다. 그들은 소비자에게 '상류 중산층의 라이프스타일'을 교육했다. 그런 생활상을 동경하게 된 사람들은 드디어 사치품을 마구잡이로 사는 '현대인'이 되었다.

이런 식의 욕망 교육 기능을 이어받은 것이 바로 TV다. TV는 광고와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 등을 통해 시청자에게 욕망을 교육한다. 최근에 점점 화려해지는 TV 드라마들은 이런 교육 기능이 극에 달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시청자에게 점점 더 큰 욕망이 주입되는 것이다.

1980년대에 브랜드 청바지라는 욕망의 대상을 만든 것도 TV 광고였다. '산소같은 여자', '여자라서 행복해요'같은 광고는 사람들에게 산소같은 여자나 행복한 여자가 되기 위해선 무엇을 사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화려한 드라마들은 상류층의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는 동영상 교과서이고, 심지어는 서민의 모습을 다뤘다는 <내조의 여왕>마저 사실은 명품 카탈로그의 기능을 수행했었다.

예능에선 명품 가방에 대한 토크가 반복되며 여자들이 이런 것을 욕망하는 게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끊임없이 교육한다. 웬만한 TV 드라마들은 거의 다 외제차나 최신형 휴대폰을 향한 욕망의 전시장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형편이니 연예인들마저 외제차에 탐닉하다가 패가망신하는 일들이 종종 뉴스를 타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드라마들이 지나치게 화려해지는 것은 사회적 자해행위라고 할 수 있다. 지나치게 화려한 드라마는 욕망의 인플레이션을 초래하고, 증폭된 욕망은 다시 더욱 화려한 드라마를 만들도록 해 우리 모두를 욕망의 늪에 빠뜨릴 것이다. 욕망이 폭주할 때 그 누구도 행복해질 수 없다. 거대한 욕망은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갈망일 뿐이다. 화려한 드라마들에 대한 경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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