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교체기를 맞아 굵직한 미디어 관련 법안과 이슈가 출렁거리면서 언론 관련 현업단체와 시민단체의 움직임도 어느 때보다 분주하다. 특히 공영방송 KBS와 관련해 수신료 인상, 사장 거취 문제, 국가기간방송법, 2TV 민영화, 국공영 채널 통폐합 등 갖가지 이슈들이 정치권을 비롯한 여러 집단의 이해관계와 맞물리면서 방송의 정치적 독립과 공영성 문제는 한바탕 몸살을 앓을 상황에 처해 있다.

무엇보다 KBS의 편파방송과 방만경영을 강도높게 문제 삼으며 정연주 사장 체제를 공격해 온 한나라당이 집권에 성공했고 직간접적으로 KBS에 영향력을 뻗치며 길들이려 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일단 그 첫번째 대상은 정연주 사장일 가능성이 높다. 각 언론에서도 이명박 정부의 취임을 앞두고 자천타천 거론되는 차기 KBS 사장 후보 면면을 보도하는 등 이미 정 사장 퇴진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사장 문제, 구조조정, 민영화, 통폐합 등 예측하기 힘든 파도에 대비해야 하는 KBS 내부의 긴장감도 점차 고조되고 있다.

▲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박승규 본부장 ⓒ서정은
급박하게 돌아가는 현실에서 '외풍'을 막아내고 '내부 개혁'을 정비하는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할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본부장 박승규)는 지금 어떤 구상을 하고 있을까.

"언론과의 인터뷰, 사실 좀 부담스러웠다"

'반 정연주' '코드 박살' '복지 대박'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KBS본부 '박승규 집행부'는 지난해 전국언론노조(위원장 최상재) 회계부정 사태를 거치면서 언론노조 운영 방식과 규약 문제를 둘러싸고 언론노조 사무처와 심각하게 갈등 관계를 빚어왔고, 최근까지도 '언론노조개혁협의회'를 통한 독자노선을 걷고 있다.

보수적인 성향으로 평가받는 현 집행부는 '코드방송' '적자경영' 등 정연주 사장에 대한 비판 지점에서도 한나라당과 일정하게 코드를 맞추며 움직이지 않겠느냐는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설 연휴를 앞둔 지난 4일 KBS본부 사무실에서 만난 박승규 본부장은 인터뷰 중간중간 복잡한 심경을 내비쳤다. 단어 하나하나에도 신경이 쓰인다고 했다. 언론노조와의 불편한 관계도 그렇고 '한나라당과 밀착된 노조'라는 시선에도 부담을 느끼는 듯 했다.

그래서인지 한나라당과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는 "KBS 출신 선배들 말고는 아는 사람도 없고 일부러 더 만나지 않는다"며 강하게 부정했다. "지금까지는 정 사장과 노무현 대통령의 언론 정책을 비판했다면 이제 싸움의 대상은 한나라당과 새 정부가 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한편 박 본부장은 정연주 사장의 경영실패에 대한 비판과 책임 부분에 있어서는 단호한 '입장'을 취했다. '사장 스스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라'는 요구는 구체적인 퇴진운동으로 옮기지 않았을 뿐 그동안 노조의 일관된 주문이었다고 거듭 강조했다. 박 본부장은 그러나 차기 사장 문제와 관련한 민감한 질문에는 내부 입장이 정해지지 않았다며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1시간 가까이 진행된 이날 인터뷰에서는 수신료 해법과 사장 문제 등 KBS 관련 현안을 위주로 차기 이명박 정부의 미디어정책에 대한 평가, 그리고 언론노조와의 관계 정상화에 대한 입장을 차례로 들어봤다.

- 차기 이명박 정부에서 밝히고 있는 각종 미디어 정책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나. KBS에도 상당한 변화의 바람이 닥칠만한 요소들이 적지 않은데.

"전체 미디어 정책과 KBS 문제, 이 두 가지 측면에서 봐야 한다. 일단 이명박 정부가 국공영 채널 통폐합이나 MBC·KBS 2TV 민영화를 거론할 수 있는 근거는 있다고 본다. 순수한 의미의 공영방송 구조가 많이 왜곡돼 있는 상황에서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차원으로 공영방송 민영화나 통폐합 문제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외부에서 사물의 한 면만을 보고 접근한다는데 있다. KBS와 MBC의 역사와 특수성이 무시되고 있는 것이다. 시장 논리든 구조 개편이든 공부를 하고 나서 논의를 해야 한다. 이명박 당선자와 인수위 주변에서 방송정책을 말하는 사람들이 과연 전문성이 있는가. 방송 분야의 비전문가가 방송구조 개편을 논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박승규 본부장 ⓒ서정은
또한 신문방송 겸영으로 조중동 등 메이저 신문들이 방송에 진출할 경우 독과점 폐해가 생긴다. 지상파와 지역방송은 물론이고 YTN 등 보도전문채널도 악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방송통신위원회의 경우도 대통령 직속 기구는 안된다고 보고 있다. 임명 구조 역시 세명 내지 네명을 대통령이 좌우할 수 있는 구도로 간다면 결국 권력자가 의도하는 대로 방송정책과 규제를 끌어갈 수 있는 상황을 초래한다. 그렇게 된다면 지금 방송위원회의 기능에서 정치적 편향성이라던가, 권력이 하고 싶은 데로 할 수 있는 구도가 더 나빠지면 나빠졌지 발전할 수 없다.""

"인수위 주변에 과연 방송 전문가가 있나? KBS 역사, 특수성부터 공부해야"

- 공영방송 구조가 왜곡돼 있다는 것은 어떤 측면인가.

"공영방송의 정상적인 재원구조를 확립하려면 27년째 동결된 수신료를 단계적으로 현실화했어야 했다. 그게 안되면서 광고를 통해 재원을 충당할 수 밖에 없었고, 결국 'KBS 2TV는 내용상 상업방송인데 왜 공영방송이냐'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2TV의 재원구조가 실질적인 공영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바로잡을 필요성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영화가 대안일까? 이것은 다른 차원으로 접근해야 한다. KBS의 역사를 볼 때 1TV만으로 공영방송의 기능을 담당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NHK, BBC 등 일본과 독일의 공영방송을 봐도 최소한 2개 이상의 채널을 갖고 있다. 정보·교양, 가족·오락채널 중심으로 조화를 이루는 게 이상적이다. 이러한 맥락을 무시한 채 2TV의 광고 비중이 높으니까 민영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KBS의 특수성을 무시한 것이다."

- KBS의 특수성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KBS가 80년대 통폐합되고 나서 국영방송이라는 이미지 속에 국민들의 인심을 받지 못했다. MBC와 경쟁하던 시절엔 시청률이 2분의 1 내지 3분의 1에 불과했다. 그런데 2TV와 결합하면서 2TV의 오락적 기능을 발전시켰고 여기에 과거 KBS의 뉴스정보 채널 기능을 합치면서 시너지 효과를 냈다. 재미 있으면서 유익한 정보를 주고, 상업적이지 않고 광고에 얽매이지 않는 방송을 해보자는 노력이 계속됐고 현재 가장 모범적인 공영방송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이런 역사를 무시한 채 민영화 이야기를 한다면 한국이 자랑할 수 있는 공영방송 KBS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방송구조 개편을 논의하려면 현업에서 오래 일한 사람들, KBS·MBC의 역사와 의미를 충분히 아는 사람들과 해야 한다. 정권을 잡았다고 해서 KBS와 MBC에 대한 막연한 선입견을 갖고 이렇게 저렇게 하겠다고 나서면 안된다. 이명박 정권의 미디어 정책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현업자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 KBS를 중심으로 KTV와 아리랑TV 등 국공영 채널을 통합 운영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인가.

"한마디로 절대 반대다. 국영과 공영은 성격이 다르다. 공영방송은 국가에서 독립돼 국민들 시각에서 방송을 하는 것이다. 80년대 통폐합 이후에 여러 투쟁과정, 현업자들의 노력, 노조를 중심으로 한 민주화 투쟁을 거쳐 공영방송의 이미지를 만들어 왔는데 다시 국영과 합친다면 공영적인 이미지가 많이 훼손될 것이다. 또한 서로 다른 방송채널을 합치면 공영성을 비롯해 인적자원의 수준이나 능력도 하향 평준화될 수 있다.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KBS 예산 편성에 대한 국회 승인은 정치적 독립 가로막아…절대 못 받는다"

- 한나라당이 집권하면서 수신료를 재원으로 하는 기간방송과 그렇지 않은 민영방송을 따로 규제하는 '국가기간방송법'이 다시 거론되고 있는데.

"국가기간방송법에 수신료 관련 해법이 담겨있다는 점에서는 관심도 있고 기대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국회의 예산승인권은 어떤 경우에도 받을 수 없다. 국회가 방송의 예산 문제를 간섭하게 되면 정치권으로부터 절대로 독립할 수 없다. 일본 NHK의 사례가 단적으로 보여준다. 일본 국회에 대해서는 어떤 비판도 하지 못한다. 심지어 국회의원이 프로그램 편집에 간섭하고 그 문제로 사장이 사임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우리도 그 이상의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방송사가 마음대로 돈을 쓰지 못하게 감시해야 한다는 주장이지만, 돈 문제는 자율성과 직결되기 때문에 다른 식으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국회에서 예산 승인권을 갖게 되면 일본 사례가 실증적으로 보여주듯 언론의 독립성이 절대로 보장될 수 없다.

국가기간방송법의 구체적인 내용은 좀 더 자세히 봐야 하지만 상당 부분 수용할 부분도 있다고 본다. 경영위원회 구성을 어떻게 할 것인지, KBS와 EBS의 위상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 사장 임명 문제는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 등을 살펴봐야 한다. 지금으로 볼 땐 경영위원 9명을 대통령이 임명하고, 경영위원회에 사장 임명권을 준다는 것인데 이 경우에도 독립성 부분은 논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 지난해 11월 8일 KBS 본관 앞에서 열린 조합원 비상총회에서 '수신료 현실화'와 '무능 경영진 규탄' 구호를 외치고 있는 박승규 KBS본부장 ⓒ서정은
- 이번 임시국회에서 수신료 인상안이 처리되지 않으면 자동 폐기된다. 해법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2월 임시국회에서 수신료 인상이 통과될 수 있도록 우리도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 할 것이다. 새 정부는 국가기간방송법을 통해 수신료를 인상하고 KBS에 맞는 공영방송 재원구조 만들겠다고 하지만 이와 별도로 지금 KBS가 구조적으로 적자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수신료 인상안 처리는 시급하다.

수신료 문제는 당리당략적인 차원에서 진행되면 안된다. 그렇지만 한 정당이 어떤 이유를 들어서 반대하면 통과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번에 처리가 결국 안된다면 정연주 사장의 편파성 문제가 영향을 미쳤다고 봐야 한다. 사실은 작년에 수신료 인상을 했어야 했다. 올해로 넘어오는 순간 대단히 힘들다는 것은 누구나 예상했던 바다.

또 월 1500원인 수신료를 4천원으로 올리는 것은 임시방편이다. 물가연동제를 한다던가 수신료 비중을 대폭 높이는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해결이 아니기 때문에 금방 몇년 안에 똑같은 문제가 생긴다. 회사는 일단 4천원으로 올리면 4년 정도 버틸 수 있고, 버티는 동안에 10년을 준비하면 된다고 하지만 낭만적인 생각이다.

최종적으로는 KBS 재원구조에서 수신료 비중을 80%까지 끌어올리는 구도로 가야 한다. 지금은 수신료 비중이 40% 밖에 되지 않아서 1500원을 인상해도 잘해야 60% 수준이다. 많은 선진국가들을 보면 80% 전후다. 수신료에 대한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고 올해를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이제와서 KBS 사장 자리 걸고 수신료 인상? 시기 놓쳤다"

- 수신료 인상과 정 사장 퇴진을 맞바꾸는 이른바 '빅딜설'이 계속 제기되고 있는데.

"여당 쪽에서는 수신료 인상을 찬성했지만 한나라당은 절대 안된다고 했다. 주된 이유는 KBS가 편파방송을 했고, 정연주 사장이 있는 동안은 KBS를 공영방송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 노조에서도 정연주 사장에게 작년부터 말해왔다. '내가 죽고 조직을 살리겠다'는 자세를 보여달라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현재의 지형은 달라졌다. 한나라당은 이미 국가기간방송법을 통한 수신료 해결이라는 또다른 복안을 제시했기 때문에 '늦었다'고 말할 가능성이 있다. 이미 대선도 끝난 마당에 정 사장이 자리를 던진다고 해도 '어차피 당신의 시효는 다 됐으니 작년 9월에 나가는 것과 지금 나가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고 말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사장의 자리를 걸고 수신료를 이야기하는 것은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 지난달 노보에서도 "경영진이 수신료 인상에 성공하지 못해 경영 위기를 해소할 대책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경영진으로서 최소한 그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열어주는 등 책임있는 자세를 보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책임있는 자세'란 수신료 인상에 실패할 경우 사장이 물러나야 한다는 소리인가.

"정 사장의 지난 4년간 경영 성적표를 볼 때 KBS 사장감이 아니니 나가달라는 요구이고 이것은 시종일관 노조의 같은 주장이었다. 수신료와 관련해서도 회사는 지난 1년간 '수신료를 통해 적자구조에서 탈피하겠다, 해결책은 그것밖에 없다'고 말해왔지만 결국 가장 큰 걸림돌은 정 사장 자신이었다. 어떻게 보더라도 회사를 이끌고 갈 능력이 안된다. 수신료 문제는, 정 사장이 KBS 조직을 위해 떠나야 한다는 노조의 기존 입장에 명분이 하나 더 붙은 것 뿐이다.

우리는 지난 1년간 모든 에너지를 다 동원해 수신료를 올리자고 했고 회사는 수신료를 이유로 노조에 수많은 권리 자제와 포기를 강요했다. 수신료 문제로 작년에 노사가 내내 싸웠다. 실제로 임금을 올해부터 2% 올린다고는 하지만 작년 인상분은 비정규직을 위한 재원으로 내놨다. 회사의 적자도 이유지만 수신료 때문에 양보한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노조가 양보한 부분에 있어 경영진의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수신료 인상 실패하면 정 사장 스스로 책임지고 물러나야"

- 정권 교체기와 맞물리면서 KBS본부의 이런 입장은 여러가지 민감한 해석을 낳을 수 있다.

"그래서 조심스럽다. 우리는 정연주 사장 퇴진운동을 안했을 뿐이지 노조 집행부 출범부터 KBS 사장감이 아니라고 늘 말해왔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사장을 밀어낼 힘이 우리에게 없었다. 무리하게 연임을 시켰고 노조는 저지하지 못했다. 사장과의 싸움은 청와대와의 싸움이다. 청와대가 밑어붙이면 아무리 사장감이 아니어도 밀어낼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이 국면을 노조가 이용하는 측면도 있다. 상식대로 하자면 출범 때부터 퇴진운동을 했어야 하지만, 정권이 바뀌면 여당이 되든 야당이 되든 사장이 나갈 것이란 계산을 한 것이다. 그래서 퇴진운동에 에너지 낭비를 안했다. 그러나 논리적으로나 명분적으로 정연주 사장이 자격미달이라는 점은 여러가지로 주장해 왔다."

- KBS본부의 입장이 한나라당 논리와 일치한다는 점에서도 의혹과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정 사장에 대한 노조의 입장은 일관적이었는데도 마침 정권이 바뀌니까 한나라당의 논리와 일치한다는 주장이 더 나오는 것 같다. 분명히 말하지만 정연주 사장한테 나가지 말라고 하는 것이 KBS 독립성을 지키는 것인가? 거꾸로 생각해서 KBS 독립성을 위해 정 사장의 임기를 보장해야 하는가? 그건 아니다. 정 사장 자체가 독립적으로 임명된 사람이 아니지 않나.

이제부터 미래의 문제다. 정연주 사장은 정치적으로 임명됐고 낙하산 사장인 것이 분명하고 KBS 구성원이 원했던 사람이 아니다. 지난 4년간 사장으로서 한 행동을 보면 대단히 정치적이다. 자신을 임명해 준 사람에게 편향된 프로그램을 만들고 여러 논란을 불러일으킨 사람이다."

"정 사장은 정권 바뀌면 어차피 나갈테니 퇴진운동에 에너지 낭비 안했다"

- 지난 KBS본부 선거에서 정연주 사장 체제의 '코드방송'을 강력히 비판했는데 아직도 코드방송이 문제라고 보는가.

"흔적은 남아있다. 정 사장이 <미디어포커스>와 <생방송 시사투나잇> 같은 프로그램을 직접 조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 생각과 비슷한 방송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 것 아닌가. <미디어포커스>는 프로그램 성격상 조중동과 보수를 공격하는 것이 주가 될 수 밖에 없다. <시사투나잇>도 사장과 같은 철학을 가진 PD들이 방송할 수 있는 여지를 열어준 것이다. 그런 프로그램을 만든 것 자체가 생각을 같이하는 소수의 사람들과 뜻을 같이해서 만든 것이다.

초기에는 직접 와서 격려도 하고, '이것은 내 프로그램이다, 정연주가 만든 프로그램이다' 하면서 특별대우를 했다. 내가 <미디어포커스> 데스크를 맡으면서 지켜보니 '이건 아니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실제로 <미디어포커스> 내용을 보면 그런 철학을 가진 사람들이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면서 공정성 시비를 낳는 방송을 많이 했다."

- 언론을 포함해 우리사회 권력집단에 대한 성역없는 비판이 필요한 것 아닌가. 학계나 시민단체에서도 조중동 보도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더 문제가 많다는 평가는 늘 있어왔다.

▲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박승규 본부장 ⓒ서정은
"<미디어포커스>의 공도 있다. 안다. 하지만 조중동 비판이 50% 정도면 괜찮은데 60~70%까지 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러다보니 '조중동 잡는' 프로그램이라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언론의 기능이 다른 언론의 잘못된 부분이나 힘있는 권력을 비판하는 게 맞긴 하지만 조중동과 노무현 대통령이 싸우는 입장에서 중립적 입장을 취하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의 잘못된 언론정책도 같이 다뤄야 하는데 없었다.

오히려 청와대 앞에 가서 조중동을 향해 총을 쏘는 역할을 했다고 본다. 그러니 옳은 이야기를 하는데도 권력의 앞잡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조중동을 비판하더라도 가운데 서서 조중동 잘못과 청와대 잘못을 반반씩 이야기했더라면 이런 비판을 듣지 않았을 것이다."

- 향후 전반적인 방송기구 개편으로 인해 각 단체의 수장이 교체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만약 새 정부가 인수위에 몸 담았던 인사나 기타 정치적 편향성 시비를 부를 수 있는 인사를 KBS 사장으로 앉히려는 시도를 한다면 이에 대한 KBS본부의 원칙과 입장은 무엇인가.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아직 답변할 상황이 아니다. 차기 사장에 대해서는 내부에서 논의를 한 바가 없다. 조만간 입장이 정해질 것이다. 지금 단계에서 개인의 입장을 말할 수 없다.

원론적으로는 정치적 독립성과 중립성, 낙하산 사장이 아닌 KBS 출신, 또는 방송전문가로서 구성원들이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몇가지 기준은 말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너무 이상적이다. 그 조건을 어떻게 다 갖출 수 있겠나.

"차기 사장 문제에 대한 입장은 아직…민감한 시기라 오해 소지 있어"

다만 신문 출신은 절대 안된다. 지난 10년간 박권상 사장과 정연주 사장 체제에서 KBS 경쟁력이 무한히 떨어졌다. 그들이 보여준 방송에 대한 무지, 비전문성이 조직을 어떻게 멍들게 하는지 봤다. 실제 현장을 지휘하고 관리를 하려면 방송을 알아야 하는데 배우는데 3년이 걸린다. 사장이 무슨 공부하러 오는 자리도 아닌데. 정연주 사장도 마찬가지였다. 자기의 이상한 철학을 갖고 와서 개혁하겠다? 개혁하려면 KBS를 알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또 하나 덧붙이자면 이제 우리도 KBS 출신 사장을 배출할 때가 됐다. KBS를 아는, KBS에 대한 애정을 가진 사람이 사장이 되면 좋겠다.

정치적 독립성이나 중립성이 사장 바뀔 때마다 이야기되는 것은 원죄가 있기 때문이다. 박권상, 서기원, 홍두표, 정연주 사장 모두 그랬다. 대부분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한 것도 본인이 그렇게 임명됐기 때문이다. 만약 임명 과정에 정당성이 부여된다면 좀 달라지지 않겠는가. 정권의 필요에 의해 보낸 사람이 아니라 KBS의 필요에 의해 보낸 사람이어야 한다.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철학을 방송을 통해 구현하고 장악하기 위해 그런 사람으로 사장을 보내는 것은 문제가 있다."

- 정권의 필요에 부합하는지 KBS의 필요에 합당한지에 대한 판단은 자의적일 수도 있고 그래서 그 판단을 어떤 기준으로 할 것인가의 문제가 중요할 것 같은데.

"기준과 판단은 물론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차기 사장 문제는 내가 더 이야기 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 솔직히 노조 입장에선 내부 승진이 가장 부담없다. 그런데 내부 사람 중에는 정연주 사장과 책임을 지고 나가야 할 사람이 많다. 참 복잡하다.

노조는 선택이나 인사권은 없다. 배제할 권한만 있다. 어떤 사람을 배제할 것이냐를 정해야 한다. 하지만 아직 정 사장 거취 문제가 정해진 것이 없는 상태에서 당장 차기 사장의 기준을 마련하는 것은 오해의 소지를 낳을 수 있다."

- 한나라당과 KBS본부를 연계시키는 시선에 신경이 많이 쓰이는 것 같다.

"우리 노조가 정연주 사장을 공격하다 보니까 나를 한나라당과 같은 쪽으로 많이 연결을 한다. 그러나 실제로 나는 정치부 기자를 하지도 않았고 스스로 가장 비정치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KBS 출신 한나라당 의원 빼곤 한나라당에서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도 없다."

- 노조 위원장이라면 한나라당을 비롯한 정치권과의 접촉이 전혀 없지는 않을텐데.

"오해의 소지가 있어서 많이 안했다. 회사에서 (수신료 문제로) '한나라당이 미는 노조 아니냐. 좀 만나달라'고 해서 국회 문광위 소속 의원 몇 명 만난 것 외에는 일부러라도 잘 안 만났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안그래도 말이 많은데 만나고 다니겠나.

한나라당과 연계하는 부분은 곤혹스럽다. 내가 기자일 때도 그랬지만, 칼자루를 쥔 사람과 결국은 같이 가긴 힘들 것이다. 지금까지는 정연주 사장과 노무현 대통령의 언론 정책을 비판했으나 이제 그 대상은 한나라당과 새 정부가 될 것이다. 야당이 무슨 대상이 될 수 있나. 힘을 가진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것 아닌가.

한나라당과 KBS 노조가 보조를 맞춘다고 하는데 한나라당이 친노조적인 정책을 쓸 수 있을 것 같은가? 앞으로 KBS 문제에 있어서 노조에 많은 부담을 주는 정책을 쓸 것이다. 그러면 싸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지 같이 보조를 맞추는 상황은 될 수 없다."

"나는 비정치적인 사람…한나라당과 일부러 더 접촉 안한다"

- KBS본부의 철학이나 성향이 기존 노조가 보여준 색깔보다는 보수적이라는 평가 때문에 이런 이야기들이 더 나오는 것 같다. 보수적이란 평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색깔은 붙이기 나름이다. 과거 진보와 개혁은 가진 자보다는 덜 가진 자, 소외된 자를 대변하는 것이었고 노조와 시민단체가 그 역할을 했는데 지난 10년간은 거꾸로 됐다. 진보와 개혁 세력이 정권을 잡으면서 평소 주장과 행동의 허구성이 보이더라. 정 사장도 그렇고 언론노조도 그렇다. 개혁하라고, 정확하게 하라고, 깨끗하게 하라고 떠들어대지만 자신들은 그렇지 않더란 말이다.

두번째는 그런 사람들이 권력을 잡고 나니 관리 능력에 문제가 많더라. 정연주 사장도 그렇고 노무현 대통령도 그렇고 체계적인 훈련과 기본적인 경험없이 큰 조직을 바로 관리하고 정책을 만드는데 있어서 모순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내가 비판을 하게 됐고, 진보를 공격하니 보수라고 평가를 하는데 사실 나는 진보니 보수니 관심없다. 나에게 보수적이라고 말한다면 자기들 공격에 대한 방어용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한다."

▲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박승규 본부장 ⓒ서정은
- KBS본부가 여전히 정규직 중심이고, 과거 국부제를 없애고 팀제로 전환하면서 각종 혜택과 권리를 상실한 직종이나 직급의 이해를 대변한다는 평가가 있기 때문에 보수적이란 비판이 나오는 것은 아닌가.

"팀제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과거 국부제는 명령이 합리적이지 않아도 따라야 하는 권위적인 문제는 있었지만 구조는 탄탄했고 책임 소재도 명확했다. 그런데 정 사장이 실시한 팀제는 '무늬만 팀제'다. 부장이 없어지면서 부장급이 평팀원이 됐는데 일을 안한다. 1000여명의 간부급 직원이 일자리가 없어 떠돌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게다가 어떤 팀은 팀장 한 명이 120명을 관리하니 한계가 있다. 이런 문화 때문에 밑의 후배들이 제멋대로 논다. 자율적인 것 같지만 결국 조직 내에서 일을 배울 수 있는 기회, 열심히 할 수 있는 기회를 오히려 박탈당하고 있다.

팀제에서 3~4년 일한 후배들을 보면 발전이 없다. 우리가 일하던 시절에는 입사 초반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게 눈에 보였는데 지금 후배들은 조직이 느슨하다보니 실력이 없다. KBS 경쟁력이 이렇게 가면 안된다. 정 사장이 아마추어였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겼다고 본다."

- KBS 내부의 비정규직 문제는 어떻게 접근할 생각인가.

"비정규직 문제가 화두인 것은 분명하고 KBS도 현재 1100명 정도의 비정규직이 일하고 있다. KBS에서 비정규직이 양산된 배경엔 구조적인 측면도 있다. 조직을 효율화시키고 방만하다는 지적을 받지않으려고 하다보니 정규직 대신 비정규직의 채용이 늘어났다.

현실적으로 비정규직을 다 흡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조직 능력이 안된다. 게다가 노조에서 정규직 임금을 깎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그래서 우리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흡수하려고 할 때 비정규직도 약간의 마음자세를 달리하면서 우리와 같이 가야 한다고 본다. 정규직으로 전환돼 고용안정이 보장될 경우 당장 임금과 복지 수준이 기존 정규직과 다소 차이가 나는 것은 감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야 노조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다.

현재 연봉계약직 400여명의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고 있는데 노조가 강하게 요구하고 있고 KBS 이사장의 의지도 높아서 전환 규모가 계속 확대되고 있다. 아직 계약기간이 남아있어 회사가 공개적으로 실시하지 않을 뿐이지 곧 전환이 이뤄질 것이다."

"언론노조 집행부가 한번 숙이던가, 이대로 우리와 갈라서던가…"

- 언론노조와의 관계 정상화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가.

"지금 서로 많이 노력하고는 있지만 상층 지도부 중심의 언론노조 의사결정 구조 등을 지적한 기본적인 문제의식은 처음과 달라진 것이 없다. 물론 우리의 노조활동 경험이 일천하기도 하고, 운동차원에서 연대의 중요성이나 일사분란한 지휘체계도 필요하다고 보지만 지난해 언론노조 사무처의 회계부정 사태 이후에 언론노조 집행부가 보인 모습은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

이준안 전 언론노조 위원장을 우리가 선택하고 만들었으니 지금의 언론노조가 비틀거리는 것은 분명히 KBS 본부와 이준안 전 위원장에게 책임이 있다. 이준안 전 위원장이 당선된 것은 과거 언론노조 세력과 다르게 합리적으로 언론노조 운동을 해보자는 선택이었지만 회계부정 사태를 슬기롭게 처리하지 못하면서 외부세력을 개입하고 자주성을 포기했다는 비판에 몰렸다. 결국 이준안 집행부가 물러났고 다시 과거의 언론노조 세력이 들어섰다.

그렇지만 언론노조의 현 상황을 인정하지 못하는 KBS, 연합, YTN, 부산일보 등 지·본부 40% 정도가 '언론노조개혁협의회'를 구성해 떨어져 나온 상태이고 현 언론노조 집행부도 조직이 반으로 쪼개지는 부담이 있으니 선택의 시점에 직면해 있다고 본다. 우리한테 한번 숙이고 도움을 끌어내던가 아니면 갈라서던가.

아무래도 우리가 명분 싸움만 하기에는 외부 환경이 너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만약 새로운 명분 싸움이 돌출되면 그때 싸우더라도 일단 합쳐서 일 한번 해 보자는 공감대는 형성됐다. 전제는 서로 신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는 것인데 아마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신뢰라는 것이 말로는 안되고 시스템으로 정착돼야 하는데 언론노조 집행부와 '언론노조개혁협의회'가 만나기 시작한 것이 1월이고 빨라도 한두달, 아니면 서너달 걸리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다. 물론 신뢰할 수 있는 시스템만 정착되면 좀 더 빨리 정상화될 수도 있다.

우리가 언론노조 정상화를 위해 요구하는 사항은 언론노조 조합비 납부 개선, 지·본부 의견의 폭넓은 수렴, 회계자료의 철저한 공개 등이다. 시스템을 한두개라도 바꾸는 모습을 보이면 빨리 수습이 되지 않을까 싶다. 갈등 요소는 그래도 많이 남아있다."

- 갈라선다는 것은 탈퇴를 말하는데 지금의 산별노조 형태에서는 조합원 개별 탈퇴만이 가능하지 않나.

"개별 탈퇴까지 불사하고 있다. 지·본부마다 약간 입장은 다르지만 거의 탈퇴할 수 있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KBS본부는 조직이 커서 맘대로는 못하지만 지금 과정을 이야기하면 (조합원 설득이) 가능하다고 본다. 언론노조의 시스템을 개선하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이뤄지지 않으면 같이 갈 수 없다."

- '언론노조개혁협의회'가 주장하는 핵심은 무엇인가.

"조합원들의 의견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가야한다는 것이다. 정치운동이 필요한 시기도 있겠지만 정해진 방향대로 자원을 동원하는 시대는 갔다고 본다. 투쟁 방법도 조합원들의 이야기를 듣고 논의를 통해 결정해야 신뢰가 생길텐데 지난 FTA 투쟁을 봐도 지도부가 하부구조와 논의를 하지 않고 외부구조와 논의를 한다. 이것이 큰 문제다."

- 노조 운동이 점점 경제적 이해에만 매몰된다는 지적도 나오는데.

"임단협 구조는 별개다. 정치적 문제나 큰 사안에 있어서 무조건 계몽하는 방식은 안된다는 소리다. 현장과 하부구조의 목소리를 들어서 해야한다. 과거에는 힘을 발휘하기 위해 큰 세력과의 연대가 필요했겠지만 지금은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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