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연예인이란 단어를 잘 쓰지 않는다. 연예인 대신 노래하는 사람은 가수, 연기하는 사람은 배우, 혹은 방송인, 개그맨처럼 각각의 직업을 개별적으로 호명하려 한다. 연예인은 어감이 방만할뿐더러 미디어 사회가 뻗어가는 보폭을 따라잡지 못하는 단어다.

연예인은 매스미디어 사회의 부산물이다. 공중파와 스크린, 라디오, 잡지 같은 전통적 미디어를 무대로 활동하며 기예를 선보이거나 이미지를 파는 이들이 연예인이라 불렸다. 이제 미디어는 작고 개인적인 것이 되었다. SNS와 유튜브, 개인방송 플랫폼에서 매스미디어에 등용되지 않은 이들이 활동하고 그들이 하는 일은 본질적으로 연예인과 다르지 않다. 미디어의 무한 분화와 소셜 네트워크의 거미줄을 타고 ‘보통 사람’이 스타가 되어 추종자를 거느리는 시대, 그렇다면 이들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그들을 연예인과 묶어주는 호명은 바로 유명인이다. 매스미디어든 소셜미디어든, 미디어를 통해 유명세를 갖게 된 이들. 언젠가부터 흔히 쓰이는 말로 '셀럽'이라고 해도 될까. 매스미디어 스타들이 소셜 미디어를 운영하고, 소셜 미디어를 통해 스타가 된 이들이 준연예인으로 대접받으며 둘의 성격과 범주 또한 서로 스며들고 있다. 말하자면, 누구나 판돈을 걸고 참가할 수 있는 유명세의 시장 경제가 형성되었다. 미디어 출연자(운영자)와 소비자, 연예인과 대중의 이분법엔 구멍이 뚫렸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루머의 루머의 루머-누가 진리를 죽였나' 편

유명인이란 호명에는 또 다른 이점이 있다. 연예인을 일컫는 ‘공인’이란 왜곡된 이름을 대신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공인(公人)은 공적(公的) 사무에 종사하는 사람이다. 척 생각해도 사적 영리 활동에 종사하는 연예인을 일컫기에 부적절하다. 하지만 한국에선 신문지상과 방송 전파 등을 통해 ‘공공연히 알려진’ 인물이란 지위에 주목해 연예인을 공인, 정확히는 공적 인물로 이해하는 관습이 있다. 이런 구분은 연예인에게 과도한 도덕적 평가 기준을 부과하고 공과 사의 경계를 어지럽히는 폭력성이 있다. 예컨대, 연예인의 사생활에 대한 호기심이 공공의 당위, ‘알 권리’로 둔갑하는 것이다. 사소한 일탈행위가 도마 위에 올라 정치인 이상의 ‘공적 비판’을 얻어맞고 퇴출당한 연예인은 또 얼마나 많을까? 연예인은 공인이 아니라 사적 영리 활동에 종사하는 유명한 사람이다.

유명인에게는 사회적 책임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그 책임이 무엇에서 비롯하는지 따져 보자는 뜻이다. 유명세는 파급력이다. 유명인은 다중 앞에 목소리와 이미지를 전파하고 그것으로 활동을 이어간다. 사실을 말하자면, 유명인의 활동이 공동체의 가치관과 감수성에 포자를 퍼트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는 자신의 말과 행동이 본보기가 되거나 다수의 눈과 귀에 가닿는 폭력이 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반대로 그렇기에 유명인이 매체를 통해 드러내지 않은 사생활, 시민적 가치와 무관한 ‘인성’ 따위는 캐물을 실익이 없다. 단, 그가 공동체 구성원 누군가의 시민권을 부정하거나 위축시킬 수 있는 언행을 한다면 공인이 아니란 잣대로 용납받을 수 없다. 이처럼 연예인을 유명인으로 바꿔 발음해보면 그들의 힘과 책임이 무엇인지 뚜렷해진다.

서두에서 한 이야기로 돌아가면, 1인 미디어와 소셜 네트워크의 만화경이 유명세를 민주화한 오늘날, 그 힘과 책임이 꼭 연예인에게 전가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개인 방송과 SNS는 공식적 검열 지대 바깥에 있는 만큼 보는 이의 가치관과 날 것으로 상호작용한다. 숱한 스트리머와 ‘SNS 스타’, ‘작은 유명인’들이 증식하고 있지만, 그중 적지 않은 이들이 막말과 기행, 혐오 표현으로 구설수를 빚는 건 자신들이 지닌 유명세에 대한 윤리적 자각이 미비하다는 뜻이다. 얼마 전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는 한 유튜버가 출연해 “연예인으로선 (악플도) 감내해야 한다고 본다”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다. 연예인의 지위에 대한 이분법적 관념을 깔고 있는 생각이고, 이 점만큼은 해당 유튜버만의 것이라 보기 힘들 것 같다. 가령 그가 저 말을 뱉는 순간에, 자신 역시 개인 미디어에 얼굴을 노출하는 사람으로서 연예인이 겪는 것 이상의 악플에 폭격당할 수 있다는 각오를 했을 것 같지는 않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루머의 루머의 루머-누가 진리를 죽였나' 편

새롭게 등장한 미디어들은 미디어를 통한 피드백과 유명세에 결부된 윤리를 다른 차원으로 끌고 간다. 뉴미디어는 유명인들에게 지상파와 케이블을 벗어난 활동 무대를 열어주었으며, 자신을 자유롭고 즉흥적으로 표현하게 해주는 해방구가 되었다. 다른 한편 악플은 팝업창처럼 실시간으로 화면에 튀어나와 방송 진행자의 시야에서 터지고, 편집 체계를 통해 걸러지지 않는 돌발 상황과 무의식적 말들이 삽시간에 무한 공유되고, 치솟는 ‘좋아요’ 숫자와 터지는 ‘별풍선’은 더 화끈하고 더 천박한 기행을 끌어낸다. 이렇듯 미디어의 렌즈에 난반사되는 변화에 어떻게 적응하고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는 미디어 산업은 물론 사회 전역에 드리운 과제가 되는 것 같다.

지금 여기에서 사람들 모두는 잠재적 유명인이다. 이건 유명한 개인방송 진행자와 SNS 스타에 한정되는 문제도 아니다. 네티즌은 저마다 유튜브 채널과 SNS 계정을 운영하고 커뮤니티에 일상과 외모, 패션을 게시하며 사람들의 관심을 구한다. 어떤 계기가 터지면 나 역시 ‘자고 일어났더니’ 유명해질 수 있으며, 적어도 내가 올린 게시물이 유명해질 수는 있다. 실은 그런 계기가 없더라도 누구든 열람 가능한 상태에 놓여있는 인터넷 게시물 하나하나가 일정 수준의 공연성을 지닌다. 공동체 구성원 저마다가 public 하게 전시하는 언동의 나비효과를 예견하고 자기 몫의 윤리를 고민해야 한다. 유명하다는 이유로 어떤 평가든 감수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은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의 목젖을 이미 겨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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