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이 어느 쪽에 더 쏠리든, 숭례문 화재는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 정부의 책임이다. 정부가 미숙해서 저지른 ‘인재’에 대해 국민들이 왜 성금을 내야 할까. 대통령 당선자와 정부는 사건의 조속한 해결과 재발방지를 위한 합리적인 대책을 내놓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

최성진 한겨레21 기자가 12일 <미디어스>에 기고한 칼럼 가운데 일부다. “화재로 무너진 숭례문을 국민 성금으로 복원하자”는 이명박 당선인의 제안이 가진 문제점을 비판한 글이다. 사실 사과와 보완책 마련을 내놓아도 시원찮을 판에 국민성금 운동부터 제안한 대통령 당선인의 ‘마인드’가 상식적으로 잘 이해가 가지는 않는다.

대다수 언론, 이명박 당선인 ‘국민성금’ 제안 비판

오죽했으면(?) 중앙일보가 오늘자(13일) 사설을 통해 이를 비판했겠는가. 일부분을 인용한다.

▲ 중앙일보 2월13일자 사설.
“숭례문 화재는 국가의 관리 소홀로 인한 인재일 뿐이다. 국보 1호를 일반에 개방해놓고 문화재청과 서울 중구청이 관리를 소홀히 했고, 소방방재청이 사전 준비를 게을리 하고 현장 대처를 잘못한 탓이다. 이를 복구할 재원을 성금으로 메우면 국민에게 위안이 될 것이라는 발상은 이해하기 어렵다. 잘못은 정부가 해놓고 공연히 국민에게 책임을 미루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

이 당선인이 ‘국민모금운동’을 제안한 직후 이를 가장 적극적으로 비판하고 나선 것은 네티즌과 블로거들이다. 사실 평화의 댐과 같은 과거의 예를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기본적으로 정부가 책임져야 할 사안을 국민모금 형식으로 ‘처리’하는 것은 곤란하다. 이번 숭례문 화재사건이 우리 사회에 던지고 있는 문제의 본질을 이 당선인이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같은 기류를 감안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오늘자(13일) 아침신문들도 ‘진보·보수’ 할 것 없이 이 문제를 주요하게 다뤘다. 이 당선인의 제안이 가진 문제점을 비판하는 내용이 다수였고, 조선일보처럼 네티즌의 찬반여론을 소개하는 형식을 취하기도 했다.

동아일보만 침묵한 ‘이명박 국민성금 제안’ 비판 … 논설위원 칼럼 통해 국민성금 ‘지지’

▲ 한겨레 2월13일자 4면.
하지만 오늘자(13일) 아침신문들(전국단위종합일간지 기준) 가운데 이 당선인의 국민성금 제안과 관련해 비판적인 기사가 없는 곳이 유독 한 군데가 있는데 바로 동아일보다. 동아는 2면에서 이 당선인의 국민성금 제안과 대통합민주신당의 ‘비판 성명서’를 간단히 언급하는 정도로만 이 사안을 다뤘다.

언론이 비판을 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기사를 통한 비판과 사안 축소, 침묵이 그것인데 기사를 통한 비판은 적극적인 방법에 속하고 나머지 두 개는 다소 소극적인 방식에 해당한다. 사실 처음에는 동아일보의 이 기사를 보면서 다소 소극적인 방식으로 이 당선인의 ‘모금 운동’ 제안을 비판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후반부’로 가니 그게 아니었다.

동아는 방형남 논설위원의 <숭례문, 베네치아 ‘不死鳥극장’처럼>이라는 칼럼을 오늘자(13일) 30면에 게재했는데 내용은 이탈리아의 사례를 거론하며 ‘우리도 국민적 모금운동을 전개하자’는 것이었다. 일부분을 인용한다.

숭례문 부활과 복원·국민성금 보다 중요한 건 이번 사건이 주는 교훈을 깨닫는 것

“페니체도 숭례문처럼 방화로 희생됐다. 보수공사를 맡은 건설회사가 작업 일정을 맞추지 못한 전기 기사들에게 벌금을 물린 게 화근이었다 … 베네치아 시민과 이탈리아 국민은 슬픔에 잠겨 있지만은 않았다. 화재 다음 날부터 재건을 위한 모금운동을 시작했다. 기업과 개인의 정성이 쏟아졌다 … 비슷한 운명의 숭례문 또한 불사조가 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숭례문을 불사조로 부활시키는 일,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 동아일보 2월13일자 31면.
결국 동아의 ‘본심’이 여기에 있지 않나 싶은데 글쎄다. 네티즌과 블로거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제기하고 있는 국민성금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아예 눈을 감고 있는 듯한 태도도 잘 이해가 가지 않지만, 마치 모금운동을 전개해서 복원만 되면 문제가 해결되는 듯한 ‘마인드’는 더 이해가 가지 않는다.

“관심이 복원 문제로 집중되면서 이번 사태의 원인에 대한 반성과 책임 규명, 이를 통한 개선책 마련 노력이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는 것이다. 문화계는 숭례문이 복원만 되면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접근한다면 이번 사태가 남긴 교훈은 사장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오늘자 경향신문이 1면 기사 가운데 일부다. 이 당선인과 동아일보가 좀 유념해서 들어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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