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1호인 남대문(숭례문: 崇禮門)이 10일 밤 방화로 추정되는 불로 폐허로 변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과거 조선왕조 시대 복고를 꿈꾸는 것은 아니지만, 조선왕조가 6백년 가까이 존속될 수 있었던 데에는 그만한 이유와 배경이 있을 것이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우리 선조들의 뛰어난 과학 기술과 시스템이었다고 생각한다. 비록 몇 차례 크고 작은 보수를 거치기는 했지만 6백년 정도 갈 수 있는 목조건물을 지었으니 말이다.

현대식 종이 수명 150년, 전통 한지 수명은 1,200년도 넘어

▲ 한국일보 2월12일자 1면.
뿐만이 아니다. 현대 첨단 기술로 만든 종이는 아무리 오래 가도 150년 이상은 못 간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전통 한지(韓紙)는 보존만 잘하면 600년이 넘어도 원형을 유지한다.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채택된 조선왕조실록도 전통 한지에 기록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보존이 가능했던 것이다.

1966년 세계 최고(最古) 목판 인쇄본 ‘무구정광대다라니경' 전통 한지에 싸여 발견

우리 전통 한지의 우수성은 세계 최고(最古)의 목판 인쇄본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을 통해서도 분명히 알 수 있다. 다라니경은 원래 탑을 쌓은 다음 불경을 염송(念誦)하여 성불(成佛)한다는 뜻에서 만드는 경전 즉 일종의 기도문으로 옛날부터 탑속에 다라니경을 넣는 것이 풍습처럼 되어왔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목판 인쇄본인 국보 126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1966년 10월 14일 경주 불국사 석가탑 해체 공사 과정에서 발견됐는데 비단보에 쌓여 있었고 지질(紙質)은 닥종이로 된 두루마리였다고 한다. (참고: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한지, 이승철 지음)


여러 가지 과학적인 근거를 동원하여 측정 혹은 추정한 결과 무구정광다라니경은 704-751년 경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데, 1,200년 이상 탑 속에서 보내고도 그 형체를 보존하고 있어 그 당시 우리 제지 기술이 중국보다 뛰어났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고대 중국 황실에서도 황제나 높은 벼슬아치들만 우리나라에서 만든 질 좋은 한지를 쓸 수 있었다고 한다. (참고: 이이화의 역사풍속기행)

안타까운 것은 전통 한지를 생산하는 전주 지역의 소규모 공장들이 갈수록 문을 닫아 전통 한지 생산의 맥이 끊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는 점이다.

경남 의령군 봉수면의 한 마을에서도 닥나무를 이용해 ‘전통 한지’를 옛날 방식으로 제작하고 있으나 크게 관심을 끌고 있지 못한 것 같다. 미국 등 선진국들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전통기술에 대한 특허권을 먼저 따려고 호심탐탐 노리고 있는데도 말이다.

값이 싼 중국 종이들이 밀려들어 오는데다, 우수한 전통 한지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도 멀어지고 정부 등에서도 특별한 지원이나 육성 대책 등을 소홀히 하는 바람에 갈수록 전통 한지의 설 땅이 좁아지고 있는 것이다.

마침 설 연휴가 지나고 정월 대보름이 다가오고 있다. 연 날리는 계절이다. 방패연을 비롯한 전통 연은 한지로 만들어야 한다. 남대문 전소(全燒) 참사를 계기로 우리 전통 과학기술과 문화의 우수성에도 눈을 돌릴 겸, 이번 주말과 정월 대보름 무렵에는 한지로 만든 연을 날리면서 우리의 우수한 전통 과학 기술과 문화재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자고 제안해 본다.

각설하고.
남대문을 비롯한 우리의 우수한 건축물과 과학기술에 비추어 볼 때, 이를 관리하지 못하거나 화재 초동단계에서 허둥대며 시간만 허비한 우리 소방당국을 보면서 한심하다 못해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보도에 따르면, 소방대는 남대문 지붕에서 연기가 나다 불이 커지자 기와 지붕 위로만 많은 물을 쏟아 부었다고 한다. 이는 정말 국보 1호인, 600년이나 된 목조 건축물의 기본을 너무도 몰랐던 것이다. 물을 기와 지붕위로 뿌렸을 때 물이 밑으로 스며든다면 어떻게 600년 동안 비바람을 맞고도 기와 지붕 내부가 썩지 않았겠는가?

마찬가지로 처마에다 소방 호스로 물을 뿌린다고 물이 안으로 스며든다면, 600년 동안 숱한 폭우와 바람을 어떻게 이겨냈겠는가? 어려운 가운데 목숨을 아끼지 않고 고생하는 많은 소방관들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공익근무 요원 1명도 배치못한 관계당국의 직무유기와 무사안일

▲ 한겨레 2월12일자 3면.
숱한 문화재 화재와 참사를 겪고도 문화재를 제대로 관리하는 시스템조차 갖추지 못한 것도 문제다.

분명 어느 특정인, 특정기관만의 책임은 아니지만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어물쩍 넘어갈 일도 아니다.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할 관계 당국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남대문을 지켜내지 못한 여러 가지 이유와 배경 중에서 가장 안타까운 사실은 공익근무 요원 한 명도 배치하지 못하거나 않을 정도로 관계 당국 모두가 무사안일 했다는 점이다. 명백한 직무유기가 아닐 수 없다.

2교대 혹은 3교대로 공익근무 요원 아니면 경비원만 배치했어도 감히 국보 1호에다 불을 지르려는 기도는 하지 못했을 것이다.

순경을 왜 영어로 Flat-foot 이라고 할까?

순경을 영어(속어)로 'flat-foot'이라고도 한다. 글자 그대로 옮기면 박지성의 발처럼 ‘펑퍼짐한 발’ 즉 평발이란 뜻이다. 이 단어 하나에 많은 것이 담겨 있다.

▲ 서울신문 2월12일자 5면.
순경을 영어 속어로 ‘flat-foot’이라고 하는 이유는 하도 순찰을 많이 돌다보니 발바닥이 펑퍼짐해 졌다는 뜻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 경찰들은 하루 종일 자기가 맡은 지역을 2인 1조가 되어 순찰한다. 그러면 보통 범죄의 대부분 혹은 상당부분은 예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경찰 업무의 중심은 순찰이라는 것이다.

가령 순경 혹은 전투경찰 한 조가 보석 가게들이 밀집한 지역을 순찰하는 업무를 맡았다고 치자. 오랫동안 같은 장소를 반복해서 순찰하다보면, 가게 안에 어떤 (낯선) 사람이 가게 주인과 얘기하고 있는 모습을 스쳐지나 가면서 보더라도, 가게 안의 사람이 가게 주인과 흥정을 하고 있는지 강도로 돌변해 협박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주인의 얼굴이나 표정 혹은 눈빛 등만 보고도 알아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경찰이 계속 순찰을 돌고 있는 지역에서는 범죄의 의사를 품었다가도 범행을 포기하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갈 수도 있는 것이다.

이번 남대문 방화사건만 해도 만약 전투경찰이나 공익근무 요원 2인 1조, 그것이 안되면 단 1명이라도 야간에 배치되어 남대문 안팎을 순찰하고 있었다면 방화 용의자가 방화를 준비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설령 준비했다 하더라도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남대문이 전소된 이날을 ‘문화 국치일’로 삼아야 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많은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경찰 이제 집회 현장에서 순찰과 민생치안에 눈 돌려야

우리나라는 미국 일본 등 선진국과 달리 시위 진압이나 관공서 등 경비에 많은 경찰 병력을 투입하다보니 정작 민생과 관련된 순찰업무는 소외되거나 소홀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인 것도 사실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우리 경찰이나 전투경찰 혹은 공익근무 요원들도 시위 진압 등에만 집중 배치할 것이 아니라 민생치안 현장에 보다 더 많은 시간과 인력을 투입하는 것이 어떨까?

이것은 실용주의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다. 이념의 문제도 아니다. 기본에 관한 문제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