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돌발 단식에 조선·중앙 등 보수언론들이 명분 싣기에 나서는 모양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황 대표의 명분없는 단식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20일 황 대표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등에 대한 철회를 요구하며 무기한 단식에 나서자 21일 조선일보는 <눈앞 닥친 선거법 강제 변경과 공수처 일방 신설, 어찌해야 하나>라는 제목의 사설을 게재했다.

조선일보는 이 사설에서 "황 대표의 단식에 대해 '당내에서 궁지에 몰리자 급하게 단식 카드를 꺼낸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요즘 세상에 단식이란 투쟁 방식이 과연 적절하냐'는 논란도 있다"면서 "하지만 선거법·공수처법 강행처리 저지라는 그 명분에 대해선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고 황 대표 단식에 힘을 실었다.

"게임의 규칙인 선거제도를 게임 참여자들의 합의 없이 강제로 바꾸고, 수사기관을 어느 당이 일방적으로 신설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민주주의가 아니"라는 게 패스트트랙 국면에서 조선일보가 이어온 일관된 주장이다. 조선일보는 선거제도 개혁이 국민의 '선거 불인정 사태'를 낳고, 공수처 설치 법안은 위헌이자 정부여당 입김에 좌우되는 안이라는 주장을 펴왔다.

그러나 선거제도 개혁과 관련해 애초 한국당은 각 여야 정당들과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적극 검토하고, 비례대표 확대 등을 논의하자는데 합의했지만 이를 파기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득표율에 따라 표심 그대로를 국회의석에 반영하자는 취지로 논의되고 있다. 현재의 선거법이 사표를 낳아 한국당 등 거대정당의 기득권을 유지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공수처법은 국회법에 따라 패스트트랙에 올랐다. 공수처장 임명 등에 있어 야당이 반대하는 공수처장은 임명될 수 없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무조건적인 반대 주장은 성립하기 어렵다.

조선일보 11월 21일 사설 <눈앞 닥친 선거법 강제 변경과 공수처 일방 신설, 어찌해야 하나>

중앙일보는 이날 기사 <황교안, 측근 만류에도 "남은 건 소명의식… 죽기 각오로 단식">에서 황 대표의 "소명의식" 발언에 주목했다. 황 대표는 이날 "소아(小我)의 마지막 자취까지 버리려한다. 나에겐 자유민주세력을 살리고 나라를 살리고 싶은 소명의식밖에 남은 것이 없다"고 했다.

이에 대해 중앙일보는 기사에서 "황 대표를 아는 이들은 그러나 '기존 정치문법으론 설명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주목하는 단어가 '소명의식'"이라며 "사전적으론 '부여된 어떤 명령을 꼭 수행해야 한다는, 책임 있는 의식'이란 의미지만 종교적으론 그보다 더욱 강력한 의지상태를 말한다"고 해설했다.

이어 중앙일보는 한국당을 제외한 각 정당들의 비판 내용을 전한 뒤 "이 때문인지 황 대표의 단식 호소문에는 반성의 메시지가 담겼다. '저와 한국당이 부족했던 지점들을 반성하고, 통합과 쇄신의 길을 열어갈 수 있도록 단식 과정마다 성찰하고 방법을 찾겠다'는 내용"이라고 전했다.

강찬호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같은 날 칼럼 <황교안 단식, 민심 못 얻으면 실패한다>에서 "황교안이 단식투쟁에 나선 충정은 이해한다"고 했다. 강 논설위원은 "황교안으로선 야속할 것"이라며 "'임박한 여당의 공수처 설치·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 개정안(패스트 트랙·패트) 강행 처리를 막기 위해 목숨을 건 단식에 나선 뜻'을 몰라주니 말이다"라고 했다.

다만 강 논설위원은 "정치인의 단식은 밥을 굶는 만큼 민심을 얻어가야만 성공을 거둘 수 있다. 황교안은 그 민심을 제대로 모으지 못하고 단식을 시작했다"며 "단식이 성공하려면 진심으로 국민과 소통하고, 야권을 탕평해 민심을 얻어야만 한다. 62년 생애에서 처음 단식에 뛰어든 그가 그 과업을 이뤄낼 수 있을지 우려가 적지 않다"고 비판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21일 오전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단식하고 있다. 20일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단식농성을 시작했으나 경호 문제로 국회 본청에 이동했던 황 대표는 21일 새벽 청와대 앞 분수대로 이동해 단식농성 이틀째에 돌입했다.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상당수의 언론들은 제1야당 대표가 국회를 외면하고 삭발에 이은 갑작스런 단식에 나선 것에 '명분없는', '어처구니없는' '난데없는', '좀비정당' 등의 수식어를 붙여 질타했다.

한국일보는 사설 <난데없는 황교안 대표의 단식 투쟁, 뭘 어쩌자는 건가>에서 "황 대표는 취임 이후 실정은 비판하되 협력할 것은 협력하는 합리적 대안정당을 포기한 채 강경투쟁으로 일관했다"며 "그러나 패스트트랙에 오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과 선거법 개정안은 여야 4당이 국회법 절차에 따라 진행하고 있다. 국회에서 토론과 합의를 통해 한국당 의견을 반영해야지, 장외에서 삭발과 단식 등 극한투쟁을 한다고 해결될 성질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서울신문은 사설 <'좀비정당' 쇄신 대신 단식농성하는 황교안>에서 "김세연 의원의 한국당 쇄신촉구가 있은 지 일주일도 안 돼 제1야당의 당대표가 선택한 정치투쟁의 길이 구태의연한 단식농성이라니, 한심할 뿐"이라며 "더불어민주당 등 여야 4당이 패스트트랙 안건을 조율하는 상황에서 한국당의 일방적인 반대는 명분도 없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사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황교안 대표의 단식투쟁>에서 "안이한 시국인식과 남루한 정치력의 바닥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절박한 문제의식이 있다면 제도정치 속에서 협상력과 투쟁전략을 발휘해 이를 반영하고 관철시켜나가는 게 책임있는 제1야당 대표의 자세"라며 "대통령·정부와 각을 세움으로써 쇄신 등 당면 현안을 회피하고 ‘지도부 용퇴론’을 우회하려는 것이다. 다분히 정치공학적 발상에서 나온 단식투쟁은 결코 여론의 공감을 받을 수 없다"고 일갈했다.

한겨레는 사설 <황 대표의 명분없는 '단식', 국민 지지 받을 수 있나>에서 "황 대표는 지소미아 종료 철회를 명분 중 하나로 내세웠는데, 외교안보 사안에 대해 야당 대표가 협력은 못할망정 어깃장을 놓는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면서 "선거법과 공수처법에 대한 인식도 ‘곡학아세’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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