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방송 교류가 통일에 큰 역할을 했던 독일과 달리 우리나라는 보도·예능프로그램에서 북한과의 이질적인 면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탈북자 사이에서는 북한을 비난하지 않으면 한국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말까지 나왔다.

언론인권센터 주관으로 13일 열린 ‘북한 증언프로그램의 명암’ 토론회에서 발제자들은 독일의 통일 과정에서의 방송 역할과 한국 방송의 현주소를 비교하며 객관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13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북한프로그램의 명과 암'토론회 (사진=미디어스)

발제를 맡은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겸임교수는 분단 시기 서독의 동독 보도와 우리나라의 북한 관련 보도를 비교했다.

심 교수는 서독 방송의 경우, 공영방송법에 “통일은 방송에서 가장 중요한 지상과제”로 명시해두고 이에 따라 공영방송들은 동독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비췄다고 말했다. “동독에서 서독방송을 볼 수 있었다. 서독의 방송인들이 공영이든 상업이든 잘못된 보도를 할 수 없었다. 이게 가능했던 건 사실 확인을 할 수 있는 특파원 제도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심 교수는 우리나라는 북한 관련 정보를 확인하기 어려운 환경이지만 언론이 최소한의 사실도 확인하지 않아 오보를 양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실 확인이 어렵다'는 이유로 양산된 오보는 악의적으로 오용되기도 했다.

YTN은 2014년 5월 10일, 앞서 KBS <남북의 창>에 나왔던 사진을 누군가 편집해 올리자 “북 김정은, 공군 전투비행술 대회 참관”이란 제목의 보도에 그대로 사용해 네티즌으로부터 지적받는 일이 있었다. 지난해 5월에는 TV조선의 ‘북한 풍계리 취재비 1만 달러 요구 보도’가 오보 논란에 휩싸였고, 같은 달 31일 채널A는 ‘하노이 3인방’이 총살, 노역, 근신형을 받았다는 보도를 냈다가 6월 3일 “소식통, 김혁철 운명 아직 결정되지 않아”라는 보도로 일부 정정하는 일도 있었다.

서민수 MBC 통일방송추진단 부장은 “언론 보도에 있어서 북한 관련 소식에 검증이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실제로 검증하고 확인할 수 있는 쉬운 길이 있어도 어렵다는 핑계 속에서 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며 하나의 사례를 소개했다.

2004년 북한 용천역 폭발사고 당시 30분 전에 김정일 위원장이 탄 열차가 지나갔다는 보도가 대대적으로 나왔다. 우리나라 언론은 대부분 홍콩의 ‘성도일보’ 보도 내용을 받아썼는데 보도 출처를 역추척해보니 ‘성도일보’는 우리나라 한 언론사 인터넷 중국어판 기사에서 보도 소스를 얻은 것이었다. 서 부장은 “최초 발언지가 어디인지조차도 확인하지 않고 북한 관련 뉴스는 사실 확인이 어렵다며 그대로 보도하고 있다”며 “언론 본연의 역할인 검증 과정에 충실해야한다”고 말했다.

TV조선의 <"北, 美 언론에 핵실험장 취재 비용 1인당 1만 달러 요구>(2018년 5월 19일 보도)

예능프로그램은 언론 보도보다 공정성과 객관성이 부족했다. 강주희 사회학 박사는 이날 지난 7월부터 3달에 걸쳐 실시한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이하 이만갑)와 TV조선 <모란봉클럽> 모니터링 결과를 발표했다. 해당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탈북자들의 입을 빌려 북한체제에 대한 왜곡, 비정상 국가 이미지를 만들고 북한 지도층에 대한 과장과 희화화, 본인과 관련된 사실 왜곡이 주된 문제점으로 나타났다.

우선 “누구나 휴대폰이 도청된다는 것을 알고 집에서 아무 이야기하지 않는다”(모란봉클럽, 193회), “북한은 뇌물 공화국이다. 산부인과도 뇌물을 내야 갈 수 있고, 죽어서 묻힐 때도 뇌물을 줘야 한다” (이만갑, 389회), “돈주가 돈을 내지 않으면 범죄자로 몰아서 처형한다”(이만갑, 389회) 등 북한에는 국가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것처럼 북한체제를 왜곡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또한 일반 상식에서 벗어나는 내용이 다수 포함됐다. “내가 인터넷도 없고, 피자도 못 먹는 나라에서 왔다”(이만갑, 381화), “북한에서 한국역사나 미국역사도 배워본 적이 없는데 아프리카 역사에 대해서는 꿈도 못 꾼다”(이만갑, 381화), “대학생들이 페미니즘이 뭔지도 모르고 여성평등운동이라고 말해주는 데도 학생들이 알아듣지 못했다” (이만갑, 392회) 등이다.

과거에는 북한 지도층을 공포의 상징으로 표현했다면 지금은 과장과 희화화하는 경우가 많았다. “김정은이 김일성의 혈통임을 증명하는 사진이 한 장이라도 있다면 굳이 그런 스타일 따라하기를 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런게 없다 보니 본의 아니게 계속 그런 걸 따라하게 되는 것”(모란봉클럽, 184회)이 대표적이다.

탈북 과정에서 겪은 고생담을 과장·왜곡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경우는 개인 신상이자 경험이기에 확인이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13살에 어머니가 돌아갔는데 죽지 않고 먹고 살기 위해 소주를 팔아야 했다” (모란봉클럽, 184회), “중국에 가서 브로커 집에 3개월 간 갇혀 있으면서 쥐를 잡아 먹게 됐다”(모란봉클럽, 185회), “중국 고아원에서 밥을 안 준다. 밥 많이 먹으면 살찐다고 한 그릇만 먹으라고 했다”(이만갑, 383회) 등이다.

모니터링 결과 언론인권센터는 채널A와 TV조선 프로그램 각각 5건씩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심의를 신청했다. 대표적으로 “피자도 못 먹는 나라에서 왔다”는 탈북자의 발언은 2005년 MBC 보도 “피자먹는 평양 시민들”, 연합뉴스 2015년 보도 “북한서도 웰빙피자 인기” 등의 보도로 사실이 아니라는 걸 증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남한 프로그램의 경우 우리가 직접 경험했으니 잘못된 점을 지적할 수 있는데 북한 관련해서는 제작자들이 검증하지 않으면 지적은 받지 않은 채로 부정적 인식만 시청자들에게 심어주게 되는 셈”이라며 심각성을 짚었다.

홍강철 유튜브 ‘왈가왈북’ 진행자는 “탈북자는 통일을 위한 중매꾼이라고 생각한다. 있는 그대로 현실을 전할 의무가 있다”며 “상대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는 길을 터주고 일깨워줘야 하는데 탈북자들이 서로를 증오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련희 유튜브 ‘왈가왈북’ 진행자는 “탈북자들에게는 북에 대해 혐오와 고통만을 말할 권리가 있고 아름다운 추억을 말할 권리는 없다”며 “북한에서의 삶을 그리워하는 글을 썼다가 내 친구는 찬양 고무죄로 잡혀갔다. 그러다 보니 살아남으려면 방송에 나가 고통만을 말해야 돈을 벌고 살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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