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아기를 낳아본 사람이라면 석탄 더미 위에서 아기를 낳고 유리 조각으로 탯줄을 잘라 옆에 있던 할머니의 속옷으로 아이를 감쌌다는 증언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소리인지 알거다. 그런데 그저 탈북민이 증언했다는 이유만으로 상식에 어긋나는 말들이 그대로 방송 전파를 탄다”

김련희 '평양시민'은 언론인권센터 주관으로 13일 열린 ‘북한 증언프로그램의 명암’ 토론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탈북자가 출연하는 종합편성채널의 예능 프로그램이 오히려 북한에 대한 정보를 왜곡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13일 언론인권센터 주관으로 열린 '북한 증언프로그램의 명암'토론회 (사진=미디어스)

김련희 유튜브 ‘왈가왈북’ 진행자는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이야기들이 탈북자 증언이라는 이유만으로 왜곡돼서 방송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채널A<이제 만나러 갑니다>, TV조선<모란봉클럽> 모니터링 결과다.

김련희 씨는 “탈북자들이 예능에 나와서 이야기하는 걸 보면 북쪽은 금강산에 가면 못 돌아오고, 재판이 없고, 죽을 때까지 수용소에 갇히는 것처럼 비춰진다”며 “한 번도 북에 가지 않은 이들이 북한을 비상식적인 국가로 인식하게 되는 건 언론이 분단의 비극을 잘못 활용한 결과라고 본다”고 말했다.

홍강철 유튜브 ‘왈가왈북’ 진행자도 “주변 탈북자들은 거의 종편 프로그램을 보지 않는다. 거짓말하는 프로그램을 왜 보냐고들 한다”며 “리설주를 누나라고 부른다는 등 경력을 부풀리거나 확인할 수 없으니 재미만 생각하고 과장한다. 심지어는 신곡이 나오기 3년 전에 해당 노래를 불렀다고 말한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홍 씨는 “채널A의 ‘이제 만나러 갑니다’의 방송 한편만 보면 북한은 그런가보다 넘어가기도 하겠지만 출연자가 출연한 방송분 전체를 놓고 보면 말이 제각각 달라지는 걸 알 수 있을 거다. 그런데 제작진은 이를 알면서도 바로잡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3개월 동안 진행된 탈북민 증언프로그램 모니터링 결과를 바탕으로 발제한 강주희 사회학 박사는 보도보다 예능 프로그램에 특히 공정성이나 객관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북한 체제를 왜곡하고 비정상적인 국가로 묘사하거나, 북한 지도층을 과장·희화화하고, 본인의 경험 중 고생한 부분만을 과장해서 표현하는 부분이 공통적으로 나타났다고 짚었다. 모니터링 결과 중 기존에 나온 기사들로 검증 가능한 과장·왜곡된 사례들을 모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심의를 올리기도 했다.

강 박사는 “예능 프로그램들이 북한과 남한의 이질성을 강조하고 고착화하는 역할을 했다”며 “예능이라고 하더라도 객관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야한다. 적어도 방송사 내에서 객관적으로 발언을 검증할 시스템 도입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심영섭 경희사이버대학교 겸임교수는 “종편 예능이 나오며 흥미 위주로 강화됐다. 객관적이고 정제된 정보 중심이 아니라 글자 그대로 엔터테인먼트가 돼버린 것”이라며 “종편의 북한 관련 예능 프로그램 경쟁 속에 과장·왜곡된 발언들이 확대 재생산됐다”고 했다.

토론자들은 예능프로그램도 최소한의 사실확인 절차가 필요하고 왜곡을 방지할 장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서민수 MBC 통일방송추진단 부장은 “KBS <남북의 창>, MBC <통일전망대>와 달리 채널A와 TV조선은 예능에 중점을 두다 보니 언론의 기본 원칙에 소홀해진 측면이 있다”며 “검증할 만한 사람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짚었다.

서 부장의 설명에 따르면 MBC <통일전망대>의 경우, 탈북 시점이 달라 시·공간에서 발생하는 오류를 방지하기 위해 이슈별로 지역과 탈북연도를 따져 출연자를 섭외한다. 탈북민이 증언하는 코너에서는 북한 관련 전문 교수나 연구학자 등 전문가를 함께 출연시켜 왜곡이나 과장 발언을 방지한다. 또한, 내부에 북한학 박사이자 북한 이슈를 오래 취재해온 데스크의 데스킹을 거쳐 오류를 바로잡는 과정도 거친다.

언론인권센터 언론피해구조본부 실행위원인 권현정 변호사는 “북한 관련 방송에는 더욱 세세한 심의 규정이 필요하다”며 “사실 무근인 경우 방송해서는 안된다거나 개인 경험이라도 너무 과장해 방송하면 안된다는 등 구체적으로 규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는 예능프로그램 뿐 아니라 북한 관련 언론보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심영섭 교수는 “국가보안법상 북한 관련 정보를 국가가 독점하고 있으니 허가를 받아야만 사실 확인이 가능한 경우가 있다. 언론은 ‘사실 확인이 어렵다’는 이유로 검증을 못하고 또 안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심 교수는 “하지만 북한 관련 보도 중에는 확인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며 “YTN은 2014년, 과거 KBS가 보도한 김정은 사진을 다른 맥락에서 활용 보도해 네티즌의 문제 제기로 들통난 적이 있다. 최근 TV조선의 ‘풍계리 폭파 취재비 요구’보도 등 언론이 확인 작업을 전혀 안 하고, ‘믿을 만한 소식통’이라며 그 정보를 그대로 인용하다 보니 오보가 양산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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