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조선일보가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오른 선거법 개정안을 두고 "선거제도 강제 변경은 국민의 선거 불인정 사태를 낳는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논의 중인 선거법 개정안이 자유한국당에만 불리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선거법 개정안 논의과정과 자유한국당의 입장변화, '민심 그대로'를 표방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을 고려하면 '국민 선거 불인정 사태'를 낳는다는 주장에 의문이 뒤따른다.

조선일보는 12일 사설 <선거제도 강제 변경은 국민의 선거 불인정 사태 낳는다>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대표 간 만찬 회동에서 선거법 개정안을 두고 고성이 오간 점을 들어 현재 선거법 논의를 비판했다.

조선일보 11월 12일 사설 <선거제도 강제 변경은 국민의 선거 불인정 사태 낳는다>

조선일보는 "민주당과 범여권 군소정당들이 밀어붙이고 있는 선거법 개정안은 범여권 정당 간의 선거 연대 맞춤형인 데다 한국당에만 불리한 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자신의 의석을 빼앗아서 나머지 정당들끼리 나눠 갖기 위해 선거제도를 바꾸자는데 가만히 있을 정당이 어디 있겠나"라고 한국당 입장에 힘을 실었다.

이어 조선일보는 현행 제도를 '민주화로 쟁취한 산물'이라고 했던 여권이 "민심이 악화하고 범여권 정당들과 연대가 필요해지자 제1야당이 반대하는데도 강제로 선거제도를 바꾼다고 한다"면서 "후진 독재국가에서도 없는 일이다. 선거제도 강제 변경을 끝내 강행한다면 국민 상당수가 선거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조선일보는 "강제 변경이란 무리수는 의원 정수 확대라는 무리수를 낳고 있다"고 썼다.

선거제도 개혁은 이른바 '게임의 규칙'으로 국회 합의 처리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 그러나 애초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적극 검토하고, 비례대표 확대 등을 논의하자는데 합의한 한국당의 입장이 180도 달라져 사실상 합의를 파기한 점, 유권자의 사표를 발생시키는 현행 선거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표심 그대로를 국회에 반영하자는 취지의 선거제 개혁 논의 배경 등을 고려할 때 '국민이 선거 자체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은 지나친 주장으로 보인다.

2018년 12월 15일 여야 5당 원내대표가 국회 정론관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검토를 합의한 것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 민주평화당 장병완 원내대표,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12월 15일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각당 원내대표들과 함께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방안 검토, 비례대표·의원정수 확대 논의 등의 내용을 담은 선거제도 개혁 관련 합의문을 발표했다.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이 공개한 5당 원내대표 합의서에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적극 검토한다 ▲비례대표 확대 및 비례·지역구 의석비율, 의원정수(10% 이내 확대 여부 등 포함해 검토), 지역구 의원선출 방식 등에 대하여는 정개특위 합의에 따른다고 했다. 또한 ▲석패율제등 지역구도 완화를 위한 제도도입을 적극 검토한다 ▲선거제도 개혁 관련법안은 1월 임시국회에서 합의처리한다 ▲정개특위 활동시한을 연장한다 ▲선거제도 개혁 관련 법안 개정과 동시에 곧바로 권력구조개편을 위한 원포인트 개헌논의를 시작한다 등 6가지 합의사항이 적시됐다.

그러나 한국당은 지난 3월 돌연 연동형 비례대표제 반대, 의원정수 30석 감축, 비례대표 완전폐지 등 합의사항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안을 당론으로 정해 사실상 합의를 파기했다. 현행 선거제도보다도 후퇴한 안을 내놓은 한국당은 이후 줄곧 '게임의 규칙'을 언급하며 선거제 합의처리를 요구하고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각 정당의 유불리를 떠나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 각 정당이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받아야 한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논의되는 안이다. 조선일보는 한국당의 주장에 대해 "자신의 의석을 빼앗아서 나머지 정당들끼리 나눠 갖기 위해 선거제도를 바꾸자는데 가만히 있을 정당이 어디 있겠나"라고 했는데, 같은 논리라면 한국당은 그동안 현행 선거제도에 따라 군소 정당의 득표 수를 사장시켜 거대 정당 기득권을 유지해 온 셈이 된다.

의원정수 확대는 반대여론이 높다는 점이 있으나 그 자체를 '무리수'라고 보기 어렵다. 우리나라의 국회의원 수는 OECD 국가 중 인구대비 최하위권이다. 한국을 포함한 OECD 34개국의 의원 1인당 인구 수 평균은 약 10만명이다. 한국의 경우에는 의원 1인이 약 16만명의 국민을 대표한다. OECD 평균에 맞춘다고 하면 한국의 국회의원 정수는 500명 수준이 되어야 한다. 국회 각 상임위원회 명칭이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등과 같이 각종 분야가 뒤섞여 나열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의원정수 확대에 대한 반대여론은 의원 특권과 불신 때문이다. 때문에 정의당 등에서는 의원 세비 총액 동결을 전제로 한 의원정수 확대를 주장하고 있다. 나경원 원내대표가 서명한 5당 합의서에도 의원정수를 10% 범위 내에서 늘리는 것을 검토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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