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검찰개혁이 화두인 시대라 그런가, 이제 다들 검찰이 무슨 일만 하면 호통을 친다. 검찰이 ‘타다’를 운영하는 VCNC와 쏘카의 대표들을 기소한 것에 대해서도 그랬다. 정부가 당사자들의 이해관계를 조율하며 법제화 작업에 한창인데 검찰이 이런 과정을 모두 무시하고 덜컥 기소를 해버리면 어찌하느냐는 취지의 볼멘소리를 청와대 참모 및 장관급 인사들이 연이어 내놨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사례를 들어 검찰이 정치에 이어 정책에도 개입하고 있다는 평을 내놓은 인사도 있었다.

그러나 검찰의 해명을 들어보면 오히려 정권의 갈팡질팡이 문제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자타칭 ‘진보언론’을 포함한 거의 모든 언론들이 비판적 사설을 내놓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보도에 의하면 검찰은 이 사안이 정책적 판단을 필요로 한다고 보고 법무부를 통해 관계 부처에 의견을 구했다고 한다. 법무부는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검찰이 국토교통부에 직접 질의를 했다는 보도도 있다. 이 보도에 의하면 국토교통부 역시 당사자들의 의견 조율을 하는 과정에 영향을 우려해 구체적 의견을 회신하지 않았다고 한다.

관계 부처의 핑계인 이른바 모빌리티 플랫폼 업체와 기존 택시업계 간 협의가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 같지도 않다. 정부는 연내에 입법 절차를 완료하겠다는 계획이지만 모빌리티 플랫폼 사업자들은 최소한의 합의가 가능한 대목만 법으로 정하고 나머지 민감한 사안은 시행령으로 정하기로 한 것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고 한다. 모빌리티 플랫폼 업체끼리도 이해관계가 갈리는 대목도 있다. 내년이 총선이라 아무래도 연내 입법은 회의적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재웅 쏘카 대표 (연합뉴스)

언론을 통해 보도된 검찰의 공소장 내용을 보면 지금까지는 시작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쟁점은 ‘타다’의 서비스를 렌터카 중개로 볼 것인지 콜택시 영업으로 볼 것인지다. 검찰의 결론은 후자라는 것인데 근거가 문제이다. 타다와 운전자 간의 고용계약과 실제 근로형태 등을 볼 때, 고객과 기사를 중개한 게 아니라 실제 기사를 고용해 유사 택시 영업을 한 걸로 봐야 한다는 거다.

타다의 본질이 택시 영업이라면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의 적용을 받는다. 파견법 시행령은 여객자동차운송사업에서 운전업무를 파견금지 대상으로 정하고 있다. 따라서 타다 운전자들의 고용형태는 불법파견에 해당한다. 이 논리는 택시업계가 고용노동부에 낸 진정에도 포함돼있다. 고용노동부는 이에 대한 판단을 법 개정 이전까지 보류한다지만 ‘시한폭탄’의 초침이 돌아가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이런 판국에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은 어떻게 하자는 것일까? 모빌리티 플랫폼 사업을 별도의 법으로 규정해 파견이 가능한 업종으로 만들자는 법안이 발의돼 있지만 이 역시 택시업계와의 형평성 문제가 쟁점이라고 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형평성만이 문제가 아니다. 이런 식이라면 어떤 방법을 동원하든 결국 규제를 풀어 불안정 노동을 일상화 하자는 결론을 피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게 가장 심각한 문제다.

이제는 다들 플랫폼 노동자와 사각지대를 논하며 긱 이코노미 등을 얘기하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택시노동자들도 ‘사납금 제도’ 등에서 보듯 노동자냐 아니냐의 경계로 밀려난 지가 오래이다. 우리가 정말 “아버지는 평생 한 가지 일만 하셨다. 나는 평생 여섯 가지 일을 할 것이고, 내 자녀는 동시에 여섯 가지 일을 할 것이다” 따위의 말을 거부할 수 없는 세상을 살 수밖에 없다면, 사회안전망 강화와 이를 가능케 하는 일련의 제도개선이라도 이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이해당사자들이 서로를 설득하고 양보하는 사회적 대화와 합의가 가능해야 하는데, 이 정권은 거의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사실상 이를 포기했고, 그냥 해야 되니까 하는 일들만 남았다. 결론은 ‘4차 산업혁명’이라는 변죽만 울리다 마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 뭐라도 성과를 내려면 이해당사자 중 가장 힘이 없는 노동자를 더 불안정한 신세로 만들고 생색을 내는 것만이 답이다.

정부의 ‘컨트롤타워’ 실종 사태의 한 사례로 같이 꼽히는 것은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통해 느닷없이 ‘정시 확대’를 직접적으로 언급한 일이다. 보도에 따르면 그 다음날 교육부 차관은 “지금 우리가 멘붕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교육부를 ‘패싱’하고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개입했다는 설도 있다. 평소 현실을 모르는 ‘진보’와 시민단체를 윽박질러온 분이니 꽉 막힌 ‘일부’ 교육부 관료들(이들과 반대되는 입장의 일부 관료는 지난해 장관을 ‘패싱’하고 서울 시내 주요 대학에 전화를 걸어 정시 모집 확대를 종용했다는 이유로 고발을 당했는데, 검찰은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 했다)을 무력화시키는 것에 일말의 망설임이 없었을 것 같기도 하다.

정시 확대가 강남권의 고소득층에 유리한 제도라는 말은 더 할 필요도 없다. 이걸 몰라서 이러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 사석에서 만난 이는 정시 확대를 지지한다며 “개천에서 용이라도 나게 해줘야 할 것 아니냐”고 했다. 여기서 핵심은 “이라도”에 있다. 누구 말마따나 “개천에서 붕어, 개구리, 가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은 영영 오지 않을 것 같으니, 돌연변이로 기적처럼 나타난 이무기 한 마리에게라도 기회를 보장하라는 것이다. 이 정권은 행복한 개천을 만들 책임을 다하는 게 아니라 이런 사람들의 냉소적 현실 인식에 편승하며 정파적 이득을 얻는 일에만 골몰하고 있는 게 아닌가.

세상을 지금보다도 더 모르던 시절, LCD 모니터 공장에서 파견 노동을 했다. 끝이 좋지 않았다. 앞으로 모든 노동자는 파견 노동자가 될 거라고 어느 게시판에 썼다. ‘사장님’이 법적 책임을 피해가기 너무나 좋은 시스템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후 덤프트럭 운전기사들의 노동조합에서 일하면서 글을 고쳐 썼다. 모든 노동자는 파견노동자 또는 특수고용노동자가 될 것이다.

거의 15년이 지난 지금은 기간제 계약직도 연줄 없으면 못 한다고 여기는 시대가 됐다. 서초동과 광화문의 인파들 속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이렇게 고장난 시대를 고친다며 정치권력이 모두에게 공평한 불행을 선사하는 광경이다. 이런 일이 마치 손바닥을 뒤집는 것처럼 반복되고 있지만, 어차피 같은 손의 등과 바닥이다. 차라리 우리 모두에게 나라를 다스릴 권력을 나누어 달라.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라도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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