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개혁연대가 5일 ‘우리나라 주주대표소송의 현황 및 과제’라는 자료를 발표했다. 지난 1997년부터 올해 7월까지 각급 법원에 제기된 주주대표소송이 44건으로 한 해 평균 4.4건에 불과하다는 내용이다. 44건은 소취하까지 포함된 수치다.

6일자 한겨레신문은 경제개혁연대의 자료를 인용 보도하면서 이런 제목을 달았다. <주주대표소송도 ‘물방망이’ … 한 해 고작 4건>. ‘물방망이’라고 단정한 데에는 근거가 있다. 연간 2000∼3000건 정도 소송이 제기되는 미국과 평균 200여 건 정도의 소송이 발생하는 일본에 비해 비교가 되지 않는 수치이기 때문이다.

까다로운 소송요건으로 한 해 평균 4건 꼴

▲ 한겨레 9월6일자 20면.
10여 년 동안 제기된 44건의 소송 가운데 시민단체가 주도한 주주대표소송은 6건. 소액주주들이 제기한 소송은 14건이고, 상장법인을 상대로 제기된 소송이 20건이었다.

이처럼 ‘실적’이 빈약한 이유가 뭘까. 경제개혁연대는 까다로운 소송요건을 꼽았다. 상장법인의 경우 0.01% 이상 지분을 6개월 이상 보유해야 소를 제기할 수 있다. 비상장법인도 1% 이상의 지분을 보유해야 소를 제기할 수 있기 때문에 소액주주들로서는 소송 자체가 상당히 버거운 실정이다. 한겨레는 6일자에서 “실제 시가총액 상위 30위 종목에서 주주대표소송 제기에 필요한 0.01% 지분의 평균 시가는 16억6천여만원을 웃돌았다”고 지적했다.

이쯤 되면 주주대표소송이 ‘물방망이’가 아니라 사실상 ‘무력화’된 제도나 마찬가지다. 주주대표소송제의 도입 취지가 무엇인가. 주식회사 이사 등이 부정이나 불법행위를 저질렀을 경우 이에 대한 책임을 묻는 차원에서 도입한 제도 아닌가. 하지만 이 정도로 ‘무력화’된 상황이라면 개정이 불가피하다.

보다 소송요건을 완화하는 방안을 추진하든지 아니면 단 한주라도 주식을 갖고 있으면 소송을 할 수 있도록 ‘단독주주권’을 인정하는 방안도 장기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모회사의 주주가 자회사(특히 비상장회사)의 이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이중대표소송의 도입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정리하면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경제지 일제히 침묵 … 한겨레 정도만이 비중 있게 보도

하지만 이 사안은 언론에 의해 ‘철저히’ 외면 받았다. 6일자 전국단위종합일간지와 경제지 가운데 경제개혁연대의 ‘자료’를 기사화한 곳은 두 군데. 한국일보와 한겨레신문이다. 그나마 한국일보의 경우 1단으로 보도했고, 비중을 둔 곳은 한겨레 정도였다. 머니투데이와 파이낸셜뉴스가 온라인에서 보도를 했지만 6일자 ‘오프라인’에서는 기사를 싣지 않았다. 한마디로 경제지들은 6일자에서 이 사안 자체를 다루지 않았던 것이다.

주주대표소송이 결국 소송 남발로 이어질 것이고 이로 인한 경영활동 위축 등의 부작용으로 연결돼 결국 ‘기업 죽이기’로 갈 것이라며 극구 반대 입장을 표명해왔던 많은 신문들. 특히 경제신문들의 표정이 상당히 궁금했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끝내 언급 자체를 하지 않았다. 마치 청문회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잘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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