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취업 준비생 70만 시대, 그중 31%가 ‘공채’를 준비하는 '공시생'이다. 그런데 웬걸, 정작 그들이 두드리는 문이 사라져간다. 전체적으로 하반기 정기 공채가 11.2%나 줄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대기업 공채가 폐지되거나 축소되고 있다. 2019년 하반기 신입 공채 중 대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45.6%, 하지만 20%는 미정이거나 34%는 아예 신입사원 모집이 없다고 한다.

공채 폐지를 선언한 현대자동차는 최신 기술을 가진 사람을 신속하게 확보하여 적재적소에 배치, 시장 변화에 빨리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채로 뽑은 인력으로 더는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에 맞춰갈 수 없다는 것이다.

EBS 1TV <다큐 시선> '공채의 종말' 편

구직자들 가운데 이런 현대자동차의 결정에 '반대'를 표명한 사람들이 50%나 된다. 무엇보다 그간 공채를 꾸준하게 준비해온 입장에서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결정이다. 정해지지 않은 기준으로 신입사원을 뽑는 '수시 채용' 자체가 불분명하며, 시험의 안정성과 공정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불만이 가장 컸다. 각자가 가진 문화자본에 의해 차별받을 수 있다는 우려, 무엇보다 기업이 요구하는 트렌드에 맞는 경력은 또 어디서 어떻게 쌓아야 하느냐는 하소연이 나온다.

그러다 보니 취준생들은 더욱 공채에 몰릴 수밖에 없다. 지난 9월 실시된 EBS 공채 시험, PD 2명, 방송 기술직 2명, 기자 6명, 경력직 6명을 뽑는 시험에 2000명이 몰렸다. 평균 150대 1. 하지만 들여다보면 신입직은 더 높고, 그중에서도 PD 부문엔 무려 1000명이 몰려 500대1이 되었다. 꿈을 이루기 위해 나와 같은 꿈을 가진 또래 500명을 제쳐야 하는 현실. 2019년 상반기 구직자 1인당 평균 입사지원 횟수 13회, 서류 합격 그중 2회, 최종까지는 합격률 26%, '공채가 복권 당첨보다 어렵다'는 우스갯소리가 등장한다.

공채가 뭐길래

<당선, 합격, 계급>의 장강명 작가는 자신이 경험한 문학 공모전이 한국 사회 채용제도의 또 다른 버전이라 정의 내리고 있다. 동일한 시험을 통해 적합한 사람을 뽑을 수 있다는 전제에 기반한 '공채'는 실제 한국과 일본에서만 실시되고 있는 신입사원 채용 과정이다.

1957년 삼성물산에서 시작된 공채. 당시 27명 모집에 1200명이 지원, 공채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50년대 이후 빠른 성장을 이룬 우리나라 기업 환경에서 많은 사원이 필요했고 공채는 제2의 수능, 취업 과거제로 우리 사회의 '계급 사다리' 역할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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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 작가는 이런 공채를 사람들이 살아가기 힘든 벌판에 있는 ‘대기업, 공기업, 전문직’이라는 몇 채의 성에 비유한다. 그나마 그 성에 들어가야 좀 살기가 났기에 1년에 한번 성문을 열 때 너도나도 그 문을 통해 성으로 들어가겠다고 아우성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러기에 구직자 입장에서 '공채의 종말'은 '사다리 걷어차기'라 여겨질 것이라 한다.

공채의 종말, 그 시작은 IMF이다. IMF 이후 노사정 3자가 구제금융 한파와 급박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고용조정(정리해고)제와 근로자 파견제의 법제화를 합의,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소수 좋은 일자리와 다수의 질이 좋지 않은 비정규직 중심의 일자리라는 '이중구조'가 형성됐다.

당연히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제일 먼저 눈에 띄는, 보장된 일자리를 향해 매진할 수밖에 없다. 이제 2년 차에 들어선 이인선 씨 역시 예외는 아니다. 이른바 노량진 공시생인 그녀는 아침 6시에 눈을 떠서 밤 12시까지 공부, 공부, 또 공부로 이어진 일상이다. 간혹 끝이 없다는 절망감, 상실감에 헤매지만, 그 길의 끝에 청춘을 다 바친 보상이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 또한 놓지 않고 공채 성공의 그날을 기대해 본다.

지방이라고 다를까. 고향인 충남 예산에서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세연 씨는 매일 자소서와 이력서를 넣으며 보낸다. 1년 6개월 지금까지 넣은 이력서만 100개가 넘는다. 면접도 15번이나 봤다. 그런데도 이제 그녀는 혹시나 도움이 될까, 다시 기사 자격증 시험을 본다. 공채에 합격하기 위해 또 다른 시험을 봐야 하는 현실이다.

인선 씨나 세연 씨에게 공채의 문이 좁아지는 현실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좁지만 그래도 공정하고 가능한 통로가 생각되는 공채. 하지만 그조차도 이젠 변화하는 산업 환경에서 적절한 인재를 얻는 방법이 아니라고 '수시 채용'을 도모하는 기업. 안정적 구직과 변화하는 트렌드의 딜레마가 바로 2019년 청년들이 마주한 현실이다.

변화하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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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1,144명에게 수시 채용에 대해 물었다. 찬성 측 36%는 일정에 구애받지 않는 점을, 28%는 연중 지원이 가능하다는 점, 17%는 채용 전형이 짧아 빠르게 취업할 수 있다는 걸 장점으로 꼽았다. 반면, 41%의 반대 의견은 무엇보다 수시 채용이 되면서 채용 규모가 줄어들 것을 우려했다. 29%는 일정 파악과 대비의 어려움을 들었다. 22%는 수시 채용이 된다면 수요가 있는 직무만 뽑히게 될 것이라 했다.

이시한 교수는 일찍이 이런 상황을 예측, 공채가 아니더라도 취업의 문을 여는 열쇠에 대해 강의를 해왔다. 이 교수는 말한다. 대다수 취준생들이 대기업에 몰리는 이유 중 하나는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가 명확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에 반해 중 기업의 경우에는 어떤 기업인지조차 잘 알려지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라는 것.

결국 수시 채용으로 변화하는 트렌드에 맞춰 더 높은 차원의 정보 공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기업 정보와 구직자 정보를 공유하는 ‘비지니스 네트워킹 프로그램’이 등장하고 있다. 10년 뒤에 자신이 다니는 회사에서 자신이 하던 업무가 없어질 수도 있는 변화의 시대, 사람들은 자신의 영역, 자신의 회사를 넘어 '인맥'의 네트워킹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취업에도 등장한 '수시’는 흡사, 최근 우리 사회를 달구고 있는 '타다'와 기존 택시업계의 갈등과도 같다.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춰 인력 조달에 변화를 꾀하려는 산업, 그럼에도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기 위해 전통적인 시험을 통해 정규직의 좁은 문을 향해 몰려드는 취준생들. '업무능력 중심'의 사회로 변화해 가는 길목에서 공채는 점점 문이 좁아지고, 그 좁은 문을 향해 여전히 달려가는 취준생들의 뜀박질은 버겁다.

업무능력 중심 사회로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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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방법은 없을까? 가격비교 플랫폼 커뮤니티 대리가 된 8년차 직장인 송기훈 씨의 방식은 어떨까? 그도 한때는 남들 다하는 언론사 공채를 준비했었다. 서류전형 통과조차 쉽지 않자 스스로 현장을 찾아다니며 찍은 보도 사진 포트폴리오로 길을 뚫었다. 하지만 마지막 관문에서 매번 좌절, 사진 기자인데도 일반 신문 기자와 똑같은 방식을 통해 뽑는 언론사 시험에 반발도 생겼다.

그래서 한 회사의 사보를 시작으로 이직에 이직을 거듭하며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 갔다. 콘텐츠 회사를 거쳐 지금 회사에서 이제 대리까지 된 그는 자신의 경험을 취준생들과 나눈다. 그가 정의한 '공채'는 제일 먼저 눈에 띈 통로이다. 하지만 그저 먼저 눈에 띄었을 뿐, 가까이 가보니 들어가기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대신 옆에 있는 작은 통로를 통해 전진하는 중이다. 그는 충고한다. 공채를 준비한 시간을 '허비'했다 하지 말고 진정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을까, '도모'할 수 있는 시간이 되도록 하라고.

아예 처음부터 '다른 길'을 걸은 이혜인 씨도 있다. 온라인 클래스 플랫폼 팀장, 하지만 겨우 입사 4개월 차이다. 하지만 '직무 능력'에 맞춰 이곳에 들어온 그녀이기에 업무 순환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대학을 나와 자신이 원하던 일을 하다 보니 콘텐츠 기획 마케팅의 분야에서 일하게 되었다는 혜인 씨에게 공채는 다른 세상이야기이다. 그녀 역시 회사보다 직무가 먼저다.

다큐는 여전히 고단한 '공채'의 현실에서 출발하여 수시 채용을 모색하는 변화하는 산업 환경을 짚는다. 그렇게 이미 와있는 새로운 세상에서 공채에 발이 묶이는 대신 다른 길의 모색을 고려해 보자고 조심스레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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