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신문>과 <데일리안> 등에 동시 연재되고 있는 공방노의 “정연주 5년을 고발한다”를 고발한다 !

- 정치권력의 것은 정치권력에게로, 국민의 것은 국민에게로 -

어느 날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가이사(카이사르)에게 세금을 바쳐야 하는지에 대해 물으러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세금을 바치지 말라고 대답하면 그것을 빌미로 로마에 고자질하여 잡아 들일 속셈이었지요. 그러자,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쳐라”(마태복음 22:15~22)라고 말씀하셨다지요.

공정방송노조(이하 공방노)에서 <독립신문>과 <데일리안> 등에 동시 연재하고 있는 “정연주 5년을 고발한다”는 글을 읽으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는 이들이 꽤 많습니다. 그것은 이 글이 마치 “공영방송 수장자리를 가이사(집권세력)에게 바쳐야 하지 않겠습니까”라는 문맥으로 읽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러한 질문에 명분을 더한답시고 공영방송 내부의 도덕적 해이를 과장하여 공영방송 종사자들의 명예를 심대하게 훼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공방노의 이런 글이 공영방송의 수장자리를 정치적 흥정의 대상으로 바라보거나 공영방송의 존재이유를 부정하는 이들에게 공영방송 때리기의 선전물로 제공되어야 하는 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듭니다.

▲ KBS공정방송노조, 정 사장경영실패 고발ⓒ데일리안
공영방송의 도덕적 해이는 어떤 이유로든 용납되기 힘든 자기파멸적인 ‘암세포’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공방노가 공영방송의 도덕적 해이를 비판하면서 다음과 같은 사족을 다는 일은 어떤 이유로도 그 명분의 순수성을 인정받기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이미 해도 기울고 있다. 정연주 씨의 사장 재임 5년은, 어떻든 모든 사원들에게 과거 어떤 사장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자국을 남겼다. 어떤 사람은 뜻밖에 ‘특별 승격’이란 기쁨을 누렸을 수도 있다. 시쳇말로 팀장이라도 한 자리 꿰찬 적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5년이었을 수도 있다. 결코 같을 수 없음에도 코드가 다르다는 이유로, 아니면 아무런 이유도 모른 채 하루아침에 생매장 당하는 그런 참담함을 느꼈을 수도 있다.”(공방노 “정연주 5년을 고발한다” 1편 중)

팀제도입과 관련해서 나름 이해하기 힘든 고초를 겪었다고 믿는 공방노 조직원들의 입장을 이해 못할 바도 아니지만, 오히려 문제는 지난 5년 동안 공영방송의 존재규정을 좌파들의 이념투쟁 도구로밖에 인식하지 못하는 공방노 조직원들의 천박한 사고체계입니다.

그것은 과거 소련의 스탈린 시대에 자행되었던 가혹한 정적의 숙청, 또는 중국 마오쩌뚱 시대에 홍위병들이 자행했던 끔찍한 지식인 숙청만을 공산주의의 본질인양 선전해댔던 냉전적 사고의 유물보다 더 비루합니다.

누가 이념의 시대로 복귀할 것을 주장하는가?

정연주 사장 5년 동안 자신들이 간부가 되지 못한 이유를 마치 반대되는 이념을 가진 세력의 숙청조치로 여기고, 마치 자신들이 이념의 희생물이며 순교자인 양 행세하는 그 황당한 피해의식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공영방송이 한 사회의 공론장으로 기능한다는 것은 그 사회의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을 온전히 반영하고 녹여낼 수 있음을 뜻합니다. 이는 서로 다른 생각과 이해관계들이 충돌할 경우 필연화할 수 밖에 없는 갈등과 분열상을 양 극단으로 몰아세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장점을 살펴보게 하고 서로의 단점을 성찰하게 만들어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민족상잔의 비극 이후에도 여전히 그 위세를 떨치고 있는 한국사회의 이념적 갈등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 답답할 따름이지만 이제는 누군가 나서서 그 치유책에 대한 고민을 본격적으로 실천할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이미 우리사회는 탈이념화되고 있는 세계적 추세 그대로 유연하고 실용적인 가치를 지닌 세대들이 다수를 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이념적 유산을 기득권화하고 있는 세력들은 이러한 변화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불행히도 그것은 좌우를 가리지 않는 듯 합니다. ‘시장자본주의(국가의 강력한 통제를 인정하는)’를 맹신하는 우파들은 막대한 금권이라는 기득권을, 또한 ‘노동계급의 형해화된 당파성과 냉전체제에 기반한 민족주의’를 절대진리로 믿고 싶어하는 좌파들은 한 줌도 안되는 지지세력이라는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 합니다. 이들 모두는 현실과 동떨어진 ‘도그마화된 이념의 포로’라는 측면에서 ‘수구세력’이라는 딱지가 제격입니다만, 그들은 이마저 별로 개의치 않는 듯 합니다.

▲ KBS 정연주 사장ⓒKBS
문제는 이 과정에서 실제 우리의 삶을 구속하고 있는 이념이 아닌 실체로서의 ‘신자유주의’라는 괴물을 우리사회가 놓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효율과 무한경쟁, 그리고 탈규제라는 그럴싸한 명분으로 포장하고 있는 이 괴물이야말로 산업자본주의 시대의 자본가와 노동자의 갈등과 대립구도를 무력화시키면서 전지구적 황폐화, 극단적인 사회 양극화를 강제하고 있는 실체임에도 말입니다.

이런 현실진단은 공영방송이 이념적으로 더 유연해져야 하고, 공동체의 가치와 존속을 위해 더욱 치밀하게 신자유주의적인 질서를 파헤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좌측 깜박이를 켜고 우회전해버렸던 정권, 그리고 우측 깜박이를 켜고 포퓰리즘적인 좌파정책을 펴고 있는 우파 정권의 난맥상에서 보여지듯이 전지구적으로 관철되고 있는 신자유주의는 그 실체를 파악하기가 무척 어렵기 때문입니다.

좌파이념의 희생양인양 거룩한 우파의 순교자라고 믿고 싶어하는 공방노 조합원에게 이런 신자유주의의 위협은 어쩌면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당장은 고액 연봉자로서 지위와 신분이 보장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공영방송이 처한 위기의 진실조차 왜곡해서는 곤란합니다.

공영방송 체제의 위기는 과장되었다?

공영방송 체제는 이미 전지구적으로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공영방송의 상품적 가치에 눈을 돌린 자본의 민영화 요구가 드세졌기 때문입니다. 유럽 최대의 공영방송 중 하나였던 프랑스의 TF1은 프랑스 지식사회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미 오래 전에 민영화되었고, 공영방송의 세계적 모범인 BBC조차 조직 축소의 압박에 내몰려 있습니다. 또한 가까이 일본의 NHK는 방만한 경영과 도덕적 해이에 대한 사회적 질타 속에 조직 축소안이 의회에서 논의되고 있기도 합니다.

수신료 수입이 전체재원의 40%대에도 미치지 못하고 세계의 유수한 공영방송사들의 총수입의 1/4~1/5정도밖에 되지 않는 공영방송 KBS의 재정위기 또한 1998년 IMF 경제환란 이후 고착화되고 있는 것은 이제 KBS 내외부의 모든 이들에게 상식처럼 되어 있습니다.

비용의 증가는 차치하고서라도 수신료 수입이 한계에 도달한 상황에서 절반을 차지하는 광고수입이 지속적으로 축소되고 있는 현실은 결코 외면할 수 없는 공영방송 KBS의 실체적 진실입니다.

그런데 공방노는 “정사장 5년을 고발한다” 2편에서 정연주 사장 5년 동안 KBS가 1,500억 누적적자를 기록했으며, 이는 정연주 사장이 경영실책 때문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디지털 전환비용 문제나 방송제작비에 기술경비가 포함됨으로써 실 방송제작비가 증가하게 된 맥락 등 여러 가지 복잡한 변수들은 다 생략한 채 오직 정연주 사장 이후의 적자구조만을 문제삼은 것입니다.

▲ 서울여의도 KBS 본관ⓒ미디어스
정연주 사장의 2004년 경영성과를 옹호할 이유는 없으나 공방노의 1,500억 원 적자 주장은 분명 적잖은 과장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즉, 법인세 환급금 소송에 따른 환급금 930억 원(2005년 556억 원, 2006년 374억 원)을 오히려 1,100억 원 손해라고 규정하고 공식적인 적자규모 계산에서 빼버린 데다 2007년 추정적자와 2008년 적자 예산편성된 것을 다 포함하여 2004년부터 1,500억 원 적자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법인세 환급금 소송에서는 2,000억 원을 환급받을 수 있었는데 소송을 조기 종결하는 바람에 1,100억 원의 손해를 봤다는 주장은 일견 솔깃해지기는 하나 이는 단지 가능성일 뿐 회계에서 미래의 추정이익을 실제 계산에 적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억지스럽다라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수신료 인상과 관련된 논의들이 국회로 집중되고 있는 시점에서 2008년 적자 편성된 예산까지를 굳이 집어넣은 수치를 외부에 떠벌리고 있는 행태(자유주의 연대 등 우파단체들의 기관지와 웹진에 연재)를 어떻게 이해해야할 지 참 당황스럽습니다.

더군다나 2004년 적자를 방송제작비 때문이라고 규정하고 특정직종에 대한 과도한 비난을 집중하는 데는 아연할 따름입니다.

정연주 사장이 아닌 다른 사장이었다 해도 2002년 이후 본격화된 ‘K2 프로젝트’는 필연적으로 진행될 수 밖에 없는 과업이었습니다. 그것은 KBS 2TV를 공익적이면서도 경쟁력있는 채널로 만들어야 한다는 내외부의 강력한 요구이기도 하였습니다. 다행히 ‘K2 프로젝트’는 2004년 이후 일정한 결실이 맺어 2TV 채널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였습니다. 방송제작비의 지원이 물론 그 성공의 밑받침이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재개된 제작비 삭감과 더불어 2006년 이후 2TV의 채널경쟁력은 안타깝게도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려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방노는 PD직종에 대한 특혜시비, 그리고 방송제작비와 인건비의 방만성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이는 지금 제작현장의 수많은 동료들을 분노하게 하고 있을 뿐아니라 수신료 인상의 주요한 명분이 되고 있는 KBS 프로그램의 성과들을 심각하게 폄하시키고 있습니다.

특히 지상파 광고시장의 폐쇄적 구조에서 KBS의 적자는 그대로 타 지상파방송사의 수익으로 돌아간다는 점에서 프로그램의 경쟁력을 고려하지 않고 KBS의 적자와 타 지상파방송사의 흑자구조를 단순 비교한 점, 채널당 제작인원이 타 지상파에 비교해서 각각 1/2, 4/5밖에 되지 않아 만성적인 인력부족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인건비 비중을 문제삼는 것은 공방노의 이 글이 정말 내부자가 쓴 것인지 조차 의심하게 합니다.

지난해 국내외적으로 호평을 받으며 방송되었던 특별기획 <차마고도>는 세계 유수방송사들조차 제작진의 신변안전과 막대한 제작비용을 이유로 접근하지 못한 위험한 지역이었으며 이 곳을 KBS의 PD와 카메라맨들은 거의 맨몸으로 누비며 만들었던 저간의 사정을 생각하면, 공방노의 이러한 주장을 도무지 같은 직장의 동료의 그것이라고 믿기에는 너무도 참담합니다.

정치권력의 것은 정치권력에게 국민의 공영방송은 국민에게로

누가 뭐래도 지금 공영방송을 위협하고 있는 가장 큰 적은 공영방송의 토대와 근본이념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는 신자유주의 세력입니다. 이들은 공적 재원으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을 비효율의 상징으로 매도하고 이러한 반대여론을 바탕으로 공영방송을 시장에 팔아버리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그러한 의도를 관철시키고자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이원화(다공영 일민영 체제 ⇒ 일공영 다민영 체제)하고 강력한 대통령의 권한 밑으로 두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신자유주의 세력의 도전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지난 20년 동안 우리사회 축적된 민주화의 역량은 공영방송 체제를 지키는 일정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공영방송 체제 내부에서는 신자유주의 세력에게 창의적이고 공공적인 제작기반을 비효율로 고발하고, 이념적 편향을 빌미로 건전한 사상과 이념의 논쟁의 장마저 부정해버리는 기막힌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공영방송의 본질적 위기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자신의 입신양명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이들에게 어떤 역사적 평가가 내려질 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께서 주신 현명한 답은 이들에게도 유효할 것 같습니다. 권력욕에 눈이 멀어 공영방송의 가치를 내팽겨치고 그 수장마저 정치권력의 품에 떠넘기고자 하는 이들은 조속히 정치권력의 품으로 떠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공영방송은 신자유주의 질서 속에서 극단적인 생존조건을 강요받는 국민의 품에서 더 섬세하고 더 날카로운 비판의 눈으로 신자유주의의 폭력에서 맞서야 할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만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대학시절의 고민을 놓치 못한 채 공영방송에 입사했지만, 공영방송에서 조차 이 고민을 다 담지 못하고 이제 두 딸아이의 미래를 위한 나름의 헌신과 실천을 고민하는 생태주의자 ‘고니아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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