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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하게 불평등한 나라를 원하는가[기고] 강남규 문화사회연구소 운영위원
강남규 문화사회연구소 운영위원 | 승인 2019.10.29 08:33

[미디어스] 공정함이 시대정신이라는 주장이 넘쳐흐른다. 대통령도 이 주장을 받았다. ‘국민들이 학생부종합전형(학종)보다 정시가 더 공정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대학 입시에서 정시 비중을 확대하겠다’는 정책 방향을 내놓았다. 학종만큼이나 정시 역시 투자 가능한 자원이 넘치는 부유층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점에서 이 방향 전환은 거의 해롭다고 느껴질 정도이지만, 일단 그 점은 잠시 접어두고 ‘국민들이 공정함을 원한다’는 말에 대해서만 얘기하자.

정시 비중 확대 정책이 발표되자 가장 먼저 들썩인 건 다름 아닌 사교육 시장과 부동산 시장이었다. 점수 하나로 줄 세우는 정시가 중요해지는 만큼 얼마나 좋은 학원을 다니느냐가 당락을 좌우하게 된다는 오래된 믿음이 다시 작동하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다. 학원이 뛰면 부동산도 뛴다. 학원가가 군집한 지역들의 집값이 들썩이고 있다는 소식들이 슬금슬금 들려온다. 대표적으로 강남과 목동이 그렇다. 

문 대통령이 정시 비중 확대를 내놓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엔 유은혜 교육부장관이 전국의 자립형사립고‧외국어고‧국제고등학교를 2025년까지 모두 일반고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학부모들은 정책적 ‘무풍지대’인 과학고와 영재학교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고, 학군 좋은 지역의 집값 역시 들썩이고 있다는 기사들이 나왔다. 모두 똑같은 일반고라고 하지만 상대적으로 교육환경이 우수한 명문 학교와 그렇지 않은 학교의 차이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떤 지역 커뮤니티에서는 자기 지역의 자사고가 일반고로 전환되면 ‘아무나 갈 수 없었던 좋은 학교에 내 아이가 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니 학군이 좋아지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들도 보인다. 

사진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기성세대야 그렇다 치고, 20대는 어떤가. 그들은 절대적으로 공정함을 선호할까? 글쎄, 조국 전 장관의 딸이나 김성태 의원의 딸, 나경원 대표의 아들같이 부모의 덕으로 기회를 잡은 20대 언저리의 청년들이 공정함에 대해 무슨 말을 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조국 전 장관 딸의 입시특혜를 조사하라는 집회에서 ‘나도 조사하라’고 나선 명문대생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여성이 취업시장에서 받은 차별들에 대해서 남성들이 공정함을 요구하며 분노했다는 이야기도 들어본 적이 없다. 어쩌면 이들의 공정함이란 ‘내가 갖지 못한/할 것’에 대해서 선택적으로 분노하는 ‘죽창’과 같은 것은 아닐까. 달리 말하면 어떤 특혜를 가질 수 있게 된다면 굳이 공정함을 요구하고 나서지 않는다는 얘기다.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자는 정책에 청년들이 ‘공정하지 않다’고 강력 반대하는 목소리나, 휠체어를 타야 하는 장애인 대학생의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해 턱이 없는 강의실로 바꾸기로 했다는 결정에 ‘역차별이다’라고 분노하는 목소리들에 이르면 아예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어진다. 도대체 이들이 생각하는 ‘공정함’이란 무슨 의미인가?

이처럼 공정성에 별 관심이 없거나, 사실은 공정성이 아니라 갖지 못함에 분노하거나, 차별조차 불사하는 공정성을 주장하는 국민들의 위에서 문재인 정부의 정시 비중 확대 정책은 폭넓은 지지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이 정책이 폭넓은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0월 21일 당 최고위원 회의에서 한 말을 참고하면 좋다. “많은 국민들께선 설령 정시가 확대돼 부유한 가정에서 상위권 대학을 더 많이 진학하는 결과가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학종으로 야기되는 불공정성보다는 더 공정하다고 판단하시는 것 같다.”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의 슬로건(“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을 빌려 표현하면 이런 얘기다. 정시는 계급과 계층에 따라 투자할 수 있는 자원에 엄청난 차이가 존재하기에 기회는 결코 평등하지 않다. 결과는 말할 것도 없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학종 이전’이 만든 것 아닌가. 하지만 어쨌거나 단일한 기준으로 줄을 세우니까 ‘과정은 공정’하다. 공정하게 불평등한 나라, 그게 지금 우리 사회를 휘감고 있는 ‘공정성 담론’의 논리다. 

그런데 평등한 기회와 정의로운 결과에 무관심한 기계적 공정성이 종국에 다다를 곳은 결국 불공정이다. 이는 예언적인 주장이 아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대한 얘기다. 다시 말해 지금 우리 사회가 불공정한 것은 과정이 불공정했기 때문이 아니라, 학력고사와 같이 ‘공정한 기회’로 권력을 움켜쥔 자들이 과실을 독점하기 위해 사회를 재구성한 결과라는 것이다. 조국 전 장관에게 제기된 온갖 특혜 의혹들이 대부분 ‘합법적’이었다는 점은 이를 방증한다. 

좋은 학군에 다니지 않으면, 좋은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면, 좋은 직장에 취업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 그러니 할 수만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좋은 학군에, 좋은 대학에, 좋은 직장에 들어가야 한다. 그것들이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그 모든 과정에서 불공정이 싹틀 수밖에 없다. 가진 자들은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는 계급의 입구를 좁히려 특혜와 편법을 동원하고, 덜 가진 자들은 좁혀진 입구에 들어가기 위해 ‘교육 신화’와 ‘부동산 신화’에 병적으로 집착하며, 그보다도 덜 가진 자들은 이미 가진 것이라도 놓치지 않으려 여성과 비정규직과 장애인을 밀어낸다. 

대학에 가지 않아도, 좋은 직장에 취업하지 않아도 충분히 살 만한 사회라면 이런 지옥도가 펼쳐지겠는가. 그러므로 지금 우리 사회에 정말로 필요한 담론은 공정성이 아니라 불평등 담론이다. 불평등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학종이든 정시든 어떤 입시정책도 그 의도를 실현할 수 없다. 입시정책이 어떻건 더 가진 자들은 계급의 대물림을 위하여 모든 자원을 쏟아 부을 것이고 갖은 편법을 동원할 테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말이다. 정부가 대학에 ‘어떻게’ 가느냐가 아니라 대학에 가지 않아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느냐를 두고 고민할 때라야 입시제도는 비로소 공정해질 수 있다. 2012년의 슬로건을 잊지 않았다면 문재인 대통령도 그 사실을 모르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강남규 문화사회연구소 운영위원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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