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스타K>는 케이블TV라는 악조건을 뚫고 대한민국을 들었다 놓은 거함이다. 지금 김태원이 혼자서 그 거함을 위협하고 있다. <위대한 탄생>을 김태원이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드라마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김태원이 처음 예능에 나와 특유의 이상한 말투로 UFO 이야기를 할 때는 그냥 이상한 사람 같았다. 그후 <남자의 자격>을 통해 그냥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정이 가는 진솔한 약골 이상한 사람이라는 쪽으로 이미지가 달라졌다. 하지만 그건 리얼버라이어티라는 상황 속에서 김태원의 캐릭터 자체가 준 느낌이지, 그가 능동적으로 어떤 능력을 보여준 것은 아니었다. 그는 <남자의 자격>이 아닌 다른 예능프로그램에선 여전히 어색한 모습을 보여줬었다. 따라서 큰 기대를 갖게 하진 않았다.

<위대한 탄생>은 김태원의 예능적 능력에 기대를 많이 한 것 같았다. 1회 당시에 아나운서는 김태원에게 자꾸 말을 시켰다. 그때까지만 해도 김태원이 과연 프로그램의 중심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컸다. 과연 그가 <위대한 탄생>을 살릴 수 있을까?

<위대한 탄생>을 위대하게 만드는 김태원

본편이 시작된 후로 김태원은 허를 찌르는 촌평과 인간적인 모습으로 <위대한 탄생>에 온기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아 김태원이 괜히 김태원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이 가르칠 도전자들을 뽑을 때 김태원은 마침내 사고를 쳤다. 다른 심사위원들이 주저하는, 뭔가 하나씩 결점이 있어보이는 도전자들을 그가 모두 품은 것이다. 그는 '외인구단'이라며 스스로 자신의 팀에 캐릭터를 부여하고 스토리를 만들어나갔다.

이것은 <위대한 탄생>이 <슈퍼스타K>와 확연히 구분되며 독자적인 색깔을 갖게 된 결정적 계기였다. 냉정한 경쟁, 냉혹한 탈락이 주는 긴장감, 짜릿함뿐만이 아니라 너무 안타까워서 그 사람의 손을 잡아주는 따뜻함의 느낌말이다. 이것으로 <위대한 탄생>은 감동의 드라마가 되기 시작했다.

즉 그는 단지 재기발랄한, 웃기는 재담 몇 마디를 던진 차원이 아니라 프로그램 자체의 정체성을 만들어내고 모든 사람들이 그 안에서 자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판을 짜는 역할을 해낸 것이다. 그가 만들어낸 구도는 다른 멘토들이나 프로그램의 연출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김태원의 괴력은 이번 주에 두 명을 탈락시키면서 절정에 달했다. 그는 뽑힌 사람이 아니라 탈락한 두 명을 부활 공식콘서트 무대에 세웠다. 경쟁보다 사람을 중시하는 그의 개성이 극명하게 드러난 선택이었다.

이건 그 어떤 영화나 드라마보다 감동적이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이 눈물 흘리는 모습은 많이 봤지만, 그들의 눈물에 동화돼 시청자인 내가 함께 눈물을 줄줄줄 흘린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일이 되려고 그랬는지 마침 노래가사가 워낙 상황과 잘 어울려 더욱 감동이 커졌다. 김태원으로 인해 <위대한 탄생>이 정말로 위대해지고 있다.

괴물이 되어가나

김태원이 영리해서 이런 시나리오를 구상했다기보다 그의 개성이나 인간됨, 삶에서 우러나온 깨달음이 자연스럽게 이런 스토리텔링을 가능케 한 것 같다. 아니 그는 본능적으로 감동의 스토리를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면 시청자들이 좋아하겠지'가 아니라 그의 가슴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다보니 저절로 보편적 공감을 주는 스토리가 나오는 것이다.

이번 회에서도 "너희들이 아름다운 화면은 아니잖아.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뭐 같니? 너희들이 돼야 너희 같은 사람들이 힘을 얻을 것 아니냐! 그게 외인구단 정신 아냐. 그래서 아름다운 거 아냐."라든가 "1등에 너무 치중하지 마. 나는 개인적으로 대회가 끝난 다음에 너희들 삶이 더 중요해. 난 너희들이 영원히 나처럼 음악하면서 사는 그걸 원하고 그런 바탕을 만들어주고 싶은 게 내 꿈"이라는 말로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 줄 수 있는 가장 감동적인 스토리텔링을 잡아냈다.

그는 순간순간 주옥같은 어록을 만들어내고 있는데, 그 말들이 감동을 느끼게 하는 것도 그의 삶에서 우러나온 진정성 때문이다. 세련되게 꾸민 말이나, 유명한 사람의 책에서 따온 명언하고는 차원이 다른 감동이다. <위대한 탄생>을 보고 나니 <남자의 자격> 밴드 특집 당시에 제작진이 몇 점을 주겠냐고 묻자 '나는 이번의 점수를 몇 등, 몇 점 이런 게 아니라 아름다움으로 주고 싶습니다'라고 했던 것이 새삼 떠오른다. 그는 진정한 아름다움을 체득한 사람 같다.

솔직히 예능적인 재담 능력은 아직 의심스럽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다. 김태원은 <위대한 탄생>을 통해 연예인을 뛰어넘고 있다. 삶 그 자체로 울림을 주는 시대의 멘토가 돼가는 느낌이다. 김태원은 참가자를 가르치는 것을 넘어 프로그램 자체의 판을 이끌고 시청자에게 인생을 가르치고 있다. 김태원이 비웃음을 사던 <위대한 탄생>과 MBC를 살리는 형국이다. 그는 괴물이 되어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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