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형태 작가 ⓒrajor
문형태라는 미술가를 알게 된 건 4년 전쯤의 일이다. 당시 필름 카메라인 '로모'를 사서 사진 찍는 재미에 빠져있던 나는 누군가의 미니홈피에서 예쁜 로모 케이스를 발견했고 그렇게 흘러흘러 문형태 작가의 개인 홈페이지까지 발길이 닿았다.

그곳은 참 따뜻하고 편안했다. 작가가 직접 만든 아기자기한 소품들과 회화들, 분위기 있는 배경음악에 마음을 뺐겨 한참을 서성일 때가 많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가 순수회화를 전공한 젊은 미술가라는 것을 알았고, 로모 케이스를 비롯해 각종 수공예 나무 케이스와 오브제 상품으로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있으며 웹디자인과 음반디자인 등 '손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장르를 다양하게 시도하는 종합미술가라는 것도 알게 됐다.

일이 잘 안풀리거나 마음이 울적할 땐 습관처럼 홈피를 찾는 일이 늘어났다. 얼굴도 모르는 작가가 자꾸만 친숙하게 다가온 것은 예쁜 그림과 소품에 담겨진 멋진 감성을 조금이라도 닮고 싶은 자기 환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림이 예쁘기만 했다면 쉽게 질려버렸을텐데 외롭고 쓸쓸한 감정, 행복하고 따뜻한 풍경을 담은 그림들은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는 힘이 있었다. 자신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진솔하게 눈을 맞추고 마음을 주고받는 글들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와 행복감에 젖어들었다는 뒤늦은 고백도 하지 않을 수 없다.

문형태 작가가 최근 세번째 개인전을 열고 대중들과 만나고 있다. 국내 최초로 글과 음악, 미술이 연계된 '이미지 아트' 전시회다. 시인이기도 한 이해인 수녀의 에세이집 '사랑은 외로운 투쟁'과 이를 음악으로 표현한 '뮤직마운트'의 동명 음반에서 영감을 얻은 회화와 오브제들이 또다른 감성과 공간을 만들어낸다.

"시인은 그녀의 뜻대로 꼿꼿한 연필로 행복을 적고, 음악가는 그녀의 글을 읽고 행복을 노래하며, 미술가는 그들의 음악을 듣고 행복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대중과 소통하길 즐기는 젊은 작가의 발상 전환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그림을 보면서 햄버거를 먹어도 좋고, 차를 가져와 타 드셔도 좋고, 놀이터라고 생각하고 즐겁게 놀다가라"고 손을 내민다. 소품으로 올려놓은 연필로 아이들이 낙서를 했는데도 그걸 보면서 시원했단다. 고상하고 교양있게 그림 감상을 하고 발걸음도 조용조용 떠나야 할 것 같은 전시장에서 웃고 떠들고 사진 찍고 간식도 먹으면서 마음껏 놀다가라니.

뭔지 모를 심오한 그림 앞에서 아무리 눈을 부릎뜨고 쳐다봐도 작가의 의도는 커녕 제목과 그림조차 연결이 잘 되지 않았던 경험이 한번 쯤은 있을 터. '어렵고 재미없다' '내가 그림을 뭘 알겠어' '그래 난 무식한 게 분명해', 청소년 시절부터 대부분 이런 식으로 끝났던 미술 감상의 법칙. 어쩌다 표가 생겨서, 숙제니까 자학 아닌 자학을 하며 5분, 10분 후다닥 돌아보고 감흥없이 발길을 돌리던 전시회를 놀이터로 삼을 수 있다니.

혹시라도 '정말 그래도 될까? 정말 그럴 수 있을까?'라는 의심이 든다면 남김없이 버려도 된다. 친구들과 찾은 전시장에서 나 역시 그림을 보다가 의자에 앉아 수다를 떨고 수다가 멈추면 다시 그림을 보고 차를 마시고 음악을 듣고 사진을 찍고 작가와 대화를 나누면서 한참을 놀다 왔으니까.

전시장을 찾는 관객들의 마음가짐을 편안하게 해주는 작가의 배려는 그림에서도 고스란히 배어난다. 문형태 작가의 그림은 쉽고 편하다. '모든 것으로부터..모든 것과 통하는 길을 발견해야지' 같은 그림 제목도 어렵지 않고 정겹기만 하다. 어렵고 복잡하지 않으니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는데 시간을 쏟던 강박관념을 내려놓을 수 있고 그만큼 내 마음이 움직이는 조용한 흐름에 귀 기울이게 된다. 쓸쓸한 하루의 어느 시간, 홀로 남아 두렵고 웅크려지는 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처럼 행복하고 편안한 풍경이 찬찬히 들어온다. 집에 한 점씩 걸어두고 오래오래 보고 싶다.

"진실되고 따뜻한 삶과 사랑, 그 순수함을 향한 아티스트들의 아름다운 여행길이 모두의 마음을 열어주는 행복의 작은 열쇠가 되어주길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사랑은 외로운 투쟁이지만 외로운 사람들이 서로를 바라보고 손을 내밀면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행복은 그렇게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는 진실한 울림이 가슴을 스친다.

지난 1월 17일부터 29일까지 열린 문형태 개인전 '사랑은 외로운 투쟁'은 관객들의 호응으로 2월 12일까지 연장전시를 한다. 인사동 쌈지길 건너편 토포하우스 2층. 작가의 '자잘한' 설명도 직접 들을 수 있고, 마침 설 연휴도 다가오니 시간을 내어 놀러가길 권한다. 3월 14일부터 27일까지는 부산 맥화랑에서도 만날 수 있다. 관람은 무료다.

전시장에 가보고 싶어졌다면, 작가가 1월 말 연장전시를 앞두고 홈피에 올렸던 글을 먼저 읽으면 도움이 될 것 같아 옮겨본다. 글 만으로도 달콤한 미소가 지어진다.

▲ 문형태 작가 ⓒrajor
나부터 전시장에 가면 그다지 오랫동안 관람하지는 않아요.
차라리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들이 더 좋았어요.
서로가 함께 흥미로울 수 있는 주제가 있다면 그게 얼마나 큰 기쁨입니까.

부끄러운 작가와의 대화..라는 표제를 달아야겠지만
연장전시 기간 동안은 2일부터 12일까지 늘 전시장에 앉아있을테니
인사만이 아니라 함께 대화하는 시간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오시는 분들을 따로 따로 만나 인사하다보면
이 대화를 마치고 저기 관람하시는 분에게 어서 가봐야지..했다가도
대화를 마치고 가보면 이미 그 분이 사라지고 계시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속상했습니다.
긴 의자를 여럿 준비해둘테니 따로 혹은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전시장에서 사진을 찍거나 과자를 먹거나 햄버거를 먹는 일 등은 언제나 환영해요.
나부터 전시장 안에서 햄버거로 점심을 먹었으니까.
연장전시지만 적당한 대관비를 지불했으니 12일까지는 제 집입니다.
누구의 제약도 없을테니 음료든 과자든, 레포트를 하든, 스텝으로 일하고 싶으면 와서 함께 놀든 그 어떤 것들도 환영합니다.

연장전시는 놀이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엄숙함 따위는 처음부터 제게 어울리지 않았으니까요.
뮤직마운트의 음악만 틀 필요도 없어요.
전시장에 놓은 스피커와 시스템들이 어마어마하게 비싸다네요.
사랑하는 뮤직마운트 분들이 연장기간 동안 내내 빌려주시니
어울리겠다 싶은 음악이 있으면 mp3에 담아와요.
전시장의 대단한 음질로 함께 들어보아요. ^ㅡ^

이번 전시 사진을 보니 아이들이 피아노에 내가 디피해 둔 연필로 낙서를 해 두었더군요.
그 낙서를 확인하고는 얼마나 시원하던지요.
사진 찍으시면 안됩니다, 음식물 반입 안됩니다,
옆 사람과 이야기 할 때는 속닥속닥거려야 하고 그러잖아요.

해마다 적어도 한 두번은 갤러리를 집으로 둘테고
제가 전시하는 기간에는 내가 아닌 여러분을 위해 빌리는 곳이니
데이트 장소로, 놀이터로, 책 읽고 쉬는 공간으로 사용하세요.
(앞으로의 전시에서는 앉을 수 있는 곳을 많이 만들게요. 약속.)
언젠가는 말하지 않아도 제가 전시하는 곳을 발견하면
쉬고 가야겠다..하는 분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커피와 차 등은 부족할 수도 있으니까 가져오셔서 타 드셔도 좋아요.

모두가 스텝이고 주인이길 바랍니다.
저도 준비 마무리되어가니 2일 아침부터 나갈게요. ^-^

- 문형태 (www.synkretism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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