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조국 법무부 장관이 취임 36일 만에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조 장관은 자신을 검찰개혁을 위한 '불쏘시개'에 빗대며 그 역할을 다했고, 대통령과 정부에 부담이 되어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는 사퇴의 변을 남겼다. 이른바 '조국 정국'에서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 하락세가 뚜렷해지고, 검찰개혁 과제의 공이 상당부분 국회로 넘어가 있는 시점에서 조 장관이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포스트 조국' 정국이 시작됐다. 여당은 "하늘이 두 쪽 나도 검찰개혁을 완수하겠다"며 검찰개혁 관련 법안의 우선 처리에 당력을 집중, 이달 안에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은 자신들을 제외하고 여야4당이 지정한 패스트트랙 법안의 원천 무효를 주장하고 있고, 바른미래당은 기존 여야 4당이 합의한 대로 선거법 개정안을 먼저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여야 간 극심한 대치상황이 이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조국 법무부 장관이 14일 오전 경기도 정부과천청사에서 특수부 축소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검찰개혁안 발표를 하기 위해 마이크 앞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조 장관이 사의를 표명한 14일,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YTN 의뢰로 조사·발표한 10월 2주차 대통령·정당지지도(10월7일~8일, 10일~11일, 그 밖의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는 정부·여당에 경고음을 울릴 만한 결과였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40% 초반까지 떨어져 지난주 경신한 최저치를 재차 경신했고,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은 한국당과 오차범위 내에서 현 정부 집권 후 최소 격차(0.9%p)를 보였다.

이날 발표된 대통령·여당 지지도에서는 중도층 이탈 현상이 두드러졌다. 현 정부 들어 처음으로 중도층에서 한국당(33.8%)이 민주당(28.5%)보다 앞서는 결과가 나왔다. 대통령에 대한 중도층의 긍정평가는 40%대에서 2주 만에 30% 초반대로 급락했고, 같은 기간 부정평가는 50% 초중반대에서 60% 중반대로 상승했다. 아울러 국민 절반 이상이 조 장관이 '물러나야 한다'고 답한 여론조사결과(리얼미터, CBS 의뢰)도 이날 함께 발표됐다. 내년 총선을 6개월 앞둔 정부·여당 입장에서 '조국 정국'의 부담이 단적으로 실체화 됐다.

조 장관 사퇴 시점에 대해서는 민주당이나 청와대의 반응을 비추어 볼 때 조 장관 개인 결단으로 갑작스럽게 이뤄진 측면이 있지만, 사퇴 기류는 이전부터 형성되어 왔다. 언론 등지에서는 지난달 말부터 당 관계자 발언 등으로 조국 정국 수습을 언급하는 여당 내 기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검찰개혁법안의 신속한 처리가 조국 정국을 수습하고 조 장관의 '명예퇴진'을 이룰 수 있게 하는 방법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지난 12일 대안신당 박지원 의원은 TV조선 '강적들'에 출연해 "일부 여당 의원들이 나더러 '조국 사퇴'를 말하라고 한다"면서 "직접 말 못하는 건 조 장관에게 '그만두라'고 하면 내년 총선 때 민주당 경선에서 지고, 말하지 않으면 본선(총선)에서 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14일 조 장관 사의 표명 후 연합뉴스는 "조 장관이 (사퇴)결심을 굳히고 2주 전부터 청와대,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와 상의를 거쳤다. 사퇴 발표 타이밍이나 절차는 본인의 결심에 따른 것"이라는 여권 핵심 관계자의 발언을 보도했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안, 검·경수사권 조정안 등 검찰개혁의 핵심으로 일컬어지는 사안들이 국회의 몫으로 남아있는 상황과 결론에 다다르고 있는 조 장관 일가 검찰수사 등도 조 장관 사퇴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풀이된다.

조 장관은 14일 오전 검찰 특수부 축소, 수사 시 인권보호 기능 강화 등의 내용을 담은 개혁안을 발표했다. 지난 8일 법무부가 발표한 신속추진 과제 중 피의사실 공표 금지, 심야조사 금지, 법무부의 검찰 직접 감찰 등에 대한 규정은 이달 안에 제정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그리고 세 시간 후 조 장관은 "검찰개혁을 위한 불쏘시개 역할은 여기까지"라며 사의를 표명했다.

'조국 정국'에서 검찰개혁 추진과 관련해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는 국회 마비였다. 실제 조 장관에 대한 자유한국당 등 보수야당의 반발과 공세는 날로 거세졌고, '시대적 과제'로서의 검찰개혁 법안은 국회에서 논의조차 되기 어려웠다. 이 기간 국회 의정활동의 꽃이라고 불리는 국정감사는 '조국 블랙홀'이라는 말이 붙을 정도로 각 상임위 성격을 불문하고 '조국 이슈'로 채워졌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달 말 검찰개혁 법안의 국회 본회의 상정과 조속 처리를 목표로 두고 있는 여당의 입장과 15일과 21일 예정된 법무부 국정감사, 22일 전후로 점쳐진 정경심 동양대 교수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 여부 등이 조 장관 사퇴 시점에 종합적으로 고려됐을 가능성이 있다.

조 장관의 조기 사퇴로 임기 내 마무리 된 법무부 차원의 검찰개혁 과제는 '특수부 축소' 정도이다. 다만 법무부와 조 장관이 구성한 제2기 법무·검찰개혁위원회, 차기 법무부 장관 인사권자인 문 대통령이 검찰개혁 의지를 강조하고 있고, '조국 정국'이 검찰개혁을 시대적 과제로 확고히 부상시키면서 남은 행정부 차원의 개혁 작업은 이어질 전망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인영(가운데), 자유한국당 나경원(왼쪽), 바른미래당 오신환(오른쪽) 원내대표가 14일 오전 사법개혁 법안 처리 방안을 협의하기 위한 원내대표 회동을 하기 위해 국회 운영위원장실에 들어가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이렇게 '조국 정국'이 일단락되면서 정치권 국면은 '패스트트랙 정국'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15일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조 전 장관은 누구도 돌이킬 수 없는 검찰개혁의 이정표를 만들었다. 그 역할은 불쏘시개 이상"이라며 "하늘이 두쪽 나도 검찰개혁을 완수하겠다"고 검찰개혁 의지를 분명히 했다. 민주당은 검찰개혁 관련 법안을 기존 여야4당 합의와 달리 선거법 개정안 처리보다 먼저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각 당에 협조를 요청했다.

그러나 당장 정의당을 제외한 야3당에서 반발하고 있다. 한국당은 한국당을 제외한 패스트트랙 지정 법안 자체가 원천 무효라며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은 기존 합의에 따라 선거법 개정안부터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정의당만이 조속 처리 주장에 "검찰개혁에 대한 국민 열망을 고려해 적극 논의하겠다"고 밝혀 기존 합의에서 한 발 물러난 입장을 내놨다.

애초 야3당의 선거제 개정 입장과 여당의 검찰개혁 법안 처리 간 이해관계가 맞물려 합의를 이룬 패스트트랙 지정임을 고려하면 검찰개혁 법안을 먼저 처리할 시에 지역구를 기반으로 한 민주당 내 의원들의 반대표가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반대로 민주당이 한 발 물러나 선거법 개정안을 먼저 처리하기로 해도 한국당의 반대가 분명한 상황에서 선거법 개정안 표결 처리 가능성은 불투명한 상황이다.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은 지난달 말 여야 합의없는 선거법 개정안 처리는 인정할 수 없으며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부결시키겠다고 했다. 민주평화당이나 대안신당 의원들의 입장도 처리 방향으로 단일하게 모아진 상황은 아니다.

여기에 한국당은 민주당이 검찰개혁 법안의 핵심으로 꼽고 있는 공수처 설치안 처리를 다음 국회로 미뤄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어 여야 대치는 더욱 불가피해 보인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공수처 절대 불가하다"고 말했고, 황교안 당 대표는 "공수처는 문재인 정권의 집권 연장 시나리오로 다음 국회로 넘겨야 한다"고 했다.

한편, 16일부터 여야 교섭단체 3당은 패스트트랙 지정 법안과 관련해 이른바 '2+2+2' 회동을 가진다. 검찰개혁 법안이 먼저 협상 테이블에 오를 전망이며 각 당 원내대표와 원내대표가 지정한 의원 1명이 참여하는 방식이다. 법안의 처리 시기와 내용 등이 논의되는 자리로 '패스트트랙 정국'의 본격적인 시작을 예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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