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송강호는 말했다. (향숙이) 이쁘지?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동네바보는 억울하게 지하실에서 고문을 당하고 범인으로 몰린다. 화성연쇄살인 중 모방범죄로 판단된 8차는 유일하게 범인이 체포된 사건이다. 과거 뉴스영상을 보면 8차 사건의 용의자는 경찰서에 줄무늬가 들어간 반팔 티셔츠를 입고 앉아 있다. 당시 방송화면에서 모자이크 처리를 했는지 알 길은 없다. 현재 공개되고 있는 방송화면은 희뿌옇게 처리해서 얼굴을 알아볼 수 없게 했다. 언론에서 그는 윤 씨라고 한다.

DNA 분석결과 화성연쇄살인 사건의 범인과 일치하는 이가 부산교도소에 수감 중이라고 전해졌다. 경찰이 조사를 하고 있으니 앞으로 진위 여부가 밝혀질 것이다. 과거 영상에서 그는 경찰 옆에 초록 점퍼를 머리 끝까지 뒤집어 쓰고 앉아 있다. 처제의 살인사건 용의자로 조사를 받는 중이다. 앞선 화성연쇄살인 모방범죄 8차 사건의 용의자 윤씨와 비교한다면 얼굴 정도는 스스로 가릴 수 있도록 배려해준 것이다. 지금 일부 언론들은 그의 얼굴과 실명을 공개했다.

화성연쇄살인 8차 모방범죄사건의 용의자였던 윤 씨에게 얼굴도 가리지 않고 의자에 앉혀놓고 카메라 앞에 공개한 것은 당시 경찰일 거다. 현재 화성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추정되는 처제 살인사건의 용의자에게 얼굴을 가릴 수 있게 해준 것도 경찰일 거다. 잔인한 살인사건이지만 당시 얼굴 공개에 다른 기준을 적용한 데 경찰에게 원칙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국민의 알권리 기준인지 경찰의 괘씸죄인지도 잘 모르겠다. 화성연쇄살인 사건의 진범도 아니고 모방범죄인 8차 사건의 용의자였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현재 시점으로 본다면 진범의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얼굴을 가려주었고, 무죄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화성살인사건이라는 이유로 얼굴을 만천하에 공개했다.

영화 '살인의 추억'

1980년대와 달리 현재는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제8조의 2(피의자의 얼굴 등 공개)에 따라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한다. 범행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강력범죄사건에서 피의자가 죄를 범하였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는 경우 국민의 알권리 보장, 피의자의 재범방지 및 범죄예방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한 때에 한해 이름이나 초상을 공개할 수 있다. 수사기관의 자의적 판단보다는 법률에 의해 공개하니 그나마 상황이 나아진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 유죄가 무죄로, 무죄가 유죄로 될 가능성을 경험하는 요즘 수사기관인 검찰이나 경찰에게 그 판단을 맡기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언론사도 스스로 편집원칙에 따라 피의자의 얼굴과 초상을 공개한다. 현재 윤 씨의 경우 대부분의 언론은 초상과 실명을 가려주고 있다. 무죄일 가능성이 제기되는 사안이니 당연하다. 반대로 부산교도소에 수감 중인 화성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이름과 초상을 공개한 언론과 그렇지 않은 언론이 나뉘고 있다. 편집원칙과 방향이 서로 다른 언론이 있다는 것은 다양성 측면에서 어쩌면 나쁘지 않다.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고 문제가 생긴다면 엄격히 언론에게 책임을 물으면 될 일인 것도 맞는 말이다.

그럼에도 자백을 했다는 경찰 조사결과만 믿고 초상과 실명을 언론이 공개하는 것은 지나치다. 과거 경찰조사가 현재 뒤바뀌었듯 또 바뀔 수도 있다. 국민의 알권리나 공익을 목적으로 한다는 언론의 순수성도 의심이 간다. 단독보도에 열을 올리며 경쟁적으로 보도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더욱 그렇다. 30여년 전 사건으로 현재 국민의 알권리 보장이 그렇게 시급성을 요구하고 있다고 보기도 힘들다. 국민적 관심사안으로 강력범죄사건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최소한 죄를 범하였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확보되었다고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흉악범은 당사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가족도 있다. 가족의 피해를 고려한다면 언론에서 신상공개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

오늘도 뉴스에서는 ‘법조계에 따르면’이라는 단어가 난무한다. 법조계에 따르면 “조국 수사를 놔두라는 것”, 법조계에 따르면 ‘사무실에서 들고 나온 자체로 처벌’, 법조계에 따르면 ‘수사외압’, 법조계에 따르면 ‘딸 장학금 의혹 포괄적 뇌물죄 가능’ 등등 법조계는 도대체 어떤 분인지 궁금하다. ‘법조계에 따르면’에 비한다면 ‘검찰 관계자’는 그나마 범위를 좁혀 특정했다고 위안이라도 삼아야 하나 싶다. 한 부장검사, 수도권 지역의 한 부장검사, 서울지역의 한 부장검사, 서울지역에 근무하는 또 다른 부장검사, 검사장 출신의 변호사, 대형 로펌의 한 변호사도 자주 등장하는 분들이다.

언론들이 실명보도를 해야 할 때 익명보도를 하고, 익명보도를 할 때 실명보도를 하고 있다. 취재원의 익명 아래 언론이 자신의 편의나 입맛에 맞게 자의적으로 보도를 해도 검증할 길이 없다. 언론들이 선정보도와 책임보도를 혼동해도 한참 하는 것 같다. 사실 확인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실명공개를 경쟁적으로 하면서 국민의 알권리라고 한다. 한두 언론이 실명이나 초상을 공개하고 몇몇 언론이 따라하다가 ‘다 공개되었으니까’하면서 모두들 실명보도를 하는 것이 일종의 언론보도의 관습처럼 자리잡고 있다. 향숙이가 이쁘다고 한 동네바보만 억울한 세상은 어째 바뀌지를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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