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MBC 예능 방송 ‘마이 리틀 텔레비전’(마리텔)은 뉴미디어와 올드미디어를 융합하는 실험실이었다. 2015년 방영된 마리텔은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등장한 새로운 매체, 주로 쌍방향 의사소통, 인터액션으로 규정되는 뉴미디어에 속하는 인터넷 방송을 오래된 매체인 브라운관에 끌어들였었다. 다양한 분야의 유명인과 전문가들이 방송에 출연해 인터넷 개인 방송을 했고, 시청자들이 이 과정에 실시간으로 참여했다. 이렇게 녹화된 방송은 미디어의 전통적 기능인 편집 과정을 거쳐 공중파 방송으로 송출되었다.

사실 마리텔에 포맷을 이식하는 것 이상의 특별한 아이디어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야말로 시의적절한 시기에 나타났다. 스마트폰과 SNS의 보급 이후 개인 방송이 급속히 약진하던 과도기에 발 빠르게 이뤄진 실험이었다. 시도만으로 신선했다. 유명인들이 BJ가 되고 공중파와 인터넷 매체가 중첩되는 이채로움이 스타성 탁월한 몇몇 출연진의 활약과 어울려 큰 반향을 얻었다. 재미있게도 마리텔은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인터넷 방송분보다 그 방송 분량이 편집을 통해 짜임새를 얻은 본방송이 더 흥미로웠었다. 마리텔은 뉴미디어의 특성보다도 올드미디어 전가의 보도인 편집 체계와 유망한 출연자를 캐스팅하는 섭외력, 인터넷 서브컬처에 통달한 제작진의 센스 등 올드미디어의 힘이 더 강하게 반영된 방송이었다. 이 점은 곧 그 당시 개인 방송들이 품은 약점이었다.

MBC 예능 프로그램 <마이 리틀 텔레비전 V2>

2017년 종영된 마리텔은 올해 3월, ‘마이 리틀 텔레비전 V2’라는 이름으로 돌아왔다. 2년 만의 귀환, 그 사이 세상은 어떻게 변했을까? 개인 방송은 아프리카 TV와 트위치, 유튜브 등 미디어를 가리지 않고 수익 체계를 창출하며 번영했고 많은 미디어 운영자 개개인은 ‘작은 셀러브리티’로 출세했다. 유튜브 낭인이란 신조어가 생길 만큼 너도 나도 ‘1인 크리에이터’가 되려 덤벼들고, 유튜브가 낳은 스타들은 공중파 방송에 섭외되고, 공중파에서 활동하는 스타들은 유튜브와 트위치 계정을 개설한다. 마리텔의 컴백 소식은 때늦은 미련으로 들렸다.

뉴미디어와 올드미디어의 교차는 더는 낯설지 않고, 뉴미디어는 예전의 뉴미디어가 아니다. 개인 방송은 뷰티, 게임, 패션, 해외 축구, 운동 등등 무수한 가닥으로 뻗어 TV 방송 이상의 세밀한 콘텐츠를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전문성 있는 채널이 늘며 연출의 질도 향상됐다. 마리텔에서 방송을 진행할만한 게스트들이 이미 자신의 개인 방송 채널을 운영하고 유튜버와 콜라보하는 마당에 마리텔은 더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 특단의 기획 없이는 부활한 수명이 오래갈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제작진의 선택에선 위기감이 보이지 않았다. 출연자 간의 대결 제도를 없애고, 그 사이 급부상한 트위치로 방송 플랫폼을 옮기고, 도네이션(개인 방송에서 시청자들이 후원금을 기부하는 시스템)을 빌려온 것 외엔 이렇다 할 변화가 없었다. 마리텔 V2는 첫 방송 이후 시청률에서도 화제성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대신 시즌2에서도 반복되는 건 어떤 종류의 논란이다. 시즌1에선 채팅창의 악플과 속어의 자막 사용, 일부 출연자의 막말이 논란이 됐는데 시즌 2에서도 근절되지 못했다. 지난 6월 28일 방영분에서 가나 출신으로 한국 영주권을 획득한 방송인 샘 오취리의 얼굴 아래 “트랜스 대한가나인”이란 자막이 나갔다. 국적 전환을 유머러스하게 가리키려 한 의도는 짐작이 가지만, 그 비유의 터전이 되는 성소수자 트랜스젠더의 현실은 웃음에 부칠만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염두에 두었어야 한다. 그리고 지난 주말 있었던 인터넷 방송을 보면서 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MBC 예능 프로그램 <마이 리틀 텔레비전 V2>

방송에 출연한 한 코미디언이 걸그룹 아이즈원 멤버 미야와키 사쿠라를 우스꽝스럽게 흉내 냈다. 과장된 표정과 헐떡이는 시늉, 밑받침을 일부러 발음하지 못하는 척하며 일본인에 대한 편견을 전시하는 등 유머라고 받아들이기 힘든 수준이었다. 이건 공중파 방송에서 외국인에 대한 편견을 재생산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개그의 소재가 된 사쿠라에 대한 예의가 아닐뿐더러, 방송의 공익성을 저해한 상황이다. 제작진은 개별 출연진이 방송에서 어떤 콘텐츠를 선보일지 확인했어야 한다. 도대체 왜 이런 장면을 걸러내지 않고 내보낸 걸까. 차후에 방영될 본방송에서 해당 장면이 편집될지 여부를 지켜봐야겠지만, 이미 방송의 이름을 걸고 다수 인터넷 시청자를 상대로 송출됐단 점에서 문제가 씻어지진 않는다. 그렇잖아도 한일 외교의 골이 깊어지며 양국 국민 사이 감정이 좋지 않다. 국가의 양식을 대변하는 성격이 있는 공중파 방송이라면 외교적 갈등이 상대국 국민에 대한 불필요한 혐오감으로 번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실제로 트위터에선 사쿠라의 일부 해외 팬들이 해당 장면을 공유하며 유감을 표명했다.

공중파 방송은 검열 지대의 최중심부에 있고, 인터넷 방송은 검열 지대 바깥에 있다. 인터넷 방송을 공중파 TV에 불러오기로 한 순간부터, 제작진은 인터넷 문화가 품은 날 것의 성질을 써먹어 볼 유인에 이끌릴 수 있고, 반대로 이 방송은 그만한 갈등과 긴장 관계를 품고 있다. 현재로선 마리텔에서 이 긴장 관계를 조율하는 연출의 묘미나 의지도, 포맷을 이식하는 것 이상의 기획도 여전히 찾아보기 힘들다. 인터넷 방송의 선정성을 걸러낸 후 그 장점을 재구성해 새로운 포맷과 콘텐츠를 만드는 기획은 없고, 선정성을 차용해 탄산 효과를 일으키려는 순간이 있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이 점은 인기 개인 방송 진행자를 방송에 섭외하는 방식으로 뉴미디어의 촉수를 흡수하고 있는 여타 지상파/케이블 방송 역시 유념해야 하는 논점이다. 일례로 MBC는 아프리카 TV 출신 유튜버를 거듭 스포츠 방송에 출연시키다 자질 논란을 빚었고 그가 인터넷 방송에서 물의를 빚자 방송에서 하차시킨 전적이 있다.

뉴미디어는 검열 지대 바깥에서 번성하는 동시에 창궐한다. 올드미디어는 콘텐츠의 양으로도 기동성으로도 '날 것의 해방감'에서도 뉴미디어를 당해낼 수 없다. 만약 기존 방송의 틀을 벗어난 외곽지대에서 표현 수위를 줄타기하겠다면, 공중파 방송은 절대로 유튜브와 아프리카 TV 같은 매체를 이길 수 없다. 미디어 지형에서 소외돼 가는 공중파 방송에 남겨진 몫과 활로가 있다면 흔들리는 미디어의 원칙을 더 단단히 지탱하여 새로운 미디어들에게 중심을 세워주는 것 아닐까? 마리텔은 올드미디어와 뉴미디어의 간극에서 태어나 존립하는 방송이지만, 제작진에게선 양자를 중재하려는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 뉴미디어와 올드미디어를 결합했지만, 뉴미디어의 장점도 올드미디어의 장점도 모두 유기된 상태다. 흥미와 화제성 같은 방송의 상업성을 노리는 것을 떠나, 계열이 다른 미디어의 융합을 실험한 선구자들로서, 공중파 방송의 일원으로서 가질 법한 혹은 가져야 하는 미디어에 대한 가치관이 부재하다.

마리텔 V2는 현재로선 성공적인 복귀를 이루지 못했다. 이 실패는 뒤집어 말해 뉴미디어 중심으로 재편돼 가는 미디어 지형에서, 대안을 내놓지 못한 올드미디어 구성원들의 실패이기도 하다. 실패의 원인은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의 윤리성을 떠나 역량과 철학에도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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