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경륜도 많고 안목도 넓으며 글도 유려한 분들이 많으신데 ‘라디오와 관련된 글을 써달라’는 청탁을 거절하지 못한 것은 직업 탓이려니 싶다. 데일리 방송을 하면서 여기 저기 적기에 섭외해야 하는 일이 많은 우리들에게 있어 ‘거절당하는 것’은 시간낭비이자 에너지 낭비이자 정신적 상처가 아닐 수 없다.

방송할 때 기획의도를 설명하고 출연을 요청할 때 적극 협조해주는 사람이 무지 반갑고, 당장 출연은 어렵지만 날짜를 조정하는 경우도 고마운 경우다. 내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섭외를 하다가 거절당하면 마음이 아픈 것처럼, 나에게 원고 청탁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도 거절당하면 맥빠질 것 같아서 아주 힘든 상황만 아니면 시간을 쪼개 응하는 편이다.

▲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중인 김사은 PD

어느 날 <PD저널>에서 인연 맺은 황 기자가 무슨 인터넷 신문 창간 준비중인데 ‘라디오 이야기를 해보자’고 해서 뭐가 뭔지도 모르고 주변 이야기를 시시콜콜 늘어놓게 되었다. 무슨 인터넷 신문은 바로 미디어 비평지 <미디어스>다. 그런데 이 매체가 일신우일신하며 엄청난 파급력을 지닌 것을 실감한다. 요즘에 언론사나 관련기관, 학계 관계자를 만나 수인사를 나눈 후 첫마디가 “김PD님, 미디어스에서 봤어요” “글 잘보고 있습니다”라는 말이니 내가 무슨 연예인도 아닌데 쑥스러울 따름이다.

방송문화진흥회 <2008 방송진흥사업 지원>사업과 관련, 선정된 프로그램 제작자를 대상으로 설명회가 있어서 최근에 방송문화진흥회에 다녀왔다. 타 방송사의 라디오 프로그램 담당자들과 인사도 나누고 지역방송 동향도 듣고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도 얻으며 귀한 시간을 보냈다. 설명회 후 장소를 옮겨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미디어스>의 라디오 칼럼이 화제가 되었다. 함께하신 분들은 “라디오 칼럼을 기획해서 의미있다”고 입을 모았다.

그동안 라디오라는 매체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저조했던 것에 대한 아쉬움과 동시에 지금이라도 한 켠에서 그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현상으로 받아 들여진다는 의견이다. 더불어 지역 방송의 애로를 토로하기도 했다.

▲ 동요프로그램 '파란마음 하얀마음'을 진행하고 있는 김사은 PD와 아들 현범군
한 선배는 “10년 전 최초로 제작했던 주제가 지역 방송이라는 현실 때문에 부각되지 않았는데, 얼마 전 메이저 방송사에서 자기네가 역사상 최초로 시도했다며 흥분하더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의도적이지는 않았겠지만 지역에서 방송되는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보니 충분히 있을 수 있는 해프닝이다. 10년 전 지역 방송사에서 제작된 프로그램이 있다는 걸 알았다면 적어도 ‘최초’라는 단어는 쓰지 않았을 것 아닌가.

게다가 영상 프로그램도 아닌 지역에서 제작된 라디오 방송의 경우는 더욱더 그 소재의 방송 여부를 확인할 길이 쉽지 않으니 이래 저래 지방에서 방송한다는 것은 제작여건도 어렵지만 방송의 파급력도 미미해서 보람 찾기가 쉽진 않다. 그런 점에서 방송문화진흥회가 지역방송프로그램을 대상으로 시행하고 있는 <지역프로그램대상> 시상은 ‘방송의 공익성을 높이고 지역방송인의 제작의욕을 고취시키기 위한’ 본래 취지와 더불어 지역 방송의 데이터 확충과 활용면에서도 매우 의미가 있는 일이다.

게다가 이처럼 프로그램 잘 만들어보라고 지원까지 해주니 나 같은 지역 방송인 입장에서 고마운 일이다. 이번에 선정된 라디오 10작품은 올해 안에 제작된다. 그 가운데는 개인적으로 관심있는 아이템도 많아서 프로그램 기획자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고 서로 의견을 나누었다. 프로그램이 언제쯤 제작되는지, 어느 채널에서 방송되는지도 기록해두었다.

각자 신선하고 새로운 기획으로 강한 메시지를 줄 것으로 예상돼 사뭇 기대된다. 짧은 만남 후 각자 일터를 향해 고속터미널로, 서울역으로, 김포공항으로 흩어졌다. “그래도 1년에 한편, 작품하나씩은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작품이 나올 때 까지 스스로 담금질한다는 선배, 이것 저것 꼼꼼하게 적고도 모자라 “궁금하면 전화해서 귀찮게 할께요”라며 애교있게 말하는 후배, “보직 수행하기도 바쁘지만 그래도 작품 하나는 만들고 싶다”는 부장급 PD들, 무엇보다 정년을 앞두고 “이번에 마지막 작품이 될지 모른다”며 각오를 다지는 대선배의 비장함에서 올 한해도 허투루 보내서는 안된다는 팽팽한 긴장감과 자극을 받고 돌아왔다.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으로 멈추고 말 일을 기록으로 남겨 자기반성과 발전의 기틀로 삼는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도 매우 바람직한 행태인데, 기왕 시작한 <라디오 이야기>가 지역 라디오PD 들의 실상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어 라디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더욱 커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1965년 볕 좋은 봄, 지리산 정기가 서린 전북 남원에서 태어났다. 원광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행정대학원에서 언론홍보를 공부했다. 전공을 살려 지방일간지 기자와 방송작가 등을 거쳤고 2000년 원음방송에 PD로 입사, 현재 편성제작팀장으로 일하며 “어떻게 하면 더 맑고 밝고 훈훈한 방송을 만들 수 있을까?” 화두삼아 라디오 방송을 만들고 있다.

지역 사회와 지역 문화에 관심과 애정이 많아 지역 갈등 해소, 지역 문화 발전에 관련된 라디오 프로그램을 기획, 제작해왔다. 수필가로 등단, 간간히 ‘뽕짝에서 삶을 성찰하는’ 글을 써왔고 대학에서 방송관련 강의를 시작한지 10여년이 넘어 드디어 지식이 바닥을 보이자 전북대학교 대학원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에서 공부하며 용량을 넓히려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최근 전북여류문학회장을 맡았다. 방송에서나 인간적인 면에서나 ‘촌스러움’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다. http://blog.daum.net/kse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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