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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백지광고 사태' 격려 광고 시민 찾아 나설 것"[인터뷰]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동아일보 후배들, 스스로 변화 만들어내야"
윤수현 기자 | 승인 2019.09.24 08:29

[미디어스=윤수현 기자] 2020년 조선일보·동아일보가 창간 100년을 맞는다. 조선·동아는 자사 100년을 맞아 각종 기획기사 및 행사를 개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조선·동아 100년을 검증하고 잘못된 부분을 청산하자는 단체가 탄생했다. ‘조선·동아 거짓과 배신의 100년 청산 시민행동’이다.

조선·동아 시민행동은 과거 조선·동아에서 강제 해직된 원로 언론인들이 주축이다. 조선투위·동아투위 구성원들이다. 조선투위·동아투위는 1975년 언론자유와 유신 반대를 외치다 강제 해직당한 기자들이 만든 단체다. 이들이 해직당한 지 40여 년이 흘렀지만 조선일보·동아일보는 공식적인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조선·동아 시민행동의 공동대표를 맡는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은 동아투위의 산증인이다. 이부영 이사장은 동아일보 기자들과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했다는 이유로 강제 해직됐다. 이후 인천 5·3 운동,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진상 고발 등 활발한 사회활동을 이어갔다.

미디어스는 19일 이부영 이사장을 만나 조선·동아 100년의 의미를 들어봤다. 이부영 이사장은 인터뷰에서 동아일보에 대한 강한 비판을 내놨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불리는 ‘조선·동아’를 ‘동아·조선’이라 칭했다. 

이부영 이사장은 "동아·조선 사주들이 강제 해직 사건을 책임지지 않는다면 경영자 자격이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직 동아일보 기자 후배들에게는 "부조리한 관행을 스스로 바꿔나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아래는 이부영 이사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사진=미디어스)

Q. 조선·동아 시민행동에 참여할 때는 어떤 마음이었나

A. 현재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으로 있기 때문에 당연직 대표에 가깝다. 우선 동아·조선의 역사를 증언하고 평가하기 위해 시민행동에 참여했다. 동아·조선의 잘못을 판별하는 작업을 할 계획이다.

동아일보 백지광고 사태 당시 격려 광고를 낸 시민들을 찾아 나설 것이다. 당시 시민들은 동아일보에 익명으로 격려 광고를 냈다. 그분들을 찾아 규합하고, 시민들이 낸 광고비를 근거로 동아일보의 성격과 역사를 따져나갈 계획이다. 격려 광고를 한 시민들과 동아일보에 독재 영합 책임을 추궁하고 왜곡 보도를 그만하라고 요구하겠다. 이분들을 기반으로 동아일보의 과거사를 돌아볼 수 있다고 본다.

Q. 조선·동아의 창간 과정이 궁금하다

A. 동아·조선의 창간부터 되돌아보자. 일본은 문화정책을 시행하면서 동아·조선의 발행을 허가했다. 당시 조선인의 저항심리를 누그러뜨리려 동아·조선 발행을 허가한 것이다. 동아·조선은 태생적으로 일본 식민통치의 부속품이다. 동아·조선은 식민통치 도구의 임무를 부여받은 셈이다. 근본적으로 친일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다.

일제 강점기에서 신문사의 존립은 어려웠다. 실제 몽양 여운형 선생이 운영했던 조선중앙일보는 1936년 손기정 선수 일장기 삭제 사건 때문에 폐간당했다. 일제에 협력하지 않으면 언론사 유지가 힘든 상황이었다. 하지만 동아·조선은 일제에 협력하면서 존속을 이어갔다. 현재 동아·조선은 자신들이 항일운동을 많이 했다고 자랑하는데, 그때 지면만 봐도 (그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다 나온다. 그게 동아·조선의 얼굴이다.

물론 동아·조선이 잘못한 것만은 아니다. 1936년 동아일보도 조선중앙일보처럼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를 삭제했다. 당시 동아일보 사회부장이 ‘운수 좋은 날’을 쓴 현진건이었는데 해고당했다. 다른 기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유명한 이야기가 있는데, 인촌 김성수는 해당 사건을 두고 “성냥불로 고루거각(크고 웅장한 건물을 이르는 말)을 불태우려 했다”고 평가했다. 일장기 말소사건을 용서할 수 없다는 뜻이다. 당시 해직 기자 중 일부는 1945년 이후 복직하지 못했다. 동아투위와 마찬가지 상황이 그 옛날에도 벌어졌다.

▲1975년 동아일보 시민 광고 (사진=KBS 방송화면 갈무리)

Q. 동아일보가 국민주 신문이라는 기록이 있다. (동아일보는 창간 당시 지식인과 유력인사 412명을 주주로 모집하고 자본금 70%를 국민주로 채웠다. 그러나 해방 이후 동아일보는 김성수 일가 소유의 언론사가 됐다)

A. 동아일보가 ‘조선인들의 민의에 의해 만들어진 신문’이라는 정통성을 가지려고 노력한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김성수 일가는 신문을 독차지했다. 국민주 신문이라는 의미만 활용하고 결국 신문을 개인의 것으로 만들었다. 김성수는 동아일보를 사유화하고 신문을 공공재로 여기지 않는 시각을 드러냈다.

Q. 동아일보 기자 해직사건은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동아일보 사주일가는 공식적인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A. 동아·조선 기자 해직사건은 동아일보, 조선일보의 역사다. 과거 동아·조선 사주는 기자들을 내쫓았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해직당한 기자들이 아직 살아있다. 그렇다면 사주들은 과거의 역사를 존중해야 한다. 우리가 요구하는 건 간단하다. ‘박정희 유신정권의 압박을 받아 기자들을 내쫓았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거다.

현재의 사주들이 동아투위, 조선투위 사건을 책임질 수 없다고 한다면 이는 회사를 이어받을 자격이 없다는 뜻이다. 선대의 잘못을 책임지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한국을 대표하는 언론사를 경영할 수 있겠는가.

Q.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당시 이야기를 듣고 싶다

A. 당시는 격동기였다. 전두환 정권이 흔들릴 때였다. 권력이 무너진다는 냄새를 모두가 맡고 있었다. 조선일보, 동아일보가 박종철 군을 보도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기회주의적 속성이다.

난 박종철 사건이 엄청난 일로 발전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감옥에 있었고 외부와 단절됐기 때문이다. 다만 박종철 군을 죽였다는 경찰 2명이 감옥에 왔는데 이 사람들이 진범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진범이 밝혀지면 사회적 파장이 있을 거라는 느낌이 왔다. 기자로서의 후각이다. 안에서 관련 내용을 취재했고, 이를 밖으로 전달했다. 정의구현사제단에서 박종철 사건 진범을 폭로했는데 그때를 되돌아보면 ‘기자의 사명을 다했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 <1987>에서 이부영 역을 맡은 배우 김의성 씨와 이부영 이사장 (사진=CJ엔터테인먼트)

Q.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후 민주화가 찾아왔다

A. 1987년 6월 항쟁이 끝나고 냉전 체제가 종결됐다. 새로운 남북관계가 전개되는 상황이었다. 그럴 때 동아·조선의 반민족성이 드러났다. 두 신문은 해방 직후에 있을법한 극우적 태도를 보이고 평화 분위기를 방해했다. 탈냉전 시대에 이르니 동아·조선의 본질이 나왔다. 그들은 화해, 협력, 평화, 통일을 원치 않은 것이다.

동아·조선은 스스로를 민족지라 여긴다. 민족주의는 ‘분열 없는 하나의 민족이 다른 민족의 간섭이나 훼방을 극복하자’는 사상을 뜻한다. 하지만 동아·조선인 한반도 분단을 찬성하고 분단상황을 밀어붙인다. 동아·조선은 보수도 아니고 민족지도 아니다. 

현재 한국언론은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다. 탈냉전 이후 미·중 패권경쟁이 시작됐다. 한국과 북한은 공존을 도모하며 살아가야 한다. 시민들은 촛불혁명을 통해 변화를 추동하고 있다. 그런데 그 변화가 상층부 엘리트에게는 반영되지 않고 있다. 군인·검찰 등 분단 속에서 기득권을 누리던 사람들이 촛불혁명과 변화를 두려워한다. 사회적 변화가 발생한다고 자신들에게 불리한 것도 아닌데, 엘리트들은 공존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런 엘리트를 대변하는 언론이 동아·조선이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힘이 센 언론사가 변화하지 못하니 사회 부작용이 발생한다.

언론은 사회변화에 민감성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모두가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 방송사들은 사회변화에 민감한 모습을 보여 다행이다. 또 중앙일보는 동아·조선과 달리 국제 정세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중앙일보는 동아·조선과 다른 남북관계 관점을 가지고 있다.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 신문 중 중앙일보 하나라도 좋은 역할을 해서 다행이다.

Q. 현재 동아일보 기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

A. 요즘 언론사 입사가 힘든 상황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많은 지망생이 높은 경쟁률을 뚫고 동아·조선에 입사한다. 현재 동아·조선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회사의 방침과 간부의 요구에 맞춰갈 수밖에 없는 현실도 이해한다.

그런데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내가 알고 있는 동아일보의 괜찮은 후배들이 변했다는 점이다. 정말 괜찮은 후배였는데, 입사 5년 10년이 지나면 사람이 바뀐다. 높은 직책까지 올라간 후배들은 젊은 날 봤던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다. 표정도 달라져 있다. ‘객관적이고 사실을 추구하자’는 것이 언론인데, 언론사가 사람의 본질 자체를 왜곡시키는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보면 안쓰럽고 처량하다.

이제 동아·조선의 독점적 지위는 깨졌다. 동아·조선이 자신을 1등 신문이라 여기는 시대착오적인 자세를 계속 가지고 있다면 수명이 오래가지 않을 거다. 현장 기자들은 회사의 앞날을 위해서라도 간부와 사주에게 충정 어린 고언과 권고를 하길 바란다. 기자들 스스로 동아일보의 불합리한 방침을 바꾸도록 노력해야 한다.

▲1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조선·동아 시민행동 발족 기자회견 (사진=미디어스)

Q. 자본 권력의 위협을 경고한 ‘김중배 선언’이 생각난다. 실제 현재 언론은 권력과의 싸움이 아닌 자본과 싸움을 벌이고 있다

A. 김중배 선생은 일정 규모 이상의 거대 언론을 두고 경고를 한 것이다. 사세를 키우고 많은 기자를 고용하는 대형 언론사 말이다. 근본적으로 이런 언론사는 자본 권력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제 ‘작지만 강한 언론’이 필요할 때다. 뉴스타파가 그 예다. 뉴스타파는 훌륭한 탐사보도 결과물을 낸다. 그런데 직원은 많아 봐야 50명 수준이다. 뉴스타파는 자신들의 규모를 무리하게 늘리지 않는다. 특정 자본에 종속되지도 않았다. 뉴스타파는 자본 권력에 휘둘리지 않을 만큼의 규모를 가지고 자신들의 능력을 발휘한다. 이런 언론사가 더 많아져야 한다.

취재 분야도 중요하다. 사회 전 분야에 걸친 기사는 종합매체에서 쓰면 된다. 작은 언론사는 특수한 분야를 개척하고 탐사보도를 해야 한다. 미디어, 자동차, 식품, 협동조합 등 각자의 분야에서 길을 열어나가야 한다. 소수의 기자가 깊이 있는 보도를 하면 큰 언론사도 따라가기 마련이다. 전문화된 작은 언론이 늘어나는 것이 자본 권력의 지배를 막을 수 있는 길이다.

기자 개인의 역할도 중요하다. 올바른 가치관을 지닌 기자는 어딜 가서도 드러나는 법이다. 열심히 글 쓰고, 현장에 나가 발로 뛰고, 기사의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 정상적이지 않은 기사가 넘쳐나는 시대에 보석 같은 기사는 금방 드러나게 된다.

Q. 언론 신뢰도가 하락하는 것도 큰 문제다

A. 기자들이 욕먹는 건 옛날도 마찬가지다. 난 과거 인혁당 사건을 취재한 바 있다. 당시 피해자 가족들은 수사기관이 고문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관련 내용을 취재하고 기사를 보냈는데 출고가 안 됐다. 그때는 그런 시대였다. 그래도 언젠가는 진실을 밝힐 날이 있다 여기고 취재를 꾸준히 해왔다. 그런데 피해자 가족들은 기자를 믿지 않았다. “중앙정보부에 보고하려고 취재하냐”, “당신들이 기자냐”라는 모욕적인 말도 들었지만 참아냈다. 이후 자유언론실천선언을 하고 기사가 나가자 피해자 가족들이 박수를 쳐줬다. 

이처럼 기자들이 사실을 보도하고 진실을 알리면 시민들은 생각을 바꾸게 된다. 팩트로 접근하면 ‘기레기’ 소리를 듣지 않는다. 시민들에게 섭섭해할 것 없다. 우리도 겪었던 일이다.

▲동아일보 강제 해직사건 당시 동아일보·동아방송 기자, 프로듀서, 아나운서들이 서울 광화문 동아일보 사옥에서 종로5가 기독교회관까지 행진을 벌이고 있다. (사진=동아투위)

Q. 동아투위·조선투위 기자들을 보면 ‘지사’의 이미지가 강하다

A. 우리는 ‘지사’라 불리길 원치 않았다. 당시는 유신정권이라는 시대적 배경이 있었다. 중앙정보부와 보안사령부 사람들이 편집국장 옆에 앉아 있을 때였다. 그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언론인 노릇 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니 우리가 지사라 불린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기자라 생각했지 지사라 생각하지 않았다. 해직된 후 원치 않게 지사가 된 셈이다.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다.

지금은 언론에 대한 제재가 없다. 정권 비판 기사를 쓴다고 감옥에 보내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언론 환경은 나빠지고 있다. 명백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독재 정권 시절에는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시대가 모호하다. 아마 여러분들은 독재 시절보다 기자 노릇 하기 더 힘들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기자 개인의 기준이 중요해진다. 기자가 자기 안에 있는 기준을 스스로 구축해야 한다. 개인의 역량과 가치관이 중요한 시대다.

Q. 끝으로 조선·동아 100년을 바라보는 시민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A. 얼마 전까진 동아·조산이 언론을 독점했다. 독점에 금이 간 계기는 동아투위, 조선투위였다. 해직사건 이후 동아·조선에 대한 신뢰가 깨지고 대항언론이 생겼다. 이제는 동아·조선 100년을 비판적으로 되돌아봐야 한다. 이런 활동은 한국 정신사에도 의미 있게 다가갈 것이다. 이제는 동아·조선의 오만을 막아야 한다.

또 언론인에게 당부한다. 제발 우리를 화석화된, 실패한 언론인의 전형으로 보지 마라. 우린 아직 살아있고 당시 상황을 증언할 수 있다. 언론사주의 횡포를 막을 의사가 있는 사람들이다. 현직 기자들과 언론의 미래를 고민하고 소통할 때 가장 행복하기도 하다. 함께 나아갔으면 좋겠다.

윤수현 기자  melancholy@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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