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총수 일가의 사익 챙기기는 더는 대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SBS의 대주주 태영그룹, 서울신문의 호반건설 등 언론사 대주주도 일감 몰아주기 등을 경영권 승계에 악용하는 사례가 있어 시민단체가 머리를 맞댔다.

1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생경제위원회와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주최로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경영권 승계,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 토론회가 열렸다.

1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일감몰아주기를 통한 경영권 승계,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 토론회 (출처=미디어스)

사례 발제를 맡은 윤창현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장은 SBS의 경우 지배주주인 태영그룹은 윤세영 회장에서 윤석민 회장으로의 2세 승계작업이 마무리된 상태라며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사익추구 행위들이 ‘사회 균형추’ 역할을 해야 할 언론 주주 기업에도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윤 본부장은 태영그룹의 대표적인 사익추구 행위로 일명 ‘SBS콘텐츠 유통 수익 빼돌리기’를 꼽았다. SBS 지주회사인 ‘SBS미디어홀딩스’가 높은 지분율을 가지고 있는 계열회사 SBS콘텐츠허브, SBS플러스에 수익이 배분돼는 형태로 SBS에 온전한 수익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윤 본부장은 “100원의 콘텐츠 수익 중 모든 제작비 부담을 안고 콘텐츠를 제작한 SBS는 38원을, 이를 유통한 미디어홀딩스 계열사들은 62원을 가져간 셈”이라며 “땀 흘려 농사지은 농부는 비룟값도 못 벌고 중간도매상만 폭리를 취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밖에도 태영건설 부회장의 가족기업인 ‘뮤진트리’와 SBS계열회사간의 독점 수의 계약, 미디어홀딩스에 경영자문료 지급, 윤석민 회장과 최영근 SK그룹 3세가 최대주주로 있는 용역기업 ‘후니드’에 일감 몰아주기 등이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윤 본부장은 “이런 사례들을 바로 잡지 않으면 공정거래법이 사문화되는 형태로 될 것”이라며 “SBS 같이 범죄 행위를 감시하고 비판할 책무가 있는 지상파 방송사를 사익추구의 수단으로 변질시켰다는 비판은 피할 길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6월 호반건설이 최대주주가 된 서울신문도 비슷한 실정이다. 장형우 전국언론노동조합 서울신문지부장은 호반건설이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경영권 승계를 완성해 왔다고 했다. 그는 “건설회사인 호반건설이 왜 서울신문 경영권을 획득하기 위해 지분을 매입한 건지 의문을 품다가 호반건설을 자체 검증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호반건설의 경우 2000년대 초반부터 총수 일가의 2세에게 종자 기업 지배권을 증여한 뒤 일감몰아주기와 흡수합병을 통해 종자 기업을 키우는 형태로 경영권을 승계했다고 서울신문 지부는 주장했다.

서울신문 지부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김대헌 호반건설 부사장은 15살이던 2003년, 자본금 5억원의 ‘비오토’ 최대주주가 된 뒤, 호반 계열사와 흡수합병과 내부거래를 통한 일감 몰아주기, 종자 기업 중심으로의 재편을 통해 자산규모 8조 2000억원의 그룹 지배권을 갖게 됐다. 장녀와 차남 역시 이같은 방법으로 각각 8억원의 종자기업 지배권으로 28살에 1400억원 대 주식을 소유, 자본금 3억원의 종자 기업 지배권으로 5년 만에 가치 1조 961억원의 주식을 소유하게 된다.

장 지부장은 “김상열 회장은 3남매가 10, 20대일 때 종잣돈으로 세운 회사에 일감 몰아주기, 증여세 회피 등을 통해 경영권 승계를 완료한 뒤, 기업 상장을 통해 자산을 부풀리려 한다”며 “서울신문이 언론 본연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이런 회사에 인수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토론회에 모인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이 같은 사례들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선 강화된 규제가 포함된 공정거래법 개정 등이 필요하다고 대안을 냈다.

호반건설의 경우 2017년 9월 공시대상기업 집단으로 지정됐지만, 공정거래위원회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는 자산 5조원 이상 대기업집단(공시대상기업집단)에만 적용돼 공정위 감시망에서 벗어나 제재를 받지 않은 채로 그룹 승계가 이뤄졌다.

노종화 전국금속노동조합 법률원 변호사는 “경영권 승계작업의 핵심이 최소한의 자금으로 최대한의 지배권을 획득하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이용되는 방식 중 하나가 호반건설의 사례처럼 합병 비율을 왜곡하는 것”이라며 “지배주주가 많은 지분을 확보한 비상장회사에게 일감을 몰아줘 기업가치를 증가시킨 다음 합병하는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노 변호사는 현행규제 내에서 이를 해결하지 못하는 이유로 대주주의 의견에 반대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유명무실한 이사회와 공정거래법의 허술한 울타리를 지적했다. 노 변호사는 “이사 선출시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해 이사회의 독립성을 강화하고, 공정거래법 내 사익편취 행위를 제한하는 데 있어 특수관계인 지분율뿐 아니라 간접 지분율까지 포함해 규정을 적용하는 등 공시 대상 기업집단 선정 기준을 완화·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상훈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실행위원은 “SBS에 지주회사가 도입될 때만 해도 지배주주 일가로부터의 방송 독립성 강화가 큰 과제여서 도입됐지만, 지배주주의 사익편취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만감이 교차한다”며 “SBS의 ‘후니드’ 사례에서 보듯이 간접 지분율에 대한 규제는 시급히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위원은 “지배주주 일가의 직접 지분율과 같은 단일한 기준이 아닌 간접 지분율까지 규제하는 대안이 가능해 보인다”고 짚었다.

김종보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변호사는 “자회사가 아닌 총수 일가가 지분을 가진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건 사익편취에 해당되는 문제”라며 “지배주주와 특수관계인들이 회사의 사업기회와 관련된 회사에 출자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입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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