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남자가 있다. 최근 미디어의 스포트라이트를 집중시킨 그들의 이름은 허경영과 나훈아다. 허경영은 대선주자였고, 나훈아는 가수다. 그러나 그들이 관심을 모은 아이템은 기행(허경영)과 소문(나훈아)이었다. 미디어와 함께 울고 웃은 2008년 두 남자의 희비쌍곡선은 어떤 모습일까.

▲ 조선일보 1월26일자 11면

한 사람은 선계(仙界)의 이야기를 망령되이 떠벌이다가 지난 1월 23일 구속됐다. 그는 축지법·공중부양·염파 등 무협소설 속 아이템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그에게서 희망을 보려했던 유권자도, 더이상 그에게서 정치를 읽어내려 하지 않았다. 제17대 대통령선거의 후보로 일으킨 센세이션은 일회성 이벤트에 그쳤다. 그 역시 스스로에 대한 평가를 모를 리 없었다. 그는 대선 후, 한바탕 연희를 벌이는 남사당패의 꼭두쇠가 되기를 자처했다. 그는 대통령이 되기보다 스타가 되기를 바랐던 듯 싶다. 미디어는 그의 어록을 좇아 허경영 신드롬을 만들었다. 유권자는 시청자가 됐고, 더이상 참정권을 행사할 수 없는 그들은 시청권을 그에게 몰아줬다. 오락 프로그램 섭외 일순위로 그의 이름이 올랐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그는 신선도 코미디언도 아니었다. 그저 허풍 센 인간이었던 것이다. 바로 허경영이다.

또 한사람은 한국을 휩싼 소문을 지난 25일 거침없는 언행의 기자회견으로 잠재웠다. 그는 잠적설·연분설·와병설·신체훼손설 등 B급 영화 아이템이 될법한 황당 루머의 주인공이었다. 소문의 실상을 확인하려 했던 사람들은, 더이상 그에게 소문의 실체에 대해 물을 수 없게 됐다. 이 기자회견은 질문 하나 받지 않는 강연회가 됐고, 종교집단의 부흥회와 같은 문답으로 급하게 마무리됐다. 그의 출연과 주장은 무대 뒤를 향하던 원로가수를 스타로 '회춘'케 했다. 그가 기자회견 단상으로 뛰어올라 벌였던 '지퍼게이트'는 금세기 최고의 쇼로 기억될 법하다. 미디어는 그의 어록을 좇아 나훈아 카리스마를 증폭시켰다. 그는 아이돌스타처럼 실시간 검색어를 평정했다. 그는 소문처럼 패륜아도 불구자도 아니었다. 가수인 그는 이 이벤트를 계기로 리더십 강연자로도 급부상했다. 바로 나훈아다.

▲ 동아일보 1월 16일자 20면

기자들에게 있어 자가발전하는 취재원처럼 좋은 '감'은 없다. 창피한 줄 모르고 거짓을 일삼은 허경영이나, 부끄러움을 잊고 800여 기자 앞에서 지퍼를 내린 나훈아는 쉽게 만날 수 없는 '대박' 아이템이다. 그만큼 엄청난 뉴스가 쏟아졌다. 뉴스의 면면을 보면, 기행과 소문이 주장으로 대체됐을 뿐이다. 어쩌면 허경영과 나훈아에 대한 '진실게임'은 허울 뿐인지 모른다. 애초부터 '진실'에는 관심조차 없었는지 모른다. 그저 말초적 재미를 즐기면 그 뿐이고, 이런 표피적 관심에 책임감이 따를 리 없다. 미디어 역시 마찬가지다. 근엄한 종합 일간지 역시 '골프장에서도 뒷담화로 나올 아이템'이라며 보도했다니,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 맞다! 두 남자로 인해 저널리즘은 너절리즘이 됐다.

희비쌍곡선의 변곡점에서 두 남자가 만신창이가 됐듯, 두 남자와 밀월했던 저널리즘도 만신창이가 됐다. 허경영과 나훈아를 기자로 모시고, 미디어가 나서 기자회견을 자청해야 할 상황이다.

"두 선생님들! 너무하신 것 아닙니까…. 그간 왜 거짓말을 하시고, 사태가 이 지경이 되도록 침묵하셨나요? 하루도 기자생활 해본 적 없을 테니, 아무 말 말고 우리 얘기 좀 들어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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