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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임명에 늘어난 부동층, 뭘 보여주나대안 못 되는 기성정치와 존재감 없는 진보정치
김민하 / 저술가 | 승인 2019.09.16 09:33

[미디어스] 명절이 지내고 다시 일상이 시작됐다. 언론은 조국 장관 관련 논란이 한국 사회 여론에 미친 영향을 이런 저런 기준으로 평하고 있다. 결국 ‘스코어’를 따지면 집권세력의 실책에도 보수야당이 득점 기회를 만들지 못했기 때문에 상황 변화는 사실상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후 정치를 전망하기 위해선 이 문제가 대중적 인식에 미친 영향을 간과할 수 없을 것 같다.

보수언론의 표정은 좋지 않다. 추석을 앞두고 진행된 각종 여론조사 결과가 그들 입장에서 불만족스러웠기 때문이다. 여론조사 수치들이 가리키는 사실은 간명하다.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강행에 대한 좋지 않은 여론이 드러났고 이게 현 집권세력 내 지지층의 균열까지 이어질 수 있는 게 사실이지만 자유한국당을 중심으로 한 보수정치가 반사이익을 볼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다. 

보수언론은 조국 장관 논란에 대한 대응 전략 부재 등을 지적하고 있지만 근본적 문제는 보수정치가 ‘국정농단’으로 인해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고 봐야 한다. 사람들이 조국 장관 문제로 드러난 사회지도층의 기득권 재생산을 위한 편법과 이로 인한 불공정과 부정의, 이를 감싸주는 ‘끼리끼리 정신’에 분노하고 있다지만 이런 점에 있어서는 보수정치가 더하면 더했지 결코 대안을 자처할 수 없는 처지라는 것이다.

현실이 이렇기 때문에 더불어민주당은 ‘신 민주당 지지층’이라 부르는, 그러니까 조국 장관 문제로 이반하고 있는 중도층을 겨냥한 정치캠페인은 양쪽에서 앞으로도 치열하게 전개될 것이다. 집권세력은 이들을 총선까지 다시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으로 돌려 세우는 걸 목표로 삼을 것이다. 이를 위한 재료는 검찰을 비롯한 권력기관과 선거제도에 대한 개혁과 북미대화 재개로 이어지는 남북관계 개선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전격 경질한 것이나 일부 언론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을 평양으로 초청하는 친서를 보냈다는 사실을 보도한 것은 여당 입장에선 ‘호재’일 것이다. 그러나 북미대화의 동력이 다시 살아날 수는 있어도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인지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북미관계에서 싱가포르 회담 수준에서 만족하는 것이 아니면 하노이 회담의 파국을 각오해야 하는 상황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검찰개혁이나 선거제도 개혁의 대중적 ‘효능감’이 이미 떨어지고 있거나 새로 생겨나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다. 윤석열 검찰총장 체제의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인 조국 장관을 겨누는 그림이 되면서 우병우 전 민정수석으로 대표되는 검찰 권력의 문제는 희석되고 있다. 선거제도 개혁 역시 이의 최대 수혜자인 정의당 등이 정치적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는 상황에선 확실한 지지 여론의 형성이 쉽지 않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1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헌정 유린, 위선자 조국 사퇴 국민 서명운동 광화문 본부' 개소식 및 정당연설회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반면 보수정치세력은 ‘합리적 보수’라 불리는 방향으로 정치노선을 재정립하면서 흩어졌다 다시 모이는 정계개편을 추진하고 공정이니 정의니 하면서 ‘시장원리에 기반한 경제’를 앞세운 정책적 공세를 시도하려 할 것이다. 실제 ‘빅텐트’의 보수정치 버전을 추구하는 세력이 일부 가시화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의 수술과 입원이 허가된 것만으로도 벌써 ‘정치적 의도’가 언급되는 것은 정계개편의 과정에서 여전히 박근혜 전 대통령 변수가 유효하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이게 보수정치 재편의 가장 큰 걸림돌이란 사실은 당분간 변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보수정치가 전열을 정비해 그들의 표현하는대로 정권의 독주에 ‘브레이크’를 거는 일은 문재인 대통령 임기 내에는 일어나기 힘든 일일 것이다.

여야 모두 대안이 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부동층’은 말 그대로 중립화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 내부에 존재하는 담론적 에너지까지 무효화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그것은 삶을 직접적으로 개선해주지 뭇하겠다면 적어도 경쟁할 기회라도 보장해 달라는 시장원리 구현에 대한 요구이다. 조국 장관을 둘러싼 논란과 의혹, 이를 둘러싼 기성언론들의 정파적 자기기만은 이 요구를 증폭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것은 자타칭 진보언론들의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로 드러난다. 이들은 이번 사태에 대해 여러 얘기를 쏟아내고 있다. 정치에 개입하는 검찰, 강남좌파와 지식인의 운명, 교육제도와 결과의 평등 등에 대한 논의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와 관련한 글들 중에는 오직 정파적으로 사고한 결과물인 경우도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어쨌든 모두 중요한 논점인 것은 틀림없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주제들조차 대중적 차원에서는 개혁이나 진보를 말하는 기득권 식자층들이 자기들끼리의 문제를 덮어주기 위한 시도 정도로 인식된다는 것이다.

그동안 일부 진보적 논자들은 이 논쟁 구도의 한계를 말하기 위해 ‘청년전태일’이란 단체의 주장을 예로 들어 왔다. 기성세대나 명문대 재학생 및 졸업생들이 공정한 경쟁 원리의 훼손을 말하지만 애초에 경쟁에 끼지도 못하는 ‘흙수저’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올바른 지적이다. 그런데 이 단체와 조국 장관의 비공개 대담이 성사되면서 상황이 이상해졌다. 이들이 희망, 공정, 정의 사다리를 들고 가 조국 법무부 장관과 함께 포즈를 취한 모습은 정확히 ‘들러리’란 단어를 연상케 했기 때문이다. 정치적 미숙함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이 사례는 오늘날 진보정치가 놓여있는 난감한 상황을 그대로 보여준다.

조국 법무부 장관이 11일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청년시민단체 '청년전태일' 회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법무부/연합뉴스)

진보정치가 자기 대의를 대중적으로 전달하는데 실패할 때, ‘부동층’의 에너지는 공정한 시장원리 구현이라는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극우포퓰리즘이나 또다른 엘리트 정치로 귀결되는 길을 밟게 된다. 이는 진보적 대의가 냉소의 대상이 되고 오직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만이 목적인 각자도생의 사회원리가 고착화 되는 현실을 강화시킬 것이다. 부동층의 입맛에 맞는 정치를 하라는 게 아니다. 그 ‘부동층’의 것조차도 되지 못하는 여론에 불을 당기고 이를 배경으로 대안적인 진보정치가 기득권을 압박해야 우리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각박한 환경에서 진보정치도 할 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같은 한가한 얘길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19세기 말 서구의 좌파들은 “사회주의냐 야만이냐”라는 표어를 즐겨 사용했다. 앞서 정치사회적 개념 혼란을 촉발시킨 장본인인 조국 장관은 아이러니하게도 인사청문회에서 “나는 사회주의자인 동시에 민주주의자”라고 했다. ‘사회주의’와 ‘민주주의’가 야만을 향한 길을 여는 열쇠가 되도록 내버려 두어서야 되겠는가? 

김민하 / 저술가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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