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대단하다는 말 외에는 할 수 없을 듯하다. 팀이 넣은 4골 모두 손흥민이 직접 넣거나 시작이었다는 점에서 그가 토트넘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영국 현지 전문가들이 손흥민이 없는 토트넘은 존재 가치가 없다는 극단적 발언까지 했었는데, 그 발언이 맞았음을 스스로 증명했다.

토트넘을 구원한 손흥민, 이것이 월클의 존재감!

크리스탈 팰리스와 경기 전부터 손흥민이 맹활약을 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다. 그동안 크리스탈 팰리스 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토트넘은 초반 주춤한 상황에서 벗어나야 했다. 어설픈 조직력으로 져서는 안 되는 경기를 내주는 등 엉망이었던 초반 분위기를 반전으로 이끌 촉매가 필요했다.

국가대표 2경기를 모두 뛴 손흥민으로서는 부담스러운 경기일 수도 있었다. 토트넘의 다른 국대 선수들이 비교적 짧은 거리를 오간 것과 달리, 터키와 투르크메니스탄까지 갔다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는 일정이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손흥민의 몸놀림은 더욱 정교해졌다.

토트넘의 손흥민 [로이터=연합뉴스]

토트넘 팀 자체도 각성이 되어 있었다. 상대적인 약팀이라해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이전 경기처럼 내줄 수 있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케인을 원톱으로 두고 손흥민은 왼쪽 윙으로 나섰지만 사실 프리롤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 자연스럽게 스위칭을 하면서 다양한 옵션들을 보여주었으니 말이다.

경기를 주도하면서 케인의 바로 뒤에 서거나 투톱, 혹은 원톱으로 나서는 등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팀을 이끌었다. 공격을 이끈 이는 손흥민이었다. 히든 스트라이커 역할보다는 양쪽 윙으로 오가고 중앙에서 공격 전술을 전개해가는 역할까지 하면서, 마치 팀 자체가 손흥민을 중심으로 뻗어간다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였다.

윙크스가 홈런 슛으로 포문을 열기는 했지만, 가장 효과적인 슛은 손흥민에게서 시작되었다. 초반부터 밀어붙인 손흥민은 경이로운 골로 포문을 열었다. 포백 중심에 선 알더베이럴드의 활약도 좋았다. 흥미롭게도 그가 건넨 두 번의 패스가 손흥민과 케인을 비교하게 만들었다.

후방에서 길게 패스해 전방의 공격수에 전달하는 알더베이럴드의 패스는 우선 케인에게 먼저 향했다. 하지만 케인은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공격을 무산시켰다. 하지만 손흥민은 달랐다. 다시 한 번 알더베이럴드의 길게 넘어온 패스를 손흥민은 수비수 뒤로 돌아 들어가 잡았다.

손흥민의 시즌 1호 골 장면 [AFP=연합뉴스]

그 과정이 너무 아름다웠다. 수비수 뒤로 돌아 들어가며 패스를 받은 후 두 명의 수비수를 제친 손흥민은 상대 골키퍼의 기대와 달리 왼쪽이 아닌 오른쪽 골대를 향해 슛을 쏴 골로 연결했다. 역동작으로 손도 쓰지 못하고 골을 바라보는 골키퍼의 모습에서 손흥민의 올 시즌 첫 골의 위엄을 알 수 있었다.

첫 골이 들어가며 분위기는 완전히 토트넘의 편이었다. 오리에를 향해 패스를 넣어주는 과정도 손흥민의 클래스를 알 수 있게 하는 장면이었다. 공격 전개를 위해 어떤 패스를 해야 하는지 알고 있음은 오리에에게 주는 패스에서 잘 보였기 때문이다.

손흥민의 완벽한 패스를 받은 오리에는 중앙에 모인 3명의 토트넘 공격수에게 연결하기 위해 패스를 했지만, 수비수 판 안홀트의 발에 맞고 골이 되고 말았다. 워낙 압박이 강한 상황에서 벌어진 결과물이었다. 토트넘에서 퇴출될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왔던 오리에는 손흥민으로 인해 완벽하게 부활하는 경기를 펼쳤다.

오리에는 이번에는 택배 크로스로 손흥민에게 보답했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게 해준 손흥민을 향해 오리에는 완벽한 크로스를 올려주었다. 왼쪽 윙 자리에서 박스 안으로 들어선 손흥민을 향해 완벽하게 들어간 패스를 주저없이 발리슛으로 골로 연결하는 장면도 압권이었다.

무리하지 않고 패스를 완벽하게 맞춘다는 느낌으로 왼발 발리슛으로 골을 만드는 과정은 아름다웠다. 손흥민이 월드 클래스라는 것은 두 번의 골이 모두 증명했다. 전반전 4번째 골이 터지는 과정에서도 시작은 다시 손흥민이었다. 중심에 있던 손흥민을 두고 퍼져나가는 과정에서 오른쪽으로 향하는 케인에게 효과적으로 패스를 해줬다.

두 번째 골 넣는 손흥민 [Action Images/로이터=연합뉴스]

오리에 상황과 조금 비슷하게 전개된 과정에서 케인은 지체 없이 낮게 깔리는 크로스를 올렸고, 왼쪽에서 파고들던 라멜라가 골로 연결했다. 이 과정에서도 손흥민의 완벽에 가까운 패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말 그대로 토트넘이 넣은 4골 모두 손흥민의 발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이 좋았다.

후반 경기는 워낙 큰 점수차로 앞서나가자 어수선한 분위기로 이어졌다. 보다 집중력을 보여줘야 했지만, 국가대표 경기 후 첫 게임이라는 점과 큰 점수차가 경기력 자체를 떨어뜨렸다. 카드가 남발되고 좋은 기회를 만들 수 있는 계기도 없었다. 이런 와중에도 홀로 동분서주한 것은 손흥민이었다.

해트트릭을 달성할 수도 있는 기회였지만 아쉬웠다. 에릭센이 고집을 부리며 프리킥을 모두 차며 기회를 박탈한 것도 아쉬웠다. 더욱 마지막 프리킥은 손흥민이 차고 싶어 했다. 충분히 찰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에릭센은 고집을 부렸고, 그렇게 손흥민에게 뺏은 프리킥은 골문과 상관없는 홈런 슛이 되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손흥민의 모습은 보기 좋았다. 경기 후반 오른쪽으로 빠진 공에 집착하며 크리스탈 팰리스 수비수를 제치고 골문을 비우고 나온 골키퍼를 보고 날린 슛이 옆 그물을 맞춘 장면은 아쉬웠다.

조금만 옆으로 흘렀다면 완벽한 해트트릭이 완성되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손흥민은 최전방 공격수였음에도 경기 후반 상대 공격을 막기 위해 전력질주해 슬라이딩까지 하는 모습을 보였다. 상대 호치슨 감독이 손흥민의 이런 모습에 감탄할 정도였다.

손흥민이 골을 넣기 시작했다. 이는 토트넘이 다시 상승세를 탈 수 있다는 신호다. 손흥민이 살아나면 토트넘은 무적이 된다는 공식은 기록이 알려주고 있다. 현지 언론들 역시 토트넘은 손흥민이 살아나야 한다고 분석할 정도로 그의 존재 가치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손흥민의 시즌은 이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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