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눈을 뜬 채로 상상했다. 엘리베이터 없는 옛날 복도식 아파트. 그는 12층 너머 옥상에 올라가서 선을 내린 뒤 6층으로 다시 내려왔다. 그리고 외벽에 몸을 붙인 채로 선을 낚아채서 실내로 선을 집어넣기 위해 발을 디뎠다. 그는 추락했다. 그가 떨어진 바로 그곳에 장갑 한짝이 떨어져 있었고, 나는 울었다. 지금 나는 조합원의 장례를 준비한다.

7월 6일 토요일 오전 11시, 부산 중구에 있는 한 아파트에서 사고가 났다. 우리 조합원이 쓰러져 있는 것을 아파트 주민이 목격하고 긴급후송이 됐다. 병원에서는 뇌출혈을 확인하고, 두 차례 수술을 했다. 그런데 우리 조합원은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 달이 넘도록 강제로 잠을 자고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망할 수도 있다고 한다.

▲(사진=희망연대노동조합)

부산에서 집회를 한 8월 28일, 그날 오후 의사는 가족에게 “이제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날 밤, 나는 조합원의 어머니에게 “우리 조합원들이 함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노동조합이 끝까지 함께할 거에요. 반드시 일어날 거에요. 반드시”라고 말했다. 또 이렇게 말했다. “만에 하나 잘못됐을 경우에 노동조합이 책임지고 장례를 치르겠습니다. 어머님과 함께요. 그리고 그런 사고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싸우겠습니다.”

조합원이 깨어나길 바라지만 나는 장례를 준비해야 하는 노조 간부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그가 왜 노조에 가입했는지, 그가 왜 사고를 당했는지 알아내야 한다. 그리고 원청 LG유플러스와 하청업체들에게 쏟아낼 이야기도 구호도 만들어야 한다.

이름 김OO. 1973년 1월 15일생. 현재 거주지는 회사 근처 원룸. 과거에는 휴대폰 대리점에서 일했고, 직접 대리점을 운영하기도 했음. LG유플러스 홈서비스센터에서 일한 것은 5년이 안 됨. 2018년 거제도에서 LG 인터넷 작업을 하던 중 노동조합의 직접고용 투쟁으로 업무공백이 발생하자 당시 하청업체가 업무공백을 메우기 위해 부산으로 데려옴. 올해 1월 1일 소속 업체가 바뀌자마자 노동조합 가입. 자회사 1차 전환 대상이 아닌데도 선뜻 가입. 지회장이 “행님, 노조 할낍니까?” 묻자마자 바로 오케이. LG유플러스비정규직지부 서부산지회 조직차장을 맡음. 업무실적은 상위권. 노조 활동도 열심히 함. 8월 14일 산업재해 승인. 1차 수술 이후 잠깐 깨어났을 때 지회장에게 한 말은 “괜찮아, 괜찮아.” 어머니에게 한 말은 “머리 아파, 주사 놔 줘.”

▲사고 현장에서 발견된 조합원의 장갑 (사진=희망연대노동조합)

막을 수 있었다. 소위 서브탭, RN이라고 불리는 중계기가 옥상이 아닌 바닥이나 벽면에 설치돼 있었다면 그는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상품별로 포인트를 쌓아 일정 포인트 이상이 되면 실적급이 발생하는 특수고용 임금체계가 아니었더라면 그는 무리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위험작업의 경우 2인1조 근무환경이 마련돼 있었다면 그는 안전했을 것이다.

빌어먹을 외주화 탓이다.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중계기 설치를 확대하자고 하면 LG유플러스는 ‘예산’ 핑계를 댄다. 일하다 다치면 안 된다고 대책을 마련하자고 하면 사측은 사다리 하나 바꿔주면서 생색을 낸다. 인터넷 일이라는 게 전주, 옥상, 난간, 지하작업이 많기 때문에 안전교육을 토론식 강의로 제대로 시행해야 한다고 요구하면 사측은 법대로 ‘개별-온라인교육’을 시킨다. 하청업체들은 그럴 만한 능력과 의지가 없고, 원청 LG유플러스는 이 모든 것을 ‘비용’으로 생각한다.

LG유플러스 홈서비스센터의 산업재해율은 통신업 평균의 17배 수준이다. 한 달에 세 명 이상의 조합원들이 산재를 당한다. 안전대책을 하청에 떠넘긴 원청, 중간착취에만 혈안인 하청 탓이다.

▲조합원 사고현장 (사진=희망연대노동조합)

우리가 부산에서 집회를 하니 원청 LG유플러스는 이런 대답을 내놨더라. “해당 대리점에 확인해 본 결과 추락사고 예방을 위한 교육을 실시했고 개인별 안전보호구를 제공했음에도 사고가 발생해 안타깝다. (대리점측이) 앞으로 안전사고예방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끝까지 ‘나는 모른다’는 식이다. 이런 너희들 때문에 우리 조합원, 우리 동지가 떨어졌다고! 니들 때문이라고!

싸워서 쟁취해야 한다. 살기 위해 싸워야 한다. 믿을 사람은 우리뿐이다. 요양보호사 일을 하면서도 매일 아들을 면회하고 기도하는 어머니, 그와 함께 웃고 울면서 지낸 서부산지회 동지들, 저녁 8시에 집회를 열어도 대구 포항 울산에서 부산으로 한걸음에 달려오는 조합원들.

지금 나는 우리 조합원들을 살리기 위한 투쟁을 준비한다. 마음의 준비? 너희들부터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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