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올해 '방송의 날' 기념행사는 열리지 않았다. 대신 지상파 방송의 위기를 진단하고 대응방안을 모색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이 자리에서는 지상파의 급격한 경쟁력 저하 원인으로는 크게 지상파 스스로가 우리사회 공론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 채 산업환경 변화에도 대비하지 못한 패착, 그럼에도 비대칭 규제를 유지하고 있는 정부가 지목됐다. 공영방송을 비롯한 지상파가 스스로 사회문화적 제도로서 핵심공론장의 역할을 입증하고, 나태한 비지니스 관습을 탈피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국방송협회(협회장 박정훈 SBS사장)는 '방송의 날'을 앞둔 2일, 매년 열던 축하연 대신 '방송의 위기와 대응을 위한 특별 토론회'를 한국언론정보학회(학회장 손병우 충남대 교수)와 공동 주최했다. 박 협회장은 "9월은 지상파의 축제기간이지만 행사를 처음으로 취소하고 특별세미나를 갖게 됐다"며 "지상파의 매출 현황은 참혹하다. 그 결과는 저희 스스로가 만들어냈고, 정책 당국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 자리가 지상파 발전의 의미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토론회 개최 취지를 설명했다.

한국방송협회(협회장 박정훈 SBS사장)는 '방송의 날'을 앞둔 2일, 매년 열던 축하연 대신 '방송의 위기와 대응을 위한 특별 토론회'를 한국언론정보학회(학회장 손병우 충남대 교수)와 공동 주최했다. (사진=한국방송협회)

이날 첫 발제를 맡은 정수영 MBC 전문연구위원은 '다시 미디어 공공성' 이라는 주제를 놓고 지상파의 공공성 재건을 위기 극복의 첫 단추로 제시했다. 지상파가 '기간미디어'로서, '공공서비스방송'으로서 사회 핵심공론장 역할을 부여받고 수행할 때 이를 전제로 산업적 고민이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정 위원은 그 방법의 일환으로 지상파가 자신에게 부여된 책무를 시민들 앞에서 스스로 증명해야한다는 개념의 '사회적 책임'(social accountability)을 강조했다. 시청자가 다양한 견해를 접할 수 있도록 사회적 엑세스를 개방하고, 뉴스와 시사프로그램 제작에 우선적으로 힘을 기울이며, 공론장에서 경제 상황에 따라 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고, 고품질의 정보를 보편적으로 제공하는 '기간미디어'로서의 역할을 사회적으로 검증받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러면서 정 위원은 미디어의 '사회적 책임'을 견인하는 권력-미디어-시민사회 세 주체의 상호 협력과 연대를 통해 정치·자본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지속가능한 '건강한 공론장'의 제도화 방안을 고민할 때라고 설명했다. '기간미디어'로서 지상파의 역할과 제도적 개선 방안에 대한 이른바 '사회적 논의'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이어서 발제를 맡은 정준희 한양대 겸임교수는 산업적 측면에서 지상파의 비지니스 관습을 분석, 구태에 해당하는 나태한 비지니스 관습에서 탈피해 '개방적 제휴'와 시청자 맞춤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과거 '지상파 독과점 시대'에 구축된 비지니스 관습이 남아 시대의 변화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하고, 시청자와의 결합고리를 놓쳐온 것이 현재 지상파 위기의 주된 이유라는 지적이다.

이에 정 교수는 "제도 의존적인 폐쇄적 엘리트 구조를 타파하고 개방적 제휴를 통해 기민하고 적응력 높은 기민한 산업으로 재탄생시켜야 한다"며 'TV광고의 선진화'를 아이디어로 제시했다.

정 교수의 주장은 TV가 다수에게 도달 가능한 강력한 인상매체로서 여전히 그 힘이 유효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정 교수는 "TV로부터 광고가 계속해서 빠져나가고 있는 현상은 단순히 TV의 힘이 약해져서가 아니라, TV의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이유"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 교수는 현재 스팟광고, 일부 가상광고, VOD 광고로 제한돼 있는 TV광고를 여러 플랫폼과 콘텐츠, 채널 등의 특성에 맞게 연결하는 방식의 'TV광고 선진화'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정 교수는 특히 시청자 분석 등을 통한 '타깃화' 광고가 활성화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컨데 영국 지상파 '채널4'(Channel 4)는 OTT로부터 얻은 이용자 데이터와 위성방송 이용자 데이터, 시청률 데이터 등을 결합해 VOD와 채널을 연결하는 크로스 플랫폼 타긴 광고 프로젝트를 개시했다.

'타깃화'를 위해서는 수용자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 정 교수는 "BBC는 2000년대 들어 조직 슬림화와 조직개편을 하고 '오디언스 앤 마케팅' 개념을 도입했다. 프로그램 제작 단계에서부터 수용자를 분석하고 목표 달성 여부를 평가한다"며 "한국의 방송사에는 이 같은 평가 시스템이 없다. 대중들의 평가와 자신들의 평가 중간 사이를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토론 패널로 참석한 정미정 언론인권센터 정책위원은 지상파의 위기를 한국 미디어의 공적 구간의 위기로 바라보고, 사업자 주체의 노력과 정부 규제기관의 노력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공적 구간이 줄어드는 만큼 정부의 근본적 제도개선 의지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정 정책위원은 "미디어 정책의 공공성과 상업성 간 딜레마는 원칙적으로 맞지만 문제는 정책결정 과정에서 그런 딜레마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정부는 불공정 규제를 두고 왜 아무것도 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공공성과 상업성의 관점에서 시장 문제를 분리해 볼 게 아니라 시장 전체가 건강한 체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근본적 해결의 시작으로는 '정부 규제기구의 일원화'를 제시했다.

최믿음 KBS 공공미디어연구소 연구원은 "방송법상 방송의 공적책무를 명확하게 규정해 방송사의 책무를 구체적으로 부여하고, 그에 대한 평가가 제도적으로 녹아나야 한다"면서 국내 방송정책을 비판했다.

최 연구원은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존재할 때 신규 사업자를 위한 비대칭 규제의 도입은 가능하다고 봤다. 다만 시장 상황 변동 발생 시, 즉 기존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지위가 유효하지 않을 시에는 정책당국이 시장상황 확인을 통해 비대칭 규제의 폐지 시점 역시 고민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양한열 방통위 방송정책국장은 "정부의 기본 정책방향은 비대칭 규제의 해소"라며 "중간광고, 협찬, 편성 등 규제 전반에서 통합적이고 현실적인 차원의 개선을 검토하고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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