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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로 만난 사이’- 이거야말로 '무모한’ 도전, 그래서 반갑다! 유재석의 재발견?[미디어비평] 톺아보기
meditator | 승인 2019.09.02 13:55

[미디어스] 각 방송사 연예대상을 휩쓴 유재석이 우리나라 MC계의 대표 인물이라는 데 이견을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언제부터인가 '유재석'이 출연한다 하면 안 봐도 유재석이 어떻게 할 것인지가 미리 그려지는 그런 상황이 되었다. 함께하는 웃기는 동생들을 구박해 가며 웃음을 뽑아내고, 게스트가 나오면 게스트의 웃음 포인트를 뽑아내기 위해 애를 쓰고, 동시에 주변 패널들을 동원하여 게스트의 장점을 극대화시키며 찬사를 거듭하는 등등 안 봐도 그려지는 유재석의 장점이, 이제는 굳이 찾아보게 되지 않는 유재석의 낡은 이미지로 굳어 버렸다. 그래서 여전히 우리 곁에 있지만, 어느새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오래된 가구’처럼 되어버린 듯한. 

하지만 그런 유재석이란 이제는 진부해져 가는 듯한 '스테디셀러'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바로 tvN <일로 만난 사이>이다. 뜻밖에도 이 프로그램은 언제인가부터 진행에 가장 유능한 MC 유재석을 황량한 들판에 풀어놓아 버린다. 진행을 하고 싶어도, 토크를 하고 싶어도 일이 먼저이다 보니 일에 치여 토크를 할 틈이 없다. 토크라도 할라치면 함께 한 게스트가 뭔 녹차 밭에서 어색한 토크냐며 퉁바리를 준다. 심지어 하루 고용한 주인장께서는 일이나 제대로 하라며 호시탐탐 잔소리를 한다. 그런데 '토크' 한번 제대로 하는 이 예능이 신선하다. 심지어 이제는 틀에 박힌 듯한 유재석의 '재발견' 같은 생각까지 드니, 다시 한번 유재석의 전성시대가 도래할지도 모르겠다. 

강호동, 이경규도 겪은 

tvN 예능 프로그램 <일로 만난 사이>

어쩌면 다들 한번씩 겪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1박2일>로 세상 부러울 것 없던 MC 강호동이 사회적 물의와 함께 돌아왔지만 그의 폼은 예전 같지 않았다. 아니, 강호동은 예전과 같았지만 예능의 달라진 포맷이 더 이상 시끄럽게 호령하며 프로그램을 이끄는 강호동을 튕겨냈다. 침체기를 거듭하던 그에게 손을 내민 건 나영석 피디였다. 예전 <1박2일>을 함께했던 나영석 피디와 함께, 심지어 당시만 해도 방송 편성조차 없이 콘텐츠로 승부를 걸었던 <신서유기>는 좀 다들 모자란 형들의 해프닝인 <1박2일> 초창기 콘셉트에 열광한 젊은 층의 지지를 얻어 시즌6에 이르렀다. 

거기에 역시나 강호동이 이끄는 게 아니라, 여러 출연진 중 하나로 자리한 <아는 형님> 역시 강호동에게 또 다른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프로그램을 이끄는 카리스마 대신, 시끄럽고 에너지 넘치지만 조금은 부족한 면도 있는 '형님'이라는 면모가 강호동의 새로운 가능성을 증명했다. 

허기는 불세출 이경규만 할까. MBC <일밤>으로 전성기를 열었던 그가 MBC가 아닌 KBS2에서 <남자의 자격>으로 새로운 예능의 시대를 열었는가 하면, 집단 예능의 트렌드가 지자 각 예능 프로그램의 패널로 활발하게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하다 심지어 <마이 리틀 텔레비전>까지 진출하더니,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를 예능으로 연결한 <도시어부>로 끝없는 '도전'을 이어 나가고 있는 중이다. 

반면에 유재석은 <무한도전>, <런닝맨> 등과 함께 꾸준한 활동을 이어왔었다. 하지만 <무한도전>이 마침내 종영하고, <런닝맨>의 인기도 예전 같지 않으며, 제아무리 포맷을 변화시켜도 여전히 지지부진한 <해피투게더>와 함께 유재석도 지지부진하게 대상 MC의 역사 속으로 저물어 가는가 싶었다. 

유재석, 들판에서 헤매다 

tvN 예능 프로그램 <일로 만난 사이>

그런 유재석을 구한 건 뜻밖에도 JTBC에서 그와 함께 <투유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정효민 피디였다. 오랫동안 예능을 떠나있던 이효리를 <효리네 민박>을 통해 대번에 트렌디한 예능인으로 끌어올렸던 정효민 피디. 묵은지 같았던 유재석을, 그를 도와주는 후배들이나 선배 없이 유재석이 제일 취약한, 스튜디오 밖 들판에 풀어놓았다. 

첫 회차는 녹차밭. 푸르른 녹차잎만이 무성한 녹차밭에서 이효리-이상순 부부와 함께 녹차잎을 따야 했던 유재석은 뜻밖에도 그간 예능에서 보여주었던 안정감 있는 진행을 팽개치고 안절부절못한다. 물론 종종 깨발랄한 도발을 감행했지만 그럼에도 유재석하면 안정된 진행의 대가였는데, 그러던 그가 단순 반복된 녹차잎 따기에 어쩔 줄 몰라하는 건 의외의 '포인트'다.

이경규가 그렇고 강호동이 그랬듯, 이제는 '대가’가 된 듯한 유명인이 그들의 빈틈을 허심탄회하게 드러내 보일 때 사람들은 그들의 또 다른 면모에 호감을 느낀다. 마찬가지다. 그간 똑 부러지게 진행을 잘하던 유재석이 녹차잎 따는 그 단순한 일의 반복에 어쩔 줄 몰라하며 녹차밭 고랑을 헤맬 때, 그리고 진행할 거리가 없어 무기력해 하고, 이효리의 도발적인 질문에 어쩔 줄 몰라하다 솔직한 자신의 가정사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때, 박제된 예능에서 유재석이란 사람이 끄집어 내어지는 듯한 감회를 느끼게 된다. 

2회는 그런 감회를 배가시킨다. 유재석보다 더 말도 잘하고, 말하기를 좋아하고, 일도 잘하고, 심지어 잘생기기까지 한, 한때 <무한도전>을 함께했던 차승원의 등장은 그간 늘 '제리' 역할을 맡아 했던 유재석을 졸지에 '톰'의 위치로 격하시켜 버리며 뜻밖의 웃음을 제공한다. 

이거야말로 무모한 도전 

tvN 예능 프로그램 <일로 만난 사이>

알고 보니 일도 잘 못하는 유재석, 더위에 쩔쩔매며 어쩔 줄 몰라하는 유재석을 보다 보니 문득 차승원과 함께 그 말도 안 되는 연탄을 나르던 시절의 <무한도전>이 떠오른다. 아니, 그 시절의 <무모한 도전>말이다. ‘도대체 저게 무슨 예능이야’라고 했던 초창기 <무도> 시절 유재석은 동료들과 함께, 차승원과 그 고구마밭에서 하루 종일 진땀을 흘리며 쩔쩔매듯 그렇게 예능을 했었다. 심지어 주인장의 대놓은 편파적 잔소리는 안 그래도 일 못하는 유재석의 면모를 한층 살려내며 예능의 대가가 아닌 유재석의 '사람 냄새'를 느끼게 한다. 

거기에 더한 건 진짜 말 그대로 허겁지겁 배를 채우듯 연방 ‘맛있다’를 되풀이하며 먹은 점심 후 정자에서 차승원과 나눈 '나이듦'의 이야기이다. 늘 예능에서 누군가의 이야기를 끄집어내기 위해 애쓰던 유재석이 이제 오십 줄에 든 차승원과 함께 오십이 되어가는 시절의 자기 속내를 터놓는 장면이야말로 <일로 만난 사이>의 백미였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 그저 세월을 견뎌 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변를 돌아보고, 자신을 좀 더 편하게 바라보고 인정하게 되는 것. 그래서 자신과 주변 사람에게 너그러워질 수 있는 것이라는 그 '평범한' 진리'를 이제 오십 줄에 들어선 두 '베테랑'을 통해 전해 듣는 울림은 또 다르다. ‘천하의 유재석’이 이제야, 자신이 다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우선 내려놓고 편해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는 진솔한 고백은 '나 아니면 안 돼'라는 이 시끄러운 시대에 그래서 더 담백하게 오랜 울림으로 전해진다. 

tvN 예능 프로그램 <일로 만난 사이>

<일로 만난 사이>는 묘하다. 일하느라 유재석이 잘하는 '토크'할 사이가 없다. 그런데, 일하다 중간에 먹는 새참이 꿀맛이듯, 일하다 중간에 서로 잠깐씩 나누는 대화의 깊이와 무르익음이 장난이 아니다. 아마도 스튜디오에서 이효리와 차승원을 초대해 토크를 했다면 이런 대화가 등장했을까. 나이듦과 내려놓음에 대한 이야기는 녹차밭과 고구마밭이어야 가능한 것이다. 거기에 유기농 녹차와 바다를 품은 고구마를 생산해내는 진득한 땀의 역사는 어떻고. 

삶의 현장에서 땀을 흘리고 난 뒤에 먹는, 밋밋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짜릿한 찬물 한 바가지처럼, 일 속에서 드러난 자연스러운 유재석과 게스트들의 진솔한 모습과 대화는 범람하는 예능 속의 또 다른 '해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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