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언론이 다루는 것 중 가장 폭넓은 해석이 허용되는 것은 현실정치에 관한 문제이다. 현실정치는 어떤 세력이나 인물의 행위 또는 발언에 대한 해석이 그 자신을 이루는 요소라는 점을 전제한다. 정치에 대한 해석 또한 정치의 일부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적 사건을 사람들이 어떻게 해석하는지를 분석하는 것은 우리 정치의 본질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열쇠가 된다.

그런데 최근 나오는 뉴스를 보면 우리 정치는 어떤 음모와 기만으로만 점철된 말장난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진다. 주요 행위자들이 정치적 사건을 다루면서 배후의 숨겨진 이해득실의 논리를 재구성하거나 개인적 태도의 문제로 설명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에 대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주장을 보자. 유시민 이사장에 의하면 조국 후보자에 의혹을 제기하는 언론 보도가 쏟아지고 있는 것은 “조국만큼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없었던 소위 명문대학 출신의 많은 기자들이 분기탱천”한 결과이다. 기자 개개인의 질투심이 보도에 반영되고 있다는 것인데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JTBC 보도 화면 캡처

일부 언론이 과장된 억지스러운 보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러한 보도에 의도가 있다면 그것은 조국 후보자에 대한 기자 개인의 질투라고 보는 것보다는 정치적 맥락이 작용하고 있다고 보는 게 더 합리적일 것 같다.

이를테면 이런 얘기다. 첫째로 조국 후보자는 이 정권의 개혁성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이 정권에 반감을 갖고 있는 보수언론 입장에선 조국 후보자를 공격하는 것으로 정권에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을 수 있다. 둘째로 조국 후보자는 여당의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되고 있다. 이 점에서 보수정치세력과 유착하고 있는 보수언론 입장에선 지금부터 미래를 준비 하지 않을 수 없다. 셋째로 보수언론이 검찰 기득권의 대리인이 돼왔다는 점 또한 빼놓고 말할 수 없다. 기자 개인의 질투나 열등감보다는 이런 요인들이 조국 후보자에 대한 악의적 보도의 동력이 되고 있다고 보는 게 옳지 않겠는가?

여기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조국 후보자에 대한 의혹 제기 보도가 모두 무리하거나 과장된 것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에 대해서는 조국 후보자 본인도 불법이 아니라는 말로 넘어가지는 않겠다면서 더 비판해달라는 얘기를 이미 한 바도 있다.

유시민 이사장의 태도가 정치적 문제를 개인의 감정과 같은 차원으로 설명해 정치적 맥락을 제거해버리는 대표적 사례라면, 다른 한편에는 오직 정파적 이익의 추구만이 정치의 전부인 양 말하는 사례가 자리잡고 있다. 선거법 개정안이 국회 정개특위를 통과한 상황을 조국 후보자 문제와 연관시키는 시각이 그렇다.

보수언론은 더불어민주당이 조국 후보자에 대해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정의당을 의식해 정개특위에서 급하게 선거법 개정안을 처리토록 했다는 식으로 보도하고 있다. 정의당에 정치적 이득을 안겨주는 선거법 개정안 처리에 동의해주는 대가로 선거제도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조국 후보자 임명에 대한 찬성 입장을 받아낸 것이라는 시각이다.

물론 현실정치에서 서로 다른 이슈에서 이득의 주고 받기가 정치 세력 간에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조국 후보자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적절한가에 대한 판단이 선거법 개정만큼 무거운 문제가 된 현실을 함께 봐야 한다. 조국 후보자 관련 의혹에 대한 상반된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국민 여론이 집중된 상황에서 정의당과 같은 정당이 선거법 개정안의 정개특위 통과 여부만을 근거로 인사에 대한 입장을 달리하기는 어렵다. 더군다나 집권 여당은 다른 야당들의 입장이 어떻든 조국 후보자의 법무부 장관 임명 강행 가능성까지 내비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것을 정치적 대의를 논해야 할 문제를 이해득실의 교환에 불과한 것으로 둔갑시키는 사례라고 한다면, 또 다른 쪽에서 발견되는 것은 서로 같지 않은 것들 사이의 조그만 공통점을 찾아내 ‘내로남불’이라는 개인의 태도 문제로 다루도록 하는 탈정치적 시도이다. 조국 후보자의 딸의 입시 관련 의혹을 다루면서 보수세력이 최순실 씨나 정유라 씨의 사례를 집요하게 언급하는 게 대표적이다.

조선일보 30일자 3면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9일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2심 판결을 모두 다시 재판하라는 취지로 파기환송을 결정했다. 재판부는 핵심 쟁점이었던 ‘말 3마리’의 소유권 문제와 삼성의 경영권 승계라는 현안의 실제 여부 모두 피고들에게 불리한 판단을 내렸다.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를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에게 청탁을 했고 그 대가로 최순실 씨와 그 딸인 정유라 씨에게 여러 형태로 뇌물을 전달했는데, 이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의 ‘특수한 관계’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이 ‘특수한 관계’란 박근혜 전 대통령을 파면에 이르게 한 헌법 위반의 문제이다.

보수야당은 물론 최순실 씨까지 외치는 것은 정유라 씨는 메달이라도 딴 것에 비해 조국 후보자의 딸은 아무런 노력도 없이 명문대 입학을 얻어냈으니 더 나쁘다는 것이다. 이런 항변에는 현 집권세력이 자신들도 떳떳하지 않으면서 불순한 의도로 전 정권을 음해해 권력을 빼앗아 갔다는 뉘앙스까지 느껴진다. 이는 ‘어차피 정치는 똥 묻은 개와 똥 묻은 개의 싸움’이라는 전형적 구도이다.

하지만 대의민주주의의 훼손과 전형적인 정경유착의 결과를 ‘스펙 품앗이’나 부산의료원장 임명 의혹과 같은 층위에 놓고 비교하는 게 온당한지 의문이다. 정유라 씨가 메달을 땄다는 마장마술의 경우 선수보다 말이 중요해 삼성의 ‘말 3마리’가 아니었으면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웠을 거라는 점도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이렇게 온갖 음모와 기만, 질투와 배신 등으로 점철된 ‘더러운 세상’을 묘사하는 언론이 어떤 진정성을 평가해주는 대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 빛나는, 유일한 진정성의 주인공은 이재용 부회장이다.

보수언론이나 경제지가 묘사하는 이재용 부회장의 모습에는 속세의 난잡한 개념들이 끼어들 틈이 없다. 한국 경제가 내외로 어려운 이 시기에 삼성과 이재용 부회장이 모처럼 뭔가 역할을 해야 하는데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이게 어려워졌다는 안타까움이 기사 곳곳에 묻어 나온다. 이들이 묘사하는 이재용 부회장은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당하는 예수를 떠올리게 할 정도이다.

비단 보수세력만의 문제일까? 이재용 부회장이 위기에 처한 우리 경제를 구한다는 신화 앞에서는 모두가 한마음이 되는 광경을 종종 본다. 과거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며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을 것을 요구하는 정치적 압력을 단칼에 물리쳤다. 이것과 같은 이야기가 오늘도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정치가 처한 문제의 본질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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