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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없는 이명박정부의 실용주의[최성진의 정치현장] 시사주간지 '한겨레21' 기자
최성진 한겨레21 기자 | 승인 2008.01.30 09:05

이명박 정부가 표방하는 국정철학은 실용주의다. 이명박 정부의 실용주의라는 게 뭔지 아직 이 당선자 쪽에서 내놓은 정확한 풀이는 없다. 당연히 이명박 정부의 실용주의가 어떤 맥락 속에서 나온 것인지, 실용주의를 어떤 분야에 어떻게 적용하겠다는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설명도 지금까지는 없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내부에 마련된 국정철학TF에서 이명박 정부의 국정철학을 가다듬고 있다고 하니, 모든 기자들이 ‘이명박식 실용주의’라는 표현을 안심하고 활용할 수 있는 그럴듯하고 실용적인 가이드라인이 제시됐으면 좋겠다.

굳이 이런 바람을 나타내는 이유는 이명박 당선자 쪽과 일부 언론이 보이는 심각한 ‘실용’의 남용 때문이다. ‘실용’이란 표현 자체는 참으로 실용적이어서 아무데나 갖다붙혀도 말이 된다. 그렇다고 아무데나 함부로 ‘실용’이란 수식어를 마구 달다보면 종종 엉뚱한 결과를 빚기도 하는데 일종의 실용 중독 증상으로도 보인다.

   
 
  ▲ 중앙일보 1월 29일자 사설  
 
단적인 예가 있다. 1월29일자 중앙일보 사설이다. 제목이 ‘한승수 실용총리가 성공하려면’이다. 한승수 총리 후보자 지명이 아예 이명박 정부의 실용인사를 상징하고 있다고 못박고 있다. 그런데 한 후보자 지명이 어떤 측면에서 ‘실용인사’인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억지로 근거를 찾자면 ‘한씨는 교수 국회의원 장관 대통령비서실장 주미대사 유엔총회 의장 등 나라 안팎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는 문장이다. 문제는 그렇게 다양한 경험을 쌓느라 올해 나이 73세가 됐다는 것이다. 굳이 나이만을 가지고 한 후보자 지명이 부적절했다고 말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만약 실용을 따지고 일할 능력을 따졌다면 의욕적으로 일할 수 있는 더 젊고 더 유능한 총리 후보를 지명했어야 옳다.

과거 전두환 정권 시절 국보위에 참여한 전력이 있는데다, ‘먹튀’의 대명사처럼 굳어진 다국적 투기자본 소버린의 사외이사로 재직했던 73세의 한승수 후보자를 내놓으면서, ‘이것이 실용인사’라고 하면, 속는다는 생각할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차라리 한 후보자의 지명 배경에 대해 ‘원만한 성품과 경륜, 그리고 이명박 정부와 코드가 통하는 외교통’이라는 점을 내세웠다면 훨씬 설득력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 ‘일할 능력’을 중시하다보니까, 이런저런 흠결과 73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한승수 후보만한 사람이 없었다고 하면, 총리 후보군에서 탈락한 나머지 후보자들은 대체 얼마나 ‘비실용’적인 사람들이었단 말인가.

오히려 이명박식 실용주의 인사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은 따로 있다. 고종완 RE멤버스 대표를 인수위 경제2분과 자문위원으로 임명했던 사실이다. 사실 부동산 시장에서는 고 대표를 부동산 가격 폭등의 ‘주범’ 가운데 한 명으로 지목하는 사람도 많다. 여기저기 다니면서 ‘어디어디가 가격이 오를 것이다’, 이런 식으로 투기 상담을 전문으로 해왔던 고 대표를 이른바 ‘부동산 5적’ 가운데 한 명으로 꼽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시장을 고 대표만큼 잘 아는 사람도 없다. 아무리 고 대표가 투기 상담을 전문적으로 해왔다고 해도 부동산 시장을 소상히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 인수위에 꼭 필요했다면 고 대표를 기용하는 것이 맞았을 것이다. 그리고 인수위는 그렇게 했다. 다만 결과가 좋지 않아서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고 대표의 기용은 분명 ‘실용인사’였다.

실용이라는 표현에 대해 이명박 당선자가 보이는 애착이나, 또 당선자와 코드가 맞는 일부 언론들이 가급적 ‘실용주의 프레임’으로 이 당선자의 용인술이나 통치 스타일을 해석하는 것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렇다고 여기저기 아무데나 갖다붙이면, 실용이란 단어가 가장 정치적 표현으로 오염되는 결과도 낳을 수 있다. 당연히 나처럼 의심많은 사람은 오히려 ‘실용’이란 표현을 쓰고 싶어도 주저하게 된다.

뭐, 이런 ‘이명박식 실용’이란 표현을 자주 쓰고 있는 이 당선자 쪽에서 조만간 국정철학TF를 통해 이명박 정부의 실용주의에 대한 좀더 구체적이고 실용적 정의를 제시해준다면 이런 불필요한 논쟁도 자연스럽게 소멸되겠지만.

최성진 한겨레21 기자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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