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30년 가까이 기자생활을 하며 재난방송을 해보기도, 지휘하기도 했지만 많은 부끄러운 기억이 있다. 우리나라 재난보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지나친 속보경쟁, 선정적 보도, 부실한 정보 제공 등으로 압축된다. 특히 속보경쟁에 있어 황당한 사례는 사망자 수를 놓고 속보경쟁을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정말 해야 할 정보제공은 허술하다"

MBC 기자 출신인 김성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일 노웅래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 KBS, 2‧18 안전문화재단 주최로 열린 '효과적인 재난 관리를 위한 언론의 역할' 토론회에서 이 같이 말했다.

김 의원의 증언은 재난상황을 마주하는 국내 방송사들에게서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지난 4월 강원 산불 발생 당시 국가 재난주관방송사 KBS는 시점, 형식, 내용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재난보도에 실패했다는 사회적 비판에 직면했다. 특보 체제 전환은 뒤늦었고, 현지 피해자들을 위한 정보없이 산불 '그림'만을 나열했고, 강릉에 있던 기자가 고성에 있다고 말하는가 하면, 재난 취약계층을 위한 수어방송과 외국어방송은 없었다.

대구 지하철 화재참사와 보도 자체가 '재난'이었다는 비판이 쏟아졌던 세월호 참사를 겪은 이후 언론계 자정의 목소리로 '재난보도준칙'이 만들어졌음에도 속보·특보 중심의 재난방송 관행이 바뀌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토론회 발제자로 나선 박성우 우송대 교수는 그 배경에 미디어권력 간의 상호이익과 침묵이 있다고 했다.

20일 노웅래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 KBS, 2‧18 안전문화재단 주최로 열린 '효과적인 재난 관리를 위한 언론의 역할' 토론회. (왼쪽부터) 정복덕 방송통신위원회 재난방송관리팀장, 김성한 KBS 재난방송센터 팀장, 김현정 서원대 교수, 김태일 2·18 안전문화재단 이사장, 박성우 우성대 교수, 노진철 경북대 교수, 김여라 국회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 (사진=미디어스)

박 교수는 재난 상황 발생 시 방송사가 "내심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저널리즘 관점에서 방송이 신문에 비해 역사가 길지 않음에도 우위를 점하게 된 계기는 재난보도, 위험보도 부분이다. 재난·위험상황에서 방송으로 하여금 국민들로부터 어떤 주의, 집중, 관심, 영향력, 권위 등을 한꺼번에 획득하게 해주는 것"이라며 "방송 입장에서 재난보도의 핵심은 결국 사건 중심, 그중에서도 '매개된' 사건의 중심에 대한 연결을 보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재난이나 위험상황 발생 시 라이브로 내보내는 뉴스속보·특보는 뉴스미디어, 특히 공영방송에게는 매우 중요한 콘텐츠이자 권위를 획득·유지하게 하는 콘텐츠로써 기능하는데, 이를 가능하게 하는 방송의 힘은 '사실보도'가 아니라 현장, 사건의 중심에 언제든지 연결할 수 있는 '연결성' 그 자체라는 설명이다.

'연결성'의 힘이 우선시 될 때 발생하는 부작용은 하락하는 보도의 질이다. 박 교수는 "생방송 특보 제작환경에서 언제든지 현장을 연결할 수 있는 힘은 퀄리티 문제가 뒤로 밀려나도 무방하게 한다"고 했다. 재난 피해자에게 필수적인 재난 정보가 없어도, 일반보도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오보가 잦아도 속보·특보라는 이름하에 재난방송이 가능한 이유는 '연결성'의 힘에 주요 보도가치들이 후순위로 밀려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언론의 출입처 시스템 관행이 덧붙으면 재난보도에 있어 피해자 중심의 사고와 팩트체크의 영역이 더욱 축소된다. 박 교수는 "출입처 시스템의 핵심은 출입처와 기자 간 '원만한 관계'이다. 사건발생 이전에 구성이 완비된다"며 "재난이 발생하면 이전에 구축된 관계가 현실에서, 재난위험 상황에서 부드럽게 작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구축된다.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출입처가 난감해 할 무엇은 등장할 가능성이 낮다"고 비판했다.

'연결'과 '그림'이 중요해 진 재난현장에서 영상기술의 발전 역시 재난의 탈맥락화를 돕는다. 박 교수는 "후반작업, 편집, 그래픽, 사운드 등은 정보를 전달함에 있어 분명 긍정적 역할을 하겠지만, 그럼에도 재난 생중계 환경에서는 본질의 왜곡, 탈맥락화를 촉발할 수 있는 위험이 상존한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세월호 참사 당시 모 언론사가 박근혜 대통령의 눈물을 '줌인'한 사례를 예로 들며 "이런 것들이 본질을 어떻게 탈맥락화시켰는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밖에도 불확실하지만 넘쳐나는 정보들에 둘러싸인 현실, 소위 '전문가' 그룹에 대한 의존도 상승에 따른 저널리즘의 실종 등이 속보·특보 관행을 공고히 하는 '네트워크'의 한 요소로 소개됐다. 박 교수는 해당 네트워크를 깨고, 재난방송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적극적인 연대와 협업을 통한 수준 높은 솔루션 저널리즘을 지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난보도가 뉴스미디어, 특히 공영방송의 독점적 권위 유지와 강화를 위한 관행적 제작양식을 넘어 지역, 시민, 단체, 현장, 독립매체, 심지어 경쟁사 등과의 적극적인 연대와 협업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4월 강원도 산불 발생 당시 국가 재난주관방송사 KBS는 시점, 형식, 내용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재난보도에 실패했다는 사회적 비판에 직면했다. 재난상황에 필요한 정보없이 '그림'만 보여줬다는 비판적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가장 기본적인 협업에 해당하는 정부와 방송사 간 협력 부분에서도 삐걱거리는 모양새다. 이어진 토론에서는 지난 강원 산불 이후 정부부처와 KBS 간 구축된 재난방송 관련 TF 논의가 정부의 보수적 태도로 순탄치만은 않다는 KBS측 토로가 나와 박 교수가 제언한 '사회적 공조와 협업'의 필요성이 역설적으로 부각됐다.

정복덕 방송통신위원회 재난방송관리팀장은 강원 산불을 계기로 20개 정부부처와 KBS가 참여하는 TF팀을 구성해 재난방송 요청 기구를 행정안전부로 일원화하고, 방송사 재허가·재승인 심사 시 재난방송 충실성 평가와 민관협업시스템 강화 등의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김성한 KBS 재난방송센터 팀장은 지난 기간 재난 피해자와 정보가 보이지 않았던 KBS의 재난방송을 비판했지만, 현재 정부와 진행 중인 개선대책 논의와 추진 과정에서 재난 피해자들에게 필요한 정보 제공이 이뤄지기 어려운 수준의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김 팀장은 "재난은 행정부에도 재난이다. 재난 상황이 터지면 행정부는 수세적으로 변한다. 재난이 커질수록 언론사에 대해서는 비협조적 태도를 보인다"면서 "재난주관방송사가 필요한 정보가 있어도 왜 정부가 비협조적으로 나오는가에 대해 묻고 있고, 논의가 녹록치 않다. 재난 초기 정보에 대한 논의는 어느 정도 진척이 있지만 재난관리를 위해 실제 현장에 도움이 되는 2차, 3차 정보에 대한 대안이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김 팀장은 "시간이 지나면서 정부의 재난대응능력이 향상되고, 언론에 대한 비우호적 태도도 바뀌면서 방송사와 정부 간 협력관계가 나올 것이지만, 재난에 대한 우리 사회 인지감수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KBS가 역할 수행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나오는 상황"이라며 "저희는 지체할 수 없다. 정부와 언론, 상호간의 신뢰회복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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