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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의 군국주의만 문제인 것은 아니다일본의 재무장 논리에서 보는 통치의 보편성
김민하 / 저술가 | 승인 2019.08.14 09:04

[미디어스] 한국이 일본을 사실상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맞불 조치’를 실시하는 등 양국 간의 경제적 갈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대통령과 정부 여당의 대일메시지는 상대적으로 ‘톤다운’된 분위기지만, 역사 문제를 근거로 한 일본의 경제보복을 ‘경제침략’으로 규정하고 목소리를 높이는 일도 여전히 이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조금 냉정하게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 이 모든 문제의 원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일본의 보통국가화와 재무장 논리이다. 그렇다면 이를 뒷받침하는 에너지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대다수 국내 언론은 일본 사회의 특수성을 근거로 이를 설명한다. 전쟁 이후 체제에서 천황제를 유지하는데 성공했고, 전범세력 청산에 실패했으며, 이렇게 살아남은 극우세력이 국가 신토 등과 연계해 세력을 키워 아베 신조 총리 대에 이르러 비로소 통치를 장악하는 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일본 극우세력의 총본산인 ‘일본회의’에 주목하는 시각이 대표적이다. 얼마 전 개봉한 일본계 미국인 미키 데자키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주전장>도 이런 관점을 취하고 있다. 

이런 주장이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는 일본의 ‘리버럴’ 지식인들이 흔히 주장하는 바이기도 하다. <주전장>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모욕하는 일본 극우세력의 비상식과 퇴행적 인식을 고발한다. ‘일본회의’의 주요 인사가 위안부 피해 날조설을 말하면서 이와 대치되는 견해를 가진 학자들의 책은 읽어보지도 않았다고 말하는 장면은 ‘백미’다. 그러나 이러한 ‘특수성’에 기댄 논의에만 주목하면 ‘보편성’의 측면에서 이 문제를 바라볼 기회를 놓치게 될 수 있다. 단적으로 말해 일본회의의 특별고문이라는 아베 신조 총리와 아소 다로 부총리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아베 신조 정권의 시대에는 극우세력이 주도하는 집권 자민당이 평화헌법 개정을 주장하고 있고 다수 야당들은 이에 반대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런데 야당의 논리는 정확하게 말해 ‘아베 신조 총리가 추진하는, 국민이 동의하지 않는 개헌에 반대한다’는 것에 가깝다. 야권의 정치인도 개헌이나 자위대의 해외 파병 자체에 대한 정책적 견해에 대해서는 불명확하게 답변하는 경우가 많다. 사민당이나 공산당 등의 진보적 색채가 뚜렷한 군소정당 소속 정치인들만이 재무장에 대한 명시적 반대를 표명하는 게 현실이다. 이들 진보정당들의 입장도 전성기에 비하자면 다소 후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일의 양심적 지식인들은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언급하면서 양국 관계의 개선을 말한다. 자민당 내 파벌 구도를 기준으로 오부치 게이조 전 총리의 유지를 잇는 그룹은 얼마 전 한국 의원들과도 회동했던 누카가 후쿠시로 일한의원연맹 회장이 파벌 영수를 맡은 바도 있는 헤이세이연구회이다. 이렇게 본다면 아베 신조 총리의 ‘극우 파벌’과는 확실히 구분이 되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보통국가화나 재무장에 대한 이들의 견해는 현재의 주류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베 신조 총리 등이 자민당 내 논의를 주도하기 전부터 이미 그랬다. 이들이 마지막으로 배출한 총리는 지난 2006년 사망한 하시모토 류타로이다. 하시모토 류타로 전 총리는 ‘다함께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 회장을 역임했고 실제 총리로 재직하던 1996년 7월 개인 자격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아베 신조 총리는 물론 그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와 부친인 아베 신타로가 속했던 파벌과 역사적으로 경쟁해 온 또 하나의 자민당 내 파벌은 고치회이다. 현재 고치회를 이끄는 인물은 기시다 후미오 자민당 정조회장이다. 우리에게는 2015년 외무대신으로 한일 위안부 합의를 발표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그룹의 경우 개헌이나 재무장에 상대적으로 소극적 태도를 보이지만 현 정권에 협력하고 있는 입장에서 아베 신조 총리 등에 각을 세우지는 못하는 분위기다.

오히라 마사요시는 고치회가 배출한 총리 중 한 명이다. 1962년 이케다 하야토 내각에서 외무대신을 맡아 김종필 당시 중앙정보부장과 단독 회담을 통해 한일협정의 기본 내용을 협의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오히라 마사요시가 총리 재직 시절 나름 좋은 뜻으로 제기한 국제협조주의는 적극적 평화주의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가능케하는 헌법 해석 변경 등 논리의 근간이 됐다. 1990년대 중반 <일본개조계획>이란 저서로 이를 공격적으로 제기해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은 오자와 이치로는 현재 야권의 근간인 민주당 정권 개국 공신의 한 명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3일 야마구치(山口)현 나가토(長門)에 있는 선친 묘소를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늘날 개헌 불가를 외치는 대표적 인물 중에는 민주당 정권을 이끌었던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도 있다.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는 한국을 방문해 여러 차례 역사 문제에 대해 사과하고 전쟁에 대한 일본의 ‘무한책임’ 등을 인정하는 발언을 내놓은 바 있다. 일본 정치인답지 않은(?) ‘개념 행보’는 이런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런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도 헌법 9조 개정 자체에 대해서는 찬성 입장을 갖고 있다.

일본 정치인들이 모두 극우파라는 주장을 하려는 게 아니다. 일본의 주요 정치인들이 보통국가화와 재무장을 지지하는 것에는 군국주의에 대한 열망 외에도 크게 두 가지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첫째는 지정학적 이해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미국의 의중이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한국과 일본이 역사 문제로 갈등하지 않고 동맹관계를 유지하길 바라면서 동시에 일본의 재무장을 통한 동아시아 정세 개입을 모색해왔다. 일본이 미국의 우방을 자처하는 한 개헌을 통한 재무장은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사실상 피해갈 수 없는 길이다.

둘째는 실제 국익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군대를 활용한 통치가 불가피하다는 게 주류 정치의 논리라는 걸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본 정치가 재무장을 열망하는 것은 제국주의의 부활과 주변국 침략의 야욕에 따른 것이라기 보다는 미국이 주도하는 전장에 군대를 파견해 이의 반대급부로 국익을 추구할 수 있는 길을 열겠다는 것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즉, 이는 ‘보편적 문제’이다. 과거 사회당이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를 배출하면서 ‘비무장중립’ 원칙을 포기한 것은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주류 정치가 이 길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은 ‘개혁’의 깃발을 들고 집권한 참여정부의 ‘이라크 파병’이나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현안인 ‘호르무즈 해협 파병’ 문제에서도 발견된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호르무즈 해협 파병 문제에 대해 “우리나라의 경제적 이익이 첨예하게 걸린 문제”라며 “이 지역의 안정을 위해 우리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정부 차원에서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따라서 우리가 이번 사태를 통해 마주해야 할 근본적 질문은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일본이 경제보복을 그만두고 과거사에 대해 사죄하며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고 이에 따른 경제적 배보상 등의 문제에서 한국 정부와 합의를 이룬다면, 이 합의에 대한 국민적 반발 여부와는 별개로 우리는 일본의 보통국가화와 재무장을 용인할 수 있는가? 만일 그럼에도 용인할 수 없다면 우리가 제기해야 할 정치의 내용은 어떤 것인가?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정치의 가능성은 일본의 아이치 트리엔날레의 <표현의 부자유전-그 이후>를 둘러싼 논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일본은 스스로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라고 말하자만 엄연한 금기가 있다는 게 이 전시의 핵심 내용일 것이다. 그런데 이 전시에서 그 ‘금기’에는 과거 군국주의를 촉발한 ‘천황제’ 문제와 ‘평화의 소녀상’으로 대표되는 식민지배와 전쟁범죄 등 역사문제에 관한 것이 포함된다. 즉,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국가권력의 작용이 국민을 전쟁으로 내몰았던 과거의 역사적 악행과 동일한 지반 위에 서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전시인 것이다.

이런 정치적 행위를 다름 아닌 일본인들이 감행하고 있다는 것에서 우리는 놀라움을 넘어선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우리가 물어야 할 근본적 질문에는 다음과 같은 항을 추가할 필요가 있다. 현대 일본에 필요한 것이 보편적 차원에서 전쟁의 비극을 되풀이할 수 있는 일체의 행위를 중단하는 것이라면, 우리 역시 이런 원칙을 스스로에게도 기꺼이 적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아덴만 해역에서 활동하는 청해부대 30진 강감찬함이 임무 교대를 위해 출항했다는 소식을 들으며 한 생각이다.

김민하 / 저술가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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