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덥다. 어김없이 올해도, 작년보다는 낫다지만 올 여름도 '폭염' 문자를 피할 수 없다. 초등학교 아이들이 엄마와 함께 시원한 카페에 가서 책도 보고 숙제하는 계절로 여름을 기억하게 되는 시절. 땡볕을 피해 얼른 시원한 에어컨이 있는 곳으로 피신하기 위해 종종걸음을 치게 된다. 마당의 평상, 나무 밑 그늘, 살랑살랑 부채바람, 그리고 천천히 돌아가는 선풍기는 그저 옛날의 추억일 뿐, 에어컨이 '필수'가 되어가는 시절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젠 당연하다 여기는 이 에어컨 등이 뿜어내는 온실가스가 그 누군가 삶의 기반을 무너뜨린다면? 지난 7월 25일 방영한 EBS 1TV <다큐 시선>은 바로 우리를 습격하고 있는 폭염, 그 공평한 햇볕 속에 숨겨진 '불평등'을 주목한다.

2018년 인도에서는 심한 가뭄으로 한 농부의 아내가 목숨을 끊었다. 이 여인만이 아니다. 기후 변화가 불러온 혹서기로 인해 5만 9천여 명이 죽어갔다. 하층민들은 동료들의 유골을 앞세우고 정부의 대책을 요구하며 시위에 나섰다. <다큐 시선>이 주목한 건 바로 오늘날 지구가 봉착하고 있는 기후변화가 지구에, 그중에서도 사회적 취약계층의 삶에 '재앙'을 가져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문제는 인도의 하층민은 동료의 유골을 들고 시위라도 나서지만, 대다수 피해자들이 그 피해를 피해로 보고 있지 않아 더 큰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폭염을 피해 이사 가는 멍게양식장

경남 통영, 배 후미에 시뻘건 무언가를 매단 배가 바다를 가로지르고 있다. 사람들이 놀러가기 좋은 곳을 넘어,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곳. 우리나라 수산업 1번지가 바로 통영이다. 배가 매달고 가는 건 양식하던 멍게, 이곳 가조도에서부터 25km 떨어진 비교적 해수온이 낮은 한산도로 멍게를 옮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여름철 폭염이 거듭되며 바다의 수온이 올라가고, 그를 견디지 못해 재작년에 이어 작년에 70%의 멍게가 폐사하자 특단의 조치로 양식장이 ‘이사’를 하게 된 것.

갈수록 양식하기가 어렵다는 25년 경력의 이종만 씨는 강원도까지 가야 하나 고민을 하는 중이다. 우리나라 해역 표층 수온이 지난 50년간 1.1℃ 상승했다. 전 세계 평균 상승 온도보다 약 2.5배 빠른 속도이다. 그리고 이렇게 급격하게 변하는 고수온으로 인한 수산업 종사자들의 피해가 지난 4년 사이 10배나 늘어났다.

양식만 힘든 게 아니다. 바다 속 생태계도 변했다. 해양 생물들의 생태주기가 달라져 기존에 살아왔던 해저부착 생물들이 줄어들고 고기의 이동도 많아졌다. 예전에 많던 우뭇가사리 대신 따뜻한 곳에서 서식하던 다른 해양부착 생물들이 나타났다. 조기를 잡던 어부들은 이제 난류성 어종인 멸치를 잡는다. 물 반 멸치 반인 바다, 하지만 언제 또 무슨 변화가 생길지 몰라 어민들은 긴장과 불안을 늦출 수 없다.

바다만이 아니다. 가업으로 대를 이어 양계장을 운용하는 박현배 씨는 여름이 시작되고 한 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땀구멍이 없어 더위에 취약한 닭, 2016년부터 폭염 피해가 속출하기 시작하여 작년에만 3000마리가 죽었다. 쿨링을 하고 대형 선풍기를 돌려도 35도만 넘어가면 폐사가 속출한다. 이렇게 전국 양계장에서 2018년에만 620만 마리가 죽어갔다. 그나마 냉각 장치를 가동할 수 있는 기업형 양계장은 나은 편이다. 이런 조건을 갖추지 못한 영세 양계농은 폭염 앞에 무방비하게 피해를 입고 있다.

온실가스, 취약계층에 집중된 피해

EBS 1TV <다큐 시선> ‘1℃의 불평등: 폭염이란 이름의 재난’ 편

산업혁명 이후 화석연료를 활용한 비약적인 산업의 발전은 온실가스라는 괴물을 낳았다. 온실가스는 속성상 수백 년 동안 공기에 남아있다. 그 피해는 지구 전체에 광범위하지만 그중에서도 가난한 사람과 가난한 나라, 그중에서도 어업과 농업 등 자연과 직접 맞닿아 있는 1차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또한 햇볕을 피할 수 없는 야외 노동자, 에어컨 없이 생활해야 하는 극빈 계층, 온도감지 능력에 취약한 어르신들 역시 피해갈 수 없다. 하나의 태양은 온 세상을 고루 덥히지만 그 피해는 취약계층에 집중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특히 절기가 조금만 늦어져도 열매가 제대로 달리지 않는 등 여름철에 가장 일이 많은 농사 현장은 논, 밭, 비닐하우스로 그 자체가 곧 '사고 현장'이 되고 만다. 경북 상주의 어르신들, 작년 여름 그만 농작물이 타들어 가는 바람에 들깨 농사를 망쳤다며 수십 년 해오던 농사일이 점점 더 어렵다며 하소연을 하신다. 4월 가뭄, 7-8월의 폭염, 8월말 9월초의 폭우, 몇십년 해오던 농사일이라지만 피해갈 수 없는 환경의 변화 앞에 속수무책이다.

변화된 기후만이 아니다. 나이가 들면서 약해진 냉감센서는 이제 어르신들만 남은 농촌사회의 큰 복병이다. 지난여름 말라가는 고추밭을 보다 못해 물을 대다 쓰러진 82세 오정필 씨. 칠십년 농사를 지으며 병원 신세를 져본 적이 거의 없다는 어르신은 아내가 없었다면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거라며 고개를 젓는다.

2018년 온열 질환자수 4526명, 사망 48명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고령화된 농어촌 사회는 특히나 취약 지역이다. 오죽하면 보건소 직원들이 마을을 돌며 혈압과 당뇨를 체크하며 '낮에 혼자 다니시면 안 된다'고 당부하고, 독거노인들이 많은 마을에서 혹시나 모를 비상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혼자 다니지 않기'를 독려할까. 일하다 힘들면 나무그늘 밑에서 낮잠 한 숨 자며 더위를 피하는 건 이젠 과거가 된 상황이다. 7, 8월 혹서기에는 일하는 것 자체가 힘들어진 농촌, 누군가가 내뿜어댄 탄소에 농촌이 고스란히 직격탄을 맞았다.

바다가 비어간다

EBS 1TV <다큐 시선> ‘1℃의 불평등: 폭염이란 이름의 재난’ 편

직격탄은 바다라고 해서 피할 수 없다. 온실가스의 주범인 탄소는 바다에 녹아들어 해양을 산성화시킨다. 산성화된 바다에서 산호초는 백화되고, 갑각류와 패류는 껍질을 제대로 만들어 내지 못한 채 폐사해 간다. 해녀들의 곳간이 헐거워져가는 것이다. 한참 성게가 제철인 시절, 바다 속을 아무리 뒤져도 성게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곳간이 비는 건 물론, 점점 올라가는 수온 때문에 해녀들은 보호복인 잠수복을 입고 물질하기가 쉽지 않아 아예 벗고 하는 경우가 빈번해졌단다. 그만큼 위험에 무방비해지는 상황. 물질 30년이 되었다는 해녀는 이 생활 최대의 위기라며 한탄한다.

해녀들만이 아니다. 근해에서 고기를 잡던 10톤 미만의 어부들 역시 이제는 빈손으로 돌아오기가 십상이다. 통발 어업을 하는 지창정 씨, 매일 건저 십만 원씩 벌던 통발을 이젠 15일씩 놔둘 수밖에 없을 정도로 바다가 비어간다. 겨우 건져낸 딱게 등등 차비도 안 남아 팔 것이 없다. 이런 식이니 일 년에 천만 원 벌이도 쉽지 않다. 이삼천 씩 벌어 야무지게 살림을 꾸려가던 시절은 옛말이 됐다. 나이가 드니 이제 와서 일용직으로 나갈 수도 없고 노령연금을 받아 근근이 부부가 삶을 꾸려나가고 있다.

지창정 씨만의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전체 어민의 43.7%가 1천만 원 미만의 벌이를 하고 있는 현재의 어업 상황. 집집마다 배를 두고 고기잡이 나가던 시절은 추억이 되었다. 고령화에 파괴된 연안으로 인해 어선 어업을 포기하는 어부들이 속출하고 있다. 결국 고향을 떠나는 사람들, 지역사회가 공동화되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EBS 1TV <다큐 시선> ‘1℃의 불평등: 폭염이란 이름의 재난’ 편

기후변화는 사람들에게 몇십 년씩 살아오던 고향을 떠나도록 만든다. 30년 동안 사과농장에서 일하던 경북 문경 김법종 씨. 환경 변화와 함께 홍로 등의 품종이 더는 옛날과 같은 맛과 질을 담보할 수 없게 되자, 사과 농사를 짓기 좋은 조건의 강원도 양구로 삶의 터전을 옮겨야 했다. 일조량이 적당하고 태풍 등 기후재앙을 피해갈 만한 지리적 터전. 사과는 이제 무럭무럭 자라지만 부부는 34년 동안 살아오던 고향을 떠나온 우울증 등 후유증을 톡톡히 겪어야만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여기서 끝이 아니라고 경고한다. 1℃의 변화로 지금처럼 우리 농촌과 어촌의 생태계가 극심한 변화를 겪고, 그곳에 삶의 터전을 꾸려가는 사람들이 혼란과 고통을 겪고 있는 현재. 하지만, 과연 온난화로 인한 변화가 1℃에서 그칠까. 기후변화 정부 간 협의체(IPCC)는 21세기 말이 되면 지표면의 온도가 적게는 1.5℃에서 많게는 4℃까지 상승하리라 경고한다. 과연 그렇게 된다면 지금의 생태와 자연, 나아가 사회가 유지될 수 있을까?

EBS 1TV <다큐 시선> ‘1℃의 불평등: 폭염이란 이름의 재난’ 편

전체 지구보다 더 심각한 건 우리나라이다. 반생태적인 삶의 조건에서 대한민국은 세계 1위,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는 방식으로 전 지구 사람들이 살아간다면 지구가 3.5개가 더 필요하다. 아니 멀리 갈 것도 없다. 한반도 자체로만 봐도 8.5개의 한반도가 더 필요하다. 다큐는 오늘날 우리에게 닥친 온난화의 문제가 환경 이전에 삶의 문제임을 밝히고자 한다. 빨간불이 켜진 지는 오래, 내가 마구 튼 에어컨에 우리의 가장 취약한 이웃들이 신음하고 있다고 호소한다. 그들의 목을 조르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우리, 우리의 삶의 태도와 습관이다. 무너져가고 있는 농촌과 어촌, 그 일터의 불평등에 가해자는 다른 누가 아닌 바로 우리다.

하지만 에어컨을 끌 수도 없고, 온난화로 인한 폭염을 다시 온실가스에 의존하여 해결할 수 없는 화석연료 산업사회의 우리. 폭염이 그저 계절의 문제가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산업사회의 존재론에서 비롯된 것임을, 그리고 그 사회적 기원의 문제는 결국 기후로 인한 ‘불평등’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는 것을 <다큐 시선>은 명확하게 설득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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