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정 공주의 저주로 일곱 난쟁이가 되어버린 일곱 왕자에, 마법 구두를 신고 모습이 바뀐 공주라니! <백설공주>와 <빨간 구두> 등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던 동화 속 이야기들이 '변주' 되었다. 그 설정만으로도 궁금해지는 애니메이션 <레드슈즈>이다.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만 보면 디즈니인가 싶은 애니. 거기에 클로이 모레츠, 샘 클라플린 등이 목소리 연기를 했다는데 <라푼젤>, <겨울왕국> 등의 캐릭터를 만드는 데 참여한 김상진 디자이너와 이 이야기로 2010년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대전에서 대상을 받은 홍성호 감독이 힘을 모아 만든 토종 애니메이션이다.

신선한 이야기

영화 <레드슈즈> 스틸 이미지

스토리 공모대전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답게 이야기의 시작은 신선하다. 동화 속 캐릭터들이 모여 사는 동화의 섬, '페어리테일 아일랜드'. 그곳에 마법에 빠진 공주를 구하는 데 앞장선 일곱 왕자들이 있다. 마법의 멀린, 힘의 아더, 심지어 투명망토까지 패션니스타 잭, 후라이팬이 무기로 셰프 한스, 그리고 무엇이든 뚝딱뚝딱 천재 발명가 삼형제 피노, 노키, 키오. 어벤져스급 동화 속 캐릭터들이 일곱 명의 왕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힘을 합쳐 괴물에 대항하여 공주를 구해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공주는 젊고 아름다운 공주가 아니라 마귀 할멈 같은 요정? 이에 실망하자 요정은 그들을 그만 '일곱 명의 난쟁이'로 만들어 버린다. <개구리 왕자>의 이야기처럼 아름다운 공주의 입맞춤을 받아야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단다.

당연히 아름다운 공주님을 찾는 이들. 그런데 뜻밖에도 그들의 집에 아름다운 공주님이 나타났다. 바로 <백설공주>의 그 '스노우 화이트' 공주님, 그런데 난쟁이가 되어버린 왕자들처럼 공주님에게도 사연이 있다. <백설공주> 속 이야기처럼 왕국에 나타난 아름다운 마녀에게 혼이 나가버린 아버지, 그 아버지가 실종됐다. 왕국 사람들은 사라져버렸고 공주는 겨우 도망을 쳤다. 그런데 여기서 왕국을 빼앗긴 스노우 화이트 공주님은 <백설공주>에 나오는 세상에서 제일 예쁜 공주가 아니라 건강하고 튼튼한 공주라는 거.

영화 <레드슈즈> 스틸 이미지

‘세상에서 누가 젤 예쁘니’에 대답해 주던 거울은 건재하지만, 독이 든 빨간 사과는 이제 레드슈즈가 열린다. 아니 열려야 하는데, 그래서 그 마법 슈즈를 신고 마녀가 영생을 누려야 하는데 그게 영 시원찮다. 그런데 사라진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몰래 궁에 들어온 공주, 때마침 나무에서 열린 빨간 사과, 아니 레드슈즈. 공주는 독이든 사과를 먹고 정신을 잃는 대신 레드슈즈를 신고 늘씬하고 아름다운 여성으로 변신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을 공격하는 마녀를 피해 도망을 치다 도착한 곳이 바로 일곱 난쟁이, 아니 일곱 왕자들의 집.

아름다움을 묻다

<레드슈즈>의 주제의식은 선명하다.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과 진짜 아름다움에 대한 질문이다. 그리고 이걸 풀기 위해 우리가 알고 있는 동화 속 이야기들이 자유자재로 '변모'한다.

아름다운 공주인 줄 알고 마법에 걸린 요정을 구하려던 '자칭 아이돌급' 왕자들은 자신들이 구했던 공주가 공주가 아니라 요정이라는 데 실망한 순간 마법에 걸리고 만다. 그리고 다시 '아름다운 공주'를 찾아 헤매는데, 그들은 여전히 아이돌급이었던 자신들의 인기, 그 바탕이었던 잘생김, 힘셈, 멋짐의 자부심, 더 나아가 '자뻑'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며 자신들 앞에 나타난 아름다운 공주의 마음을 얻고자 고심한다.

영화 <레드슈즈> 스틸 이미지

반면, 성문을 밧줄 하나로 거뜬히 넘나들었던 튼튼하고 우람한 공주는 사과가 변신한 레드슈즈를 신고 아름다운 공주로 변신한 후, 자신의 '아름다움'이 자신을 보호하는 방패가 될 수 있음에 매료되어 간다. 난쟁이 집에 무전취식한 신세지만 일곱 왕자들은 그녀의 미모만으로 모든 걸 허용할 뿐만 아니라, 그녀가 아름다운 공주라 하자 서로 앞다투어 그녀의 마음을 얻으려 애쓴다. 아버지를 찾고자 들른 마을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그녀의 미모에 홀려 모든 걸 용인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렇게 새로운 아름다움에 빠져들수록 <빨간 구두>의 원작에서처럼 '레드슈즈'는 그녀의 발에서 벗겨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 보이는 아름다움은 정작 '위기'를 가져온다. 그녀가 자신의 영생이 걸린 '레드슈즈'를 가져갔다는 걸 알게 된 마녀가, 그리고 그 마녀의 부추김으로 아름다운 여인을 자신의 파티에 초대하고 싶은 에버리지 왕자가, 아니 무엇보다 그 아름다움에 천착하고 싶은 욕망이 공주에게, 그리고 어느덧 그녀가 지키고 싶은 사람에게 위기를 불러온다.

결국 영화는 보이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지킬 수 있는 용감함과 그 용감함을 담보해 낼 수 있는 건강함을, 무엇보다 그걸 스스로 선택해 내는 원작과는 다른 스노우 화이트 공주의 주체적이고 주도적인 캐릭터를 부각하고자 한다. 잘록한 허리, 높은 굽의 레드슈즈에 현혹되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자신은 물론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낼 수 있는 '의지'적 인간형으로서의 여성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우며 시대적 요구에 부응한다.

기발한 변주와 신선한 캐릭터에도 불구하고

영화 <레드슈즈> 스틸 이미지

그렇게 <레드슈즈>는 동화의 섬을 배경으로 우리가 익숙한 <백설공주>, <빨간 구두>, <개구리 왕자> 등의 이야기를 다양하게 변주하며 21세기형 동화의 가능성을 연다. 난쟁이가 되어버린 왕자들의 사랑 찾기와 독사과가 변모한 레드슈즈의 딜레마, 드러난 아름다움과 주체적인 건강함 사이의 선택 등의 주제의식은 '고전적 캐릭터'들을 통해 풍성한 상징으로 영화를 채운다.

하지만 기발한 변주와 신선한 캐릭터에도 불구하고, 정작 영화가 진행되면서 아쉬움이 드러난다. 무엇보다, 목숨을 걸고 괴물 용에 맞서 요정 공주를 구할 만큼 용감했던 일곱 왕자들이 스노우 화이트 공주의 사랑을 얻기 위해 보이는 모습은 너무 찌질하지 않은가. 심지어 그들이 마법사 멀린, 아더 왕, 잭과 콩나무의 잭, 한스와 그레텔의 한스 등에서 비롯된 캐릭터라는데, 보여지는 모습은 그저 철들지 않은 자뻑남들뿐이다. 아무리 동화의 나라니 다 가능하다 하지만 얼굴에 팩을 붙이고 나타나 미모 어쩌고 하는 잭 왕자에 이르면 한숨이 나온다.

주인공 왕자 캐릭터들만이 아니다. 공주를 파티에 초대하기 위해 병력까지 동원해 일곱 난쟁이의 집을 공격하는 에버리지 왕자의 모습은 어느 개그프로그램의 등장인물 같다. 자신을 찾아온 마녀의 한 마디에 넘어가 공주를 향해 무모한 전투를 벌이는 에버리지 왕자는 기발한 상상력과 잘 변주된 캐릭터들의 서사를 유치하게 만들어 버리고 만다. 심지어 마녀의 마법 한번에 나무 괴물로 변해버린 왕자와 신하들이라니.

영화 <레드슈즈> 스틸 이미지

여성 캐릭터의 건강함과 주체적 설정에 비해, 남성 캐릭터들의 단선적인 표현은 결국 영화 전체 구성을 엉성하게 만들고 만다.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와, 각자 자신들의 딜레마를 극복해가는 남자 주인공의 캐릭터는 갈등을 위한 갈등, 위기를 위한 위기를 겪어내며 결국은 역발상의 로코로 귀결된다. 그리고 두 사람의 자기극복 과정을 거친 사랑의 성취와 달리, 그 과정에서 야심만만하게 포진시켰던 일곱 왕자의 캐릭터들은 주인공 멀린을 제외하고는 소모적으로 마무리된다.

클로이 모레츠가 참여했다는 홍보가 무색하게 대부분의 상영관이 더빙판으로 배정된 배급에서도 보여지듯이, 아동용이라고 규정했기에 '쉽게' 가겠다는 의지의 발현이었을까. 디즈니의 유려한 애니메이션이 아이들은 물론 성인들을 매료시키며 많은 관객들을 불러모으고 있는 상황에서, 기발한 설정과 신선한 캐릭터로 잘 다듬어진 <레드슈즈>가 조금 더 진지하게 접근했다면 더 많은 성인 관객들의 입소문으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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