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 선수들이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를 구가하던 시절이 있었다. '농구대통령'으로 사랑받았던 허재를 비롯, 1993-94년 농구대잔치 당시 막강한 라이벌 구도를 형성한 연세대(문경은, 이상민, 우지원, 서장훈, 김훈)와 고려대(전희철, 김병철, 현주엽) 소속 선수들의 인기는 그야말로 하늘을 찌르는 듯했다. 평생 운동만 했던 서장훈이 방송 데뷔 이후 예능계를 평정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선수 시절 '국보급 센터'로 쌓아 올린 화려한 명성이 자리한다.

하지만 농구 선수들이 현재 아이돌 팬덤의 원조격인 오빠부대를 몰고 다니던 90년대 초와 달리, 농구 팬 아니고서는 프로리그에서 뛰는 농구 선수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들이 부쩍 줄어든 느낌이다. 서장훈과 함께 90년대 농구계를 평정했던 현주엽 창원LG 세이커스 감독이 KBS2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를 통해 소속 선수들은 물론 농구의 존재감을 알리기 위해 백방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긴 하지만, 농구보다 현주엽의 먹방과 예능감이 더 주목받는 것 같다.

농구 인기가 예전만 못한 현실. 때문에 최근 현역에서 은퇴한 국내 최장신 센터 하승진의 일침이 농구팬들의 가슴을 더욱 파고든다. 지난 21일,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한국 농구가 망해가는 이유'를 주제로 한국 농구의 현실에 대한 솔직한 심정을 토로한 하승진은 작심한 듯 비판적 조언을 이어나갔다.

하승진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하승진이 제시한 한국 농구가 망해가는 이유는 크게 4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권위적인 지도자, 강압적인 팀 분위기, 선수의 몸 상태를 고려하지 않는 농구계, 선수들의 부족한 팬서비스. 하승진 또한 우월한 신체조건에도 불구하고 그에 미치지 못하는 플레이로 농구팬들의 실망을 산 적도 있지만, 한국 선수 최초로 미국 NBA에 진출해 그나마 최근까지 코트에서 뛰었던 선수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이기 때문에 한국 농구계에 대한 쓴소리를 거침없이 이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너 올해 KBL에서 연봉 가장 많이 받는 선수가 누구인지 알아?" "몰라요"
"올해 챔프전 MVP 누구인지 알아?" "그것도 몰라요"
"어느 팀이 우승했는지 알아?" "그것도...몰라요."
"이게 우리나라 농구가 처한 정확한 현실이야."

하승진의 지적처럼 농구에 애정 있는 팬들 아니고서는 프로농구 우승팀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물론 최고의 국민스포츠로 각광 받는 야구 또한 그해 우승팀을 모르는 사람들도 많지만, 적어도 야구는 플레이오프, 한국시리즈 진행 내내 언론에 대서특필된다는 점에 있어서 그 무게감이 달라 보인다. 하지만 농구는 누가 챔프전에서 우승을 하든, 어느 선수가 최고의 활약을 보이든 간에, 농구에 관심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 정보를 쉽게 알기가 어렵다.

농구계를 향한 하승진의 쓴소리 발언을 접한 네티즌들은 농구뿐만 아니라 한국의 모든 스포츠에 해당하는 문제라고 깊은 공감을 표한다. 권위적인 지도자, 선수의 개성을 살리지 못하는 강압적인 팀 분위기, 선수들의 몸 상태를 고려하지 않는 경기 운용. 이것이 비단 농구계에만 국한되는 문제일까. 다만 한국 농구는 예전만큼 팬들의 성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기에 그 문제가 더 도드라져 보일 뿐이다.

하승진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왜 농구의 인기가 예전만 못한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하승진이 유튜브 초반에 지적한 것처럼 재미가 없기 때문은 아닐까. 과거엔 좋아하는 선수를 보기 위해 관객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든 적도 있었다. 그러나 허재, 서장훈, 현주엽, 김주성 등 범국민적인 유명세를 가진 선수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현재의 한국 농구에는 관객들이 스타를 보러 농구장을 찾지 않는다. 이상민, 문경은, 우지원, 전희철, 김승현의 전성기 시절처럼 오빠부대를 끌고 다닐 만한 팬덤도 없는 것이 현 한국 농구의 현주소이다.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탄생 된다는 스타도 등장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야 나올 수 있는 법. 하지만 현재의 한국 농구는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을 만한 스타가 나올 만한 여지가 없어 보인다. 일단 농구에 대한 흥미가 생기고 재미를 느껴야 선수들에 대한 관심도 생긴다. 지금의 한국 농구는 현역에서 오래 뛴 선수조차 재미없다고 할 정도인데 과연 사람들이 수많은 재밋거리를 뒤로 하고 농구를 보러 갈까.

도대체 어디부터 잘못된 걸까. 한국 농구의 현실에 대한 하승진의 진단이 모두 옳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농구계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하승진의 쓴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와 함께 농구 발전을 위한 방안을 고민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하승진의 농구계를 향한 따끔한 일침이 농구 발전의 초석의 되길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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