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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수출 규제 논란의 박정희-박근혜-양승태 세계관보수 언론, '한일청구권협정은 역사적 결단'…‘사법농단’→‘사법 자제’ 프레임 전환 시도
김민하 / 저술가 | 승인 2019.07.17 09:10

[미디어스] 일본의 수출 규제 논란을 보면서 “보수는 왜 이럴까?”란 의문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울 수 있다. 오로지 한국 정부를 헐뜯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모 공중파의 인기 언론 비평 예능 프로그램도 이 문제를 다뤘다고 한다. 그러나 보수세력을 ‘일본편’으로 규정하거나 ‘토착왜구’로 부르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인간은 못 돼도 괴물은 되지 말자는 식의 얘기가 아니다. 문제의 본질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수세력의 프레임을 설명하자면 이런 식이다. 첫째,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 판결은 편향돼 있다. 둘째, 문재인 정권이 사태 해결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아 경제적 위기가 닥치게 됐다. 셋째, 과거 참여정부도 청구권 자금에 강제징용 피해에 대한 배상 성격이 포함돼 있다는 판단을 내린 바 있음에도 문재인 정권이 지금과 같은 입장을 유지하는 것은 정치적 이유 때문이다.

이런 프레임이 전제하는 것은 무엇일까? 여기서는 세 사람의 이름을 말해야 한다. 첫 번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보수세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한일청구권협정을 통해 받아낸 자금을 경제발전의 마중물로 쓴 것은 역사적 결단이며 선견지명이었다고 주장한다. 두 번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직접 “개망신이 안 되도록 하라”며 강제징용 피해 관련 재판에 개입을 시도한 바 있다. 세 번째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판 개입 시도를 사법부 내에서 관철시킨 ‘사법농단’의 장본인으로서 재판을 받고 있다. 보수세력의 시도는 이들의 행위가 정당하다는 세계관으로부터 도출된 결론이다.

최근 보수언론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단어는 ‘사법 자제’이다. 사법부의 판결이 외교적 파장을 불러 일으키는 일이 없도록 알아서 자제하는 전통이 있지만 강제징용 판결 문제에 있어서는 그게 깨졌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17일 지면에 실은 칼럼에서 “일하는 과정에서 일탈은 있었으나 징용 판결에 대한 박 정권의 관여 역시 본질적으로 행정(2005년 결정)과 사법(2012년 대법원 판결)의 모순을 없애는 작업이었다”고 썼다. 이 역시 ‘사법농단’ 프레임으로부터 이전 정권의 주요 인물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움직임으로 볼 수 있는 주장이다.

강제징용 피해와 손해배상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은 보수언론의 묘사처럼 우격다짐의 논리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대법원은 한일청구권협정이 식민지배의 배상 성격이 아닌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제4조에 따른 양국 간 채권 채무 관계를 해소하기 위한 차원이었다는 점에서 일본의 불법적 식민지배로 인한 피해는 청구권협정에서 다룰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확인했다. 또 대법원은 일본이 당시 지급한 자금의 성격이 경제적 협력 차원으로 규정돼 있다는 점에서 구체적인 어떤 권리나 피해 구제와 법적 연관관계가 있다고 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한 마디로 강제징용 피해는 일본의 불법적 식민지배로 인한 것인데, 청구권 협정에는 일본의 식민지배가 불법이라는 전제가 없기 때문에 강제징용 피해에 대한 배상 문제에 적용된다고 볼 수도 없다는 것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연합뉴스)

앞서 대법원 판단의 두 가지 근거는 일본 정부도 여러 차례 인정한 사실이다. 일본 정부는 1965년부터 한일청구권협정은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 성격이 아니며 한국에 제공한 무상 3억달러와 유상 2억달러의 자금 역시 청구권협정 제2조가 규정한 권리문제의 해결과 법적대가 관계가 아니라는 점을 수 차례 다양한 기회를 통해 확인했다.

또 일본 정부는 청구권협정으로 소멸한 것은 외교보호권이고 피해에 대한 개인의 청구권은 소멸하지 않았다는 사실 역시 의회 등의 자리에서 반복 확인한 바 있다. 한국 대법원은 앞서의 논리로 외교보호권도 역시 포기되지 않았다고 봤고, 외교보호권이 소멸하였더라도 개인청구권은 인정된다는 점에서 원고 승소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2005년 참여정부 당시 민관합동위의 결론 역시 징용 자체의 불법성에 따른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에 의해 소멸되지 않았다고 서술하고 있다.

결국 한일청구권협정 자체의 성격에 대한 양국의 규정은 크게 충돌하는 바가 거의 없다. 강제징용 피해가 청구권협정의 대상에 들어가는지에 대한 판단만이 다를 뿐이다. 이게 다른 이유는 앞서도 서술했듯 식민지배의 불법성 인정 여부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한일 양국의 과거사 문제가 불완전한 봉합 위에 서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만일 우리가 사태의 근본적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고 하면 바로 이 ‘불완전한 봉합’을 완전한 것으로 바꾸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할 것이다. 이 경우 ‘완전한 것’의 기준을 무엇으로 할 것인지가 문제이다. 요즘 논의로 보면 이 기준은 미쓰비시나 신일철주금의 배상금 지출 규모 또는 삼성의 반도체 사업 전망 등 기업의 이해관계에 달린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차원이 아니라 반전평화를 중심에 놓는 기준 마련을 위한 정치적 압력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단지 법적 책임을 요구하는 것을 넘어서야 한다. 자국 기업의 배상을 사실상 막고 있는 일본 정부가 태도를 바꿔야 하는 이유는 과거와 같은 식민지배나 태평양전쟁과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선 일본 내의 양심세력과 적극적으로 연대해야 한다. 나아가서는 동아시아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반전평화블럭을 형성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런 시도가 가능할 때만 우리는 박정희-박근혜-양승태식 해법이 위력을 발휘하는 세계관과 단절할 수 있다. 만인에게 너는 누구 편이냐 묻고 우리끼리 똘똘 뭉쳐 이겨내자고 하는 것은 근본적 해법이 될 수 없다.

김민하 / 저술가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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