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고순도 불화수소 등 반도체 핵심소재에 대한 수출규제에 이어 한국을 화이트국가 지정에서 제외하겠다고 한다. 화이트국가 제외라는 것은 쉽게 말해서 한국을 일본의 안보우방국가에서 빼겠다는 의미이다. 어떤 이유를 대든 일본의 논리는 거짓과 억지에 불과하다는 것이 증명된 바 있다.

고순도 불화수소가 북한으로 들어가 사린가스를 만드는 데 사용됐을 수 있다는 허무맹랑한 주장은 국가 차원에서 할 수 없는 질 낮은 행위였다. 일본은 부끄러움을 잃었거나 버렸다. 반도체 핵심소재 수출규제에 이어 화이트 국가에서 제외하겠다는 이유 역시도 앞선 사린가스 해프닝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이르면 다음 달 15일…"화이트리스트에서 뺀다" (MBC 뉴스데스크 보도화면 갈무리)

일본 아베정권의 이와 같은 수준 이하의 조치를 이어가는 것은 그렇게 해서라도 이번 참의원 선거를 이기겠다는 것이다. 심지어 일본의 대한 수출규제는 한국만이 아니라 일본도 피해를 받을 수밖에 없는 조치이다. 만약 한국이었다면 언론들은 정부를 향해 엄청난 비판을 쏟아냈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그렇지 않다. 언론들이 철저히 아베정권의 논리를 떠받치는 형국이다.

아베 정권이 무리한 한국 도발에 나서야 했던 배경에는 심각한 경제 이슈가 숨겨져 있다. 아베 정권 이후 일본의 일인당 구매력은 폭락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런 경제 상황은 저축하지 못하는 세대의 폭발적 증가에서 그 심각성을 발견할 수 있다. 일본 민주당 집권 당시 20대 중에 ‘저축 못하는’ 비율은 38.9%였으나 아베가 집권한 이후에는 무려 61%로 급증했다. 30대부터 60세 이상의 세대 등 전 세대에 걸쳐 저축 못하는 비율이 높게 증가한 것이다. 불과 5년 사이의 변화이다.

일본의 고민은 그뿐 아니다. 일본은 현재 심각한 연금문제에 직면해 있다. 일본 금융청은 지난 6월 ‘고령사회에서의 자산형성과 관리’ 보고서를 통해 일본 평균적인 노인부부에게 매달 55만 원 정도의 적자가 생기며, 연금 외에 별도로 2억 가량의 자산이 따로 필요하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일본 국민들의 불안과 불만은 즉각적으로 표출되었다. 그러자 일본 자민당의 대처는 해당 보고서를 뭉개는 것이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작년 10월 사이타마 현의 육상자위대 아사카 훈련장에서 열린 자위대 사열식에 참석하는 모습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아베정권이 한국에 경제적 도발을 단행한 것은 가까이는 선거 때문이다. 정당성을 잃은 정권은 본디 외부에 적을 만들어 내부의 문제를 덮고 대신 외부를 향한 공포와 증오로 지지를 넓히겠다는 전략을 취한다. 일본만이 아니라 과거 우리나라 역시 그랬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하나 남는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한국 역시 외부의 적이 명백해졌다. 그런데 같은 환경에서 일본의 집권 여당은 득을 보는데 한국은 그러지 못하다. 왜 그럴까.

언론의 차이다. 일본 언론은 아베정권의 정책에 정상적인 비판을 가하지 않는다. 오히려 앞장서 아베 정권의 논리를 정당화하기 위한 왜곡 보도를 일삼고 있다. 반면 한국의 상황은 많이 다르다.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이번 사태에 한국이 아닌 일본 정부를 두둔하는 기사를 양산하고 있다. 심지어 민간차원에서의 일본 불매운동을 폄하하고 상황을 악화시킬 것이라는 협박까지 서슴지 않는다.

KBS 1TV <저널리즘 토크쇼J>

그것도 모자라 양승태 대법원이 외교 해결을 위해 시간벌기를 했다는 주장까지 등장했다. 그 말은 정부가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을 막지 못해서 일본의 도발을 자초했다는 논리이자 망언이다. 이런 정도이니 일본에 사과하라는 말은 그들로서는 당연한 것이라 보인다. "살아있는 인간은 빼앗기면 화내고, 맞으면 맞서서 싸웁니다" 드라마 <송곳>의 대사이다. 배우 안내상이 이 대사를 하기 직전 한 대사도 다시 새길 만하다. "인간에 대한 존중은 두려움에서 나옵니다"

일본 아베정권이 우리나라를 이처럼 공격하는 데 두려움이 없는 이유가 있다. 비정상적인 도발에도 불구하고 한국에는 일본 편을 들고, 한국 정부를 공격할 우군이 있음을 알고 믿기 때문이다. 한국 언론은 그런 아베의 예상대로 움직이고 있다. 한국 언론은 자신들이 서있는 땅이 어디인지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 분명하다. 문재인 정부가 싫다는 것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배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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