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일본 정부의 경제 보복에 대해 한국 정부·사법부까지 탓하고 나섰던 조선일보가 태도를 바꿨다. 조선일보는 사린가스의 재료가 될 수 있는 불화수소를 북한에 수출한 건 일본이라고 보도했다. 해당 보도는 경제 보복의 빌미가 됐던 5월 17일자 조선일보 기사를 작성했던 기자가 썼다.

일본 정부의 경제 보복으로 한일 갈등이 확산되고 있다. 일본 정부·언론의 경제 보복의 근거는 한국이 대량 살상무기 전용이 가능한 전략물자를 북한에 유출했다는 것이다. 이는 조원진 우리공화당 의원이 제출받은 자료를 왜곡한 조선일보 왜곡 보도가 빌미가 됐다.

▲10일자 조선일보 칼럼.

조선일보는 일본의 경제 보복 사태에서 한국 정부의 대응을 문제삼아 왔다. 10일 태평로 칼럼 <일본의 경제 보복이 선거용?>에서 "대법원이 지난해 10월 징용 피해자의 개별 배상청구권을 인정한 것이 반세기 이상 지탱해온 한·일 관계의 근간을 뒤흔들어버렸다"며 "외교 조약도 최후의 결정권은 사법부가 쥐고 있다고 우기는 정부를 상대로 외교가 가능할 리가 없다"고 썼다.

조선일보는 "위안부 합의 파기를 시작으로, 욱일기 배척, 레이더 분쟁 등 적폐청산식 반일 노선을 줄기차게 펼쳤다. 일본 입장에서는 합의 사항이 계속 뒤집히는데, 다시 뭔가를 만들어낸다고 해서 지켜질 수 있다고 믿지 않게 됐다"며 "과거에는 한·일 관계가 어려워도 안보라는 공통분모가 존재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하에서 그런 공통분모는 없어지고 서로 간의 약속은 무용지물이 됐다"고 했다.

▲11일자 조선일보 4면 기사.

11일자에는 <전략물자 관리도, 해명도 '엉터리 산업부'> 기사를 게재하고 한국 정부 비난을 이어갔다. 조선일보는 "한·일 경제 갈등 국면에서 통상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가 연일 미숙한 대응을 함으로써 일본에 공격의 빌미를 주고 있다"며 "전략물자 불법 수출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실태가 일본 언론에 보도돼 '한국의 전략물자 유출'을 경제 보복의 명분으로 삼으려는 일본의 입장을 강화시켜 줬다"고 썼다.

같은 날 <기업을 최전선에 내세우면 안 된다> 사설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기업인 30여명을 불러 간담회를 가진 것도 문제삼았다. 조선일보는 "간담회가 끝난 뒤 참석자들 사이에선 '왜 불렀는지 모르겠다' '사진 찍기용이냐'라는 불만이 나왔다고 한다"며 "정말 허심탄회하게 처한 상황을 털어놓는 기업인도, 진지한 대화도 없었다고 한다"고 전했다.

▲11일자 조선일보 사설.

조선일보는 "지금 이 사태를 만든 것은 법원과 정부다. 법원은 한일청구권협정과 달리 일본 기업에 대한 개인의 청구권을 인정해 일본의 반발을 불렀다. 현 정부는 이 외교 갈등을 풀기 위해 고심한 전 정부와 법원을 사법 농단이라고 수사해 감옥에 넣었다"고 비난했다.

이랬던 조선일보의 태도가 바뀌었다. 12일 조선일보는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이 제시한 자료를 근거로 <"전략물자 불화수소, 北에 밀수출한 건 일본"> 기사를 작성했다. 해당 기사는 일본의 경제 보복 근거로 사용된 5월 17일자 조선일보 <대량 살상무기로 전용 가능한데…한국, 전략물자 불법수출 3년새 3배> 기사를 작성했던 기자가 작성했다.

조선일보는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이 11일 '일본이 북한에 불화수소 등 전략물자를 밀수출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며 "일본 아베 정부가 북한으로 불화수소가 넘어간 의혹이 있다며 한국의 전략물자 통제 체제에 대한 불신을 경제 보복의 이유로 내세우는 데 대한 '반격'이었다"고 보도했다.

▲12일자 조선일보 4면 기사.

조선일보는 "하 의원은 이날 일본의 비정부기관인 안전보장무역정보센터(CISTEC)의 자료를 공개하며 '최근 일본 일각에서 한국이 핵무기에 사용되는 전략물자를 북한에 밀수출 했을 수 있다는 식의 궤변을 늘어놨는데, 일본 측 자료에서 오히려 일본이 북한에 불화수소를 밀수출하다가 적발됐다고 나와있다'고 말했다"고 썼다.

조선일보는 "CISTEC의 '부정수출사건개요' 자료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1996년부터 2013년까지 30건이 넘는 대북 밀수출이 적발됐다. 1996년 1월 오사카항, 같은 해 2월 고베항에 입항한 북한 선박에 각각 불화나트륨 50㎏과 불화수소산 50㎏이 실렸다. 이는 사린가스나 VX 신경가스 제조에 쓰이는 물질이다. 당시 북한 선박은 '긴급지원 쌀'을 싣기 위해 입항했던 화물선이었다"고 전했다.

이어 "2003년 4월에는 '핵무기 개발 등에 이용할 우려가 있다'는 통지를 받았음에도 일본 민간기업이 세관장 허가 없이 태국을 경유해 북한에 직류안정화전원 3대를 불법 수출했다. 또 2008년 1월에는 미사일 운반 등에 전용 가능한 대형 탱크로리를 부산에 수출하는 것처럼 위장, 북한에 부정 수출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2001년 일본이 말레이시아로 밀수출한 3차원 측정기가 리비아 핵 관련 시설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말레이시아로 넘어간 3차원 측정기 가운데 일부가 재수출 과정을 거쳐 리비아로 흘러들어 간 것으로 추정됐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조원진 의원의 발언도 받았다. 조 의원은 일본 경제 보복의 근거로 사용된 조선일보 기사에 자료를 제공한 바 있다. 조 의원은 "일본이 자국의 전략물자 밀수출 자료를 공개하지 않고 있으면서 한국이 밀반출 사례를 문제 삼는 것은 불쾌한 일"이라며 "일본은 경제 보복이라는 적반하장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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