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이번 달부터 시행된 300인 이상 방송 사업장 '주 52시간 노동'과 관련해 고용노동부가 3개월 계도기간을 부여했다. 1년 간의 특례업종 유예기간에도 정책 시행 준비에 실패한 방송사업자와 이를 견인하지 못한 정부에 비판이 제기된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는 4일 논평에서 "2018년 3월 방송 노동에 역사적인 소식이 있었다. '근로시간 특례업종'에 속해있던 '방송업'이 법으로 정한 근로시간을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노동이 되었다"며 "그러나 주 52시간제가 처음으로 시행되는 2019년 7월 1일이 가까워 오자 실망스러운 소식이 들려왔다. 주 52시간제가 시행되기까지 1년이라는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3개월의 계도기간을 부여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한빛센터는 "1년의 준비기간 동안 노동자들을 대등한 존재로 상대하지 않으며 시간을 허투루 낭비한 사용자들도 문제지만, 쉽게 사용자들이 주52시간제 적용을 회피할 시간을 준 고용노동부의 조치도 문제적이기는 마찬가지"라고 했다.

지상파 3사 사옥.

실제 방송사들의 주 52시간제 정착 현황은 어떨까.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달 20일 일자리정책 관계부처 TF에 제출한 '방송업 주52시간 제도 정착 현안보고'에 따르면, 300인 이상 방송사업장 주 52시간 초과근로자 수는 3월 전체 근로자 수 10476명 중 966명(9.22%), 4월 전체근로자 수 10458명 중 934명(8.93%)이다.

초과근로자 수가 전월 대비 감소 추세를 보였고, 전체 근로자의 8~9% 정도를 차지한다는 수치는 자칫 방송사업자가 나름대로 노력을 해왔다고 해석될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 초과 근로가 취재·제작인력에 몰려있는 방송업의 특수성과 정규직만을 대상으로 수치화한 통계임을 고려하면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7월 정책 시행을 코앞에 두고 단기간에 문제 해결이 가능한 수치 역시 아니다.

초과근로자 규모를 주요 방송사(지상파)별로 살펴보면 KBS는 3월 기준 432명, 4월 422명, 5월 322명이 초과근로자다. MBC는 3월 256명, 4월 245명, 5월 178명이 초과근로자다. SBS는 3월 68명, 4월 86명이(5월 집계 안됨) 초과근로자이며 EBS는 3월 34명, 4월 36명, 5월 27명이 초과근로자다.

300인 이상 방송사업자 근로시간 현황 (2019년 4월 기준, 출처= 방통위 방송업 주 52시간 제도 정착 현안보고)

이 같은 상황에서 노사 실무협상이 마무리된 방송사는 7월이 되도록 한 곳도 없었다. 지난해 9월 지상파 방송 4사와 전국언론노조가 맺은 산별협약에 따라 각 노사가 TF를 꾸려 관련 논의를 시작했지만 유연근로제 도입 등을 놓고 7월까지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논의 과정에서는 유연근로제 중 재량근로제 도입이 화두로 올라 있는 상태다. 기자·PD·촬영감독·후반제작 등 초과노동이 일상화되어 있는 인력들에 대해 재량근로제를 포함한 유연근로제 도입이 검토되는 중인데, 언론노조는 이미 지난해부터 재량근로제가 근로기준법 개정의 취지를 무력화한다며 반대 원칙을 세워놓은 바 있다. 재량근로제는 노동시간 관리를 노동자 재량에 맡기는 제도다. 주52시간제의 노동시간 단축 취지를 무력화하고, 노동시간을 집계할 수 없어 공짜노동이 강요되는 제도라는 게 노동계의 주된 비판이다.

하지만 지난달 25일 정부는 300인 이상 총 9개 방송사업자(지상파방송4사, 채널A, YTN, CBS, TBS, TBN)를 대상으로 계도기간 신청을 안내했다. 이에 지상파방송4사, 채널A, YTN, CBS가 계도기간 신청을 같은달 30일 완료했다. TBS와 TBN은 초과근로자 수가 거의 없어 계도기간을 신청하지 않았다.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방송사들은 계도기간을 활용해 노사 합의안을 도출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재량근로제 적용 문제 등으로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KBS의 경우 회사와 언론노조 KBS본부가 선택적 근로시간제 시범 실시에 합의했으며 사측은 향후 일부 직종에 대해 재량근로제 도입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당장 KBS노동조합이 선택적 근로시간제 시범 실시에 반대하는 상황이며, 재량근로제에 대한 일부 팀 구성원들의 반발도 존재한다.

MBC는 지난 2월 노사가 '노동시간 단축 및 노동조건 개선 합의안'에 서명, 노동시간 감축과 유연근로제 도입을 병행하기로 하고 협의를 진행 중이다. 편성 개편을 통해 노동시간 단축을 유도하고, 계도기간 3개월 내 노사합의안을 도출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MBC 역시 재량근로제 도입으로 논의 방향이 흐르고 있어 "주 52시간 노동제 안착을 위한 방안 마련을 위해 회사는 최선을 다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는 내부 비판이 제기된다.

SBS는 재량근로 대상 확대와 관련해 노사협의를 추진 중이다. 언론노조 SBS본부는 "사측이 재량근무의 대폭 확대만을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다. 문제를 알고도 대안이 없다는 이유로 무턱대고 사측안을 수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SBS형 유연근무제'를 사측에 제안했다. 기존 재량근로제가 장시간 연속 노동과 공짜노동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라면, 노동시간을 정확히 측정하되 노동시간 합산단위를 3개월 범위까지 늘려 노동 유연성을 늘리고, 실제 노동시간만큼 보상이 이뤄지게 하자는 안이다. SBS본부는 해당 안을 '노조가 제시할 수 있는 양보의 최대치'라고 못박았다. SBS 사측이 재량근로제 확대 적용만을 주장할 경우 노사협의가 계도기간을 넘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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