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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일, 지정생존자’- 원칙의 정치, 권력욕 없는 사람이 풀어가는 권력 이야기[미디어비평] 톺아보기
meditator | 승인 2019.07.03 13:24

<지정생존자>는 세계적 플랫폼 넷플릭스 추천작으로 유명한 미드이다. 여기서 ‘Designated Survivor, 지정생존자’란 미국 대통령, 부통령, 정부 각료들이 취임식 등의 국정연설 동안 비상사태에 대비하여 안전시설 내에 대기하고 있는 미국 대통령 지정 순위 내 한 명을 뜻한다. 각종 자연재해, 테러, 핵 공격 등으로 대통령 및 대통령 승계자가 사망하는 비상사태 시 대통령 권한을 대행해 정부를 유지하도록 하는 안전장치이다. 

미드 <지정생존자>는 의회 의사당의 폭탄 테러로 대통령을 비롯한 행정 관료 대부분이 사망하면서, 지정생존자였던 주택도시 개발부 장관 톰 커크먼(키퍼 서덜랜드 분)이 대통령이 되며  시작된다. 그렇다면 바다 건너온 우리의 <60일, 지정생존자>는 어떨까? 미드와 달리, 앞에 수식어 60일이 붙었다. 그건 미국과 달리 우리 헌법은 대통령 유고시 60일 이내에 새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을 법으로 정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주택도시개발부 장관은 우리나라로 오면 환경부 장관이 된다. 

60일 시한부 대통령 권한대행 

tvN 월화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

카이스트 화학과 교수 출신 박무진(지진희 분). 환경과학회 미세먼지 분과에 소속된 만큼 학자 출신의 그는 환경부 장관으로서 대기오염 문제에 사명감을 가지고 임했다. 그러나, 그의 소신은 '정치' 앞에서 무력했다. 미국과의 자동차 협상 과정에서 박무진은 미국의 의견을 들어주면 그저 몇 백대가 아닌 몇 백만 대를 허용하게 되는 결과가 되며, 그는 곧 우리 대기에 치명적인 결과가 나오게 된다는 이유로 협상을 반대하지만, 못 이기는 척 봐주라는 대통령의 입장 앞에 사직서를 내밀게 된다. 

임명식에서 대통령에게 받은 불편했던 구두를 벗어놓은 채, 홀가분하게 자신이 몸담았던 대학의 후드티에 편한 스니커즈를 신고 아들과 딸을 데리러 갔던 그는 국회의사당 폭발 사고를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 견학 간 딸의 생사를 확인하러 의사당으로 갔으나 의문의 사내들에게 끌려가다시피 다시 청와대로 가고, 그곳에서 이제 자신이 60일 시한부의 대통령 권한 대행이 됐음을 알게 된다. 

그렇게 미드와 다르게 ‘시한’이 정해진 대통령 권한 대행. 하지만 다른 건 이것만이 아니다. 미드가 자국 내 정치세력 사이에 끼인, 권한 없는 대통령이라는 설정으로 갈등을 증폭시키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로 온 <60일, 지정생존자>는 강대국, 그중에서도 특히 우방이라는 이름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과, 한반도의 분단 상황을 갈등의 주요한 내용으로 등장시킨다. 

한반도 역학관계에 의거한 갈등 구도 

tvN 월화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

앞서 국회의사당에서 사망한 양진만 대통령은 북한과의 평화협정을 목전에 둔 채 사고를 당하고 만다. 그러나 이제 그 평화협정을 추진했던 대통령이 사라진 상황, 비서실장 등 양진만 대통령의 측근들은 대통령의 유지를 받들고 싶어 하지만 설상가상 북한잠수함의 행방이 묘연한 가운데, 군부와 국정원 등 실세들은 기존 '북한 위협론'을 내세우며 선제공격 등을 주장하며 위기를 증폭시키려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데프콘'을 강요하며 전시작전권을 들고 나서는 미국의 존재는 강력하다. 

국가안전보장회의의 긴박한 상황을 견디지 못한 채 화장실로 뛰쳐나와 구토를 하던 사람. 자신은 자격이 없다며 사퇴하겠다는 사람. 그런 그에게 한주승 비서실장은 위기 상황에서 정부의 붕괴를 막는 '시민'의 자격으로 권한 대행의 자리를 지키라고 한다. 모든 일은 자신을 비롯한 기존 비서실팀이 할 테니. 결국 그를 ‘정치 경험 6개월짜리’ 뭣도 모르는 애송이로 취급하는 건 죽은 대통령의 수족이나 군부나 미국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하지만 선무당이 되어버린 박무진은 예의 미국과의 협상 자리에서 본의였는지 의도적인지 모호했던, 미국 협상단에게 미세 먼지 패트병을 뒤집어 씌워 국민들의 속을 확 뚫어버렸던 그 '고지식한 방식'으로 북한잠수함 해프닝을 해결한다. 정치적 방식에 대해 사직서를 내밀 만큼 원칙적이었던 환경학자는, 각자의 정치적 입장으로 접근하는 북한잠수함 사건에 대해 예의 '데이터'에 의거한 추적으로 잠수함 침몰을 예견하고 딸의 생사를 걱정하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북한을 설득한다.

tvN 월화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

즉 <60일, 지정생존자>는 각자의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격돌하는 청와대, 군부, 미국 등 난립하는 정치세력들 사이에서 그가 환경부 장관일 때 해왔던 그 학자적 양심과 가족을 사랑하는 가장의 마음, 그리고 양진만이 부탁했던 시민의 입장이라는 '원칙'적인 인물 박무진을 드러낸다. 고지식하지만 원칙적인 인물, 위기 상황에서도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쉽게 포기하지 않는 저력을 가진 캐릭터로서 대통령 권한 대행이 풀어가는 '원칙'의 정치. 권력욕 없는 사람이 풀어가는 권력의 이야기. 가장 기본이면서도 막상 현실로 오면 배제되는 그 원칙의 이야기를  <60일, 지정생존자>가 다시 한번 끌어들인다. 

첫 회 3.383%(닐슨 코리아 케이블 전국 기준), 화제의 미드 리메이크 작으로는 박무진 권한대행만큼 갈 길이 멀다. 첫 방송 CG까지 활용했던 국회의사당 폭발 사고론 시선몰이가 약했던 것일까? 그도 아니면 박무진이란 캐릭터, 혹은 양진만이라는 대통령의 처지가 시청자들에게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 그것보다는 이미 선점한 <검법남녀> 등의 영향이 컸던 탓일까? 

하지만 예단은 이르다. 늘어졌던 박무진의 청와대 입성은, 이제 대통령 권한 대행이 되어 국가 안전보장회의에서 다리에 쥐가 나도록 북한잠수함 사건을 해결하는 2회에 들어 한층 현실감 있는 이야기로 집중도를 높였다. 과연 애송이 권한대행이 위기의 대한민국을 구하듯, <60일, 지정생존자>가 최근 지지부진한 tvN 드라마의 구원투수가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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