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가까이 논란이 된 한미FTA의 2월 처리설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작년 12월 말 이명박 차기 대통령과 노무현 현 대통령의 회동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그리고 아직은 여당인 통합신당의 손학규 대표가 한미FTA 지지입장을 공개리에 천명했고 차기 여당 한나라당 역시 여기에 반색을 표한 바 있다. 사실 노무현 대통령, 이명박 차기 대통령, 통합신당 그리고 한나라당에 이르기까지 한미FTA에 관한 한 일색이다.

이명박 정부의 정부조직개편안을 두고 '졸속'이라 투덜대던 청와대도, 참여정부식 '졸속'의 대명사라고 할 한미FTA에 와서는 입을 다문다. 잊을 만하면 뜬금없이 ‘진보’를 외워대던 노무현 정권, 한미FTA가 노무현식 진보의 무덤이었음에는 애써 모르쇠다. 한미FTA에 관한 한 정권교체는 없다. 하지만 노무현식 '좌파' 신자유주의가 이명박식 진짜 신자유주의로 바뀌었듯이, 굳이 찾으라면 한미FTA 대국민 프로파간다의 최일선에 서있던, 그래서 나중에는 '영혼'이 없다던 국정홍보처가 아무도 슬퍼하지 않는 죽음을 맞이한 정도다.

사실 17대 국회에서건, 차기 18대 국회에서건 한미FTA가 국회를 통과할 것은 자명해 보인다. 그나마 17대 국회에서는 김태홍 의원을 대표로 약 80여명의 여야 의원들이 국정조사를 요구하면서 나름대로 결집되어 있지만, 차기 국회에서 그 세가 과연 얼마나 유지될지 현재로서는 미지수다. 노무현 대통령으로서는 조중동이 인정하고, 한나라당도 적극 지지하는 '유일한(!) 업적'인 한미FTA의 임기 내 처리를 원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 2008년 1월 11일 조선일보 사설

차기정부나 한나라당의 입장에서도 적잖은 갈등이 예고되어 있는 이 사안을 현 정부가 설거지까지 하고 나가 준다면 참으로 금상첨화이리라. 외교통상부와 재계 쪽은 한미FTA가 빨리 안 돼 큰일 난다는 식의 황당한 논리를 설파하기에 여념이 없다. 특히 이들은 한미FTA를 한국측이 선비준해야 하는 이유를 자질구레한 경제적 이유 이외에, 우선 미 의회의 조기비준동의를 압박(!)하고 나아가, 있을 지도 모를 미 민주당측의 재협상요구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작년까지 부시 정부는 페루, 파나마, 콜롬비아, 한국 등 4개국과의 FTA를 체결한 상태였다. 이중 체결 순서에 따라 미-페루FTA는 작년 11월 의회의 승인을 받았다. 미-페루FTA만 하더라도 미 시민사회의 치열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의회를 통과한 것은, 이해관계를 둔 미 관련 업계의 로비와 무엇보다 펠로시 하원의장을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 및 힐러리, 오바마 등 대권주자의 동의, 그리고 미 노조의 묵인에 기인한다. 하지만 파나마, 콜롬비아 그리고 한국과의 FTA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미-파나마FTA만 하더라도 파나마 국회의장이 미군병사 살해혐의로 미국 내에서 수배중인 이유로 그의 면책특권이 소멸되기 위해서는 올 해 9월 회기만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황당한 문제가 있다. 그래서 지금 당장 부시행정부의 관심사는 미-콜롬비아FTA에 쏠려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누구보다 미 노조가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콜롬비아에서 일상화된 노조 활동가에 대한 폭력과 테러이다. 노조측은 콜롬비아에서의 이러한 상황이 개선되고, 콜롬비아의 노조지도부 살해범들이 법정에 설 때까지 '최소 1년'동안은 미 의회에서의 비준동의 표결이 연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당장 연말 대선을 앞둔 민주당의 대권주자들로서는 최대의 고객가운데 하나인 노조측의 이러한 주장을 결코 무시할 수가 없다. 그래서 클린턴, 오바마를 비롯한 민주당의 대권주자와 당 지도부 역시 미-콜롬비아FTA의 심의 연기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는 수출을 통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미국의 경제불안을 상쇄해 보고자 하는 부시행정부로서는 나머지 3개의 FTA에 대한 의회승인을 가급적 올해를 넘기지 않고 해결하기를 원한다. 즉 FTA를 통한 미국상품의 수출증대를 통해 서브프라임 위기를 넘겨보자는 말이다.

▲ 한겨레 12월 29일자 1면 기사
FTA를 둘러싼 부시와 민주당이 장악한 의회와의 힘 싸움은 현재 미-콜롬비아FTA에 집중되어 있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3개의 FTA는 모두 미 무역촉진법(TPA)의 적용대상이다. 이 가운데 가장 나중에 체결한 한미FTA 협상 역시 무역촉진법의 적용을 받게 하기 위해 매우 무리한 일정에 따라 진행되었음은 익히 잘 알려져 있다. 이 법에 의하면 일단 미행정부가 관련 FTA 이행법안을 미 의회에 제출하면 의회는 제출일로부터 90일 이내에 수정 없이 가부만을 표결해야 한다. 그리고 한번 의회에서 부결되면 그 해당 FTA는 즉각 폐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에 하나 부시행정부에서 나름대로의 표계산 결과, 민주당 지도부의 반대의사에도 불구하고 이행법안을 제출할 경우 어떤 일이 생길까?

이와 관련 최근 1월 18일자 로이터통신의 보도는 무역촉진법에 따른 이른바 신속절차(fast track)란 “통상협상 심의를 위한 의회내 규정(rule)”이라며 “의원들이 그러기를 원하든지 또는 특정 FTA에 대해 신속절차 적용을 배제하고자 한다면 절차 변경을 투표로 결정할 수 있다”는 입법절차 전문가의 말을 전했다. 즉 “상하양원에서의 절차를 다루는 부분은 입법권의 행사에 해당되고 또 다른 입법을 통한 변경에 종속되는 것”이라는 말이다. 한마디로 민주당 지도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무역촉진법에 의거 FTA 법안이 의회에 제출된다면, 의회 다수파는 이 절차 규정 자체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이래저래 한미FTA의 미래는 의회를 장악한 민주당 지도부의 전략에 따라 요동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부시가 체결한 4개의 FTA가운데 가장 마지막에 처리될 한미FTA와 관련해 이러한 미국 내 논란이 의미하는 함의를 짚어 보자.

▲ 1월 22일자 경향신문 3면 기사
첫째, 한미FTA는 현재 민주당 지도부를 비롯해 힐러리, 오바마, 에드워즈 등 주요 대권주자 모두가 반대한다. 물론 이 내부에도 상당한 온도차가 있다. 예컨대 힐러리, 오바마 등은 특히 자동차부문 재협상을 강하게 요구하는 실용적 접근을 취하는 반면, 에드워즈 등은 좀 더 원칙적인 '공정무역'론에 입각한 반대론에 가깝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미FTA가 당장 미 의회를 통과할 가능성은 현재로선 낮다.

한미FTA가 미 대선정국에서 정치적 쟁점이 될 지도 모를 상황에서 그렇다면 한국국회가 선비준 동의를 한다면, 이에 자극받은 미 의회가 한미FTA를 조기 비준할까? 이는 여론의 다수가 자유무역에 등을 돌리고 심지어 공화당의 허커비 후보마저도 NAFTA형 자유무역협정을 조롱하고 있는 미국 내 분위기를 전혀 읽지 못하는 ‘우물안 개구리’식 몽상에 다름 아니다.

둘째, 부시행정부로서는 FTA 등 통상협상의 연내 의회통과는 수출증가를 통한 서브프라임 위기관리의 일환이다. 아주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가 목매지 않아도 부시행정부 역시 국내정치적 이유에서 FTA에 접근한다. 그런 의미에서 미 상원 재경위원장인 민주당의 맥스 보커스가 쇠고기 생산주(비프 벨트)의 이익을 대변하면서 연령불문, 부위불문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을 한미FTA 비준동의 조건으로 내걸고, 노무현 정부가 이를 결국은 수용하는 것은 개념도 전략도 내팽개친 잘못된 외교의 전형이다. 말로는 국익을 운운하지만 통상외교를 부시를 위한 자원봉사로 만드는 것에 다름 아니다. 만일 한국 국회가 선 비준동의를 한다면 부시는 이를 통해 국내정치적으로 민주당을 압박하는 카드로 이용하고, 또 그 과정에서 미 의회 내 사정을 핑계로 노무현 정권을 압박해 쇠고기 전면 개방 같은 엄청난 실리를 챙길 수 있게 된다.

셋째, 힐러리 또는 오바마 등 미 민주당이 집권할 경우 한미FTA 재협상논란은 불가피할 것이다. 쇠고기를 내주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음은 자동차다. 한미FTA 협상 막바지에 확인된 것처럼 미국은 한국 내 자동차 내수시장의 일정 몫을 보장해 줄 것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 국회가 선비준한다고 재협상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보는 것은 노무현정부의 환상일 뿐이다.

▲ 경향신문 1월 22일 3면 기사

당장 미-페루FTA는 페루 의회가 비준동의한 이후에 재협상해서 협정문을 변경했고, NAFTA 당시에도 그러했다. 만에 하나 민주당 지도부입장에서 자신들의 입장이 관철되지 않을 경우, 새로운 입법을 통해 한미FTA만을 무역촉진법 적용대상에서 배제할 수도 있다. 만일 미국에서의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고 난 뒤, 민주당 행정부가 자동차 재협상을 내걸고 이명박 정부를 압박한다면, '한미공조'를 기치로 내건 차기정부가 과연 어떻게 나올까?

요컨대 한미FTA가 한국 국회가 선비준하더라도 그로부터 기대되는 이익은 현재로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즉 미 의회비준이 가속화될 일도 없고, 미국의 혹 있을 지도 모를 자동차 재협상 요구가 차단되는 것도 아니다. 더구나 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해 미국의 경기불안이 예고된 조건에서 한미FTA를 좀 빨리 한다고 해서 그 무슨 대미 수출이 급증할 일도 없다.

한미FTA의 미래가 미대선의 결과에 이미 연동되어 있는 만큼, 현재로서 그나마 한국 국회가 취할 수 있을 상책은 우선 경거망동하지 말고, 미대선의 추이를 면밀히 모니터링하는 일이다. 만일 미대선이 끌날 때까지 한미FTA가 미 의회에서 논의될 가능성이 없다면, 우리 역시 먼저 움직일 이유는 없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현재 국회에 제출된 한미FTA 국정조사를 충실히 하는 것이야 말로 국회가 마땅히 먼저 해야 할 역할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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