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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선 넘어 시베리아의 로맨스를 꿈꾸다[여해, 바다와 같아라]
백종훈 원불교 교무 | 승인 2019.07.01 09:38

[미디어스] “시베리아의 로맨스라도 꿈꾸는 거야?” 

시베리아 횡단열차(TSR)를 타고 한국에 가겠다는 나를 두고 기숙사에서 한 솥밥 먹던 여자 교무님들이 못 말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필라델피아 시내에서 자동차로 삼십 분 거리의 아담한 마을 글랜사이드에는 ‘Won Institute of Graduate Studies’라는 작은 대학원이 있다. 원불교학 석사과정을 밟으며 이년 반을 지냈다. 서른 후반의 나이든 유학생에게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가까스로 졸업시험을 통과했다. 

영어에 서툴러 말이 없던 나는 미국인들에게 무척이나 수줍음 많은 학생이었다. 2015년 8월 졸업식에서 학생 대표 연설을 마치자, 수요선방에 나오시는 유대인 할머니가 다가와 이렇게 말을 잘하는 줄 몰랐다고 놀라워하셨다. 사실 원고를 통으로 외웠다. 곧장 짐을 싸서 교화 실습지로 이동했다. 워싱턴교당, 뉴욕교당에서 각각 한 달을 배우고 국경을 넘어 캐나다 밴쿠버교당에 도착했다. 
    
한국행을 일 개월 앞두고 시베리아 횡단열차 표를 구하는 일이 급했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TSR 예매 웹사이트에서 영어를 지원해 줘 안심했다. 그런데 결제가 안 됐다. 한국 신용카드, 미국 데빗카드 둘 다 막혔다. 미국의 러시아 경제제재 때문이라 추측했다.
   
부랴부랴 굴랴에게 도움을 청했다. 굴랴는 ‘원광 세종학당’ 학생으로 지난 유럽배낭 여행 때 모스크바교당 소개로 알게 되어 모스크바 시내 안내를 해줬었다. 일단 그녀가 대신 기차표를 사기로 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 전쟁 이후 루블화 가치가 폭락했던 터라 부담 없이 1등석 승차권을 샀다. 

시베리아횡단열차(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밴쿠버에서 모스크바까지 가는 직항은 없었다. 먼저 런던 히드로공항에서 갈아타고 헬싱키 반타공항에 내려 유로호스텔에서 하루 묵었다. 길거리에서 만난 거의 모든 이들이 금발에 하얀 피부, 푸른 눈을 가진데다 하나같이 나보다 한 뼘 이상 컸다.  

이튿날 다시 비행기를 탔다. 모스크바 공항에 굴랴가 마중 나왔다. 기차 티켓을 확인하고 값을 치렀다. 그리고 같이 장을 봤다. 기차여행 동안 먹을 간식과 음식을 마련했다. 모스크바에서 이틀을 보내고 드디어 야로슬라브스키역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올랐다. 

1등석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둘이 마주 앉는 형태인데 각 객실은 서로 독립되어 있다. 동행할 이는 누굴까? 닫힌 공간에 단 둘이다.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이내 수염이 덥수룩한 사나이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간단한 눈인사를 나눴다. 

냉전시절 서방진영에 속한 한국인들은 자연스레 영어를 국제공용어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 시절 동구권의 국제어는 러시아어였다. 비록 동서냉전이 무너진 지 오래라지만 영어를 중립어 삼아 말문을 트기는 쉽지 않았다. 

서먹한 침묵을 깬 건 그였다. 휴대전화를 꺼내 구글번역기를 돌렸다. 워낙 땅이 넓다보니 인터넷이 되는 곳은 간간히 지나는 역 부근으로 제한되었다. 그의 이름은 ‘니키틴 이반 세르게예비즈’. 멋진 수염은 러시아정교회의 영향이라고 했다. 나와 동갑내기로 에너지자원 저장탱크와 파이프라인을 건설·관리·연구하는 업체의 CEO였다. 아내와 아이들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하는 가정적인 남자이기도 했다. 

차창 밖 가난한 풍경을 보며 공산주의를 비판하던 그는 손에 쥔 ‘삼성 갤럭시 엣지’ 스마트폰에 담긴 기술을 무척이나 경이로워했다. 석유, 석탄, 가스, 목재 등을 싣고 반대방향으로 향하는 열차행렬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는 러시아의 자원과 한국의 기술이 더 많이 결합되어야 한다고 힘주어 거듭 강조했다. 

침엽수림과 자작나무 숲, 눈 덮인 평원이 드넓게 펼쳐졌다. 차량 복도 끝 온수기에서 물을 받아 비스킷에 곁들여 홍차를 마셨다. 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잠들었다. 철로를 따라 ‘철컥 철컥 철컥’ 잔잔한 자장가 선율이다. 

모스크바와 종착지 블라디보스토크 사이의 시차는 7시간이다. 전 지역에서 모스크바 시각을 표준시로 하기에, 하루에 한 시간씩 일출 시각이 당겨졌다. 동으로 동으로 하염없이 동토(凍土)를 달렸다.

영화 ‘러브 오브 시베리아’의 아름다운 장면 장면이 떠오르는 동시에, 1937년 연해주 한인들이 횡단열차에 짐짝처럼 실려 중앙아시아로 끌려갔다는 역사도 잊지 않았다. 홍범도 장군은 광복을 2년 앞둔 1943년 끝내 조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카자흐스탄에서 눈을 감았다.  

바이칼 호수를 곁에 둔 이르쿠츠크역을 지났다. 날씨가 포근했다면 일박하면서 송어요리를 즐겼겠지만 다음을 기약했다. 꼬박 삼일을 더 가서 종점 블라디보스토크역에 도착했다. 11월 13일부터 19일까지. 6박 7일 9,259km의 긴 여정이었다. 역사(驛舍)에 발 디디자 다리가 후들거렸다. 찬바람이 매섭게 몰아쳤다.

강원도 동해항으로 가는 바닷길이 있지만, 마지막은 하늘길을 선택했다. 공항 가는 길 주변 여기저기에서 각종 공사가 한창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를 동북아시아 물류거점으로 키우겠다는 푸틴 대통령의 의지가 엿보였다. 

블라디보스토크 신공항은 산뜻하고 웅장했다. ‘2012년 9월 APEC 정상회의’를 준비하면서 새로 지었다고 한다. 같은 해 봄에 이용했던 시골 버스터미널 같이 허름한 옛 공항을 추억으로 밀어버렸다. 
 
인천행 비행기를 기다리며 눈을 감았다. 아메리카대륙 동태평양 연안 밴쿠버를 떠나 유라시아대륙 서쪽 끝 런던을 거쳐 모스크바에서 마침내 동단(東端)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너무나 많은 것을 눈에 담았고 또 많은 감정과 기억의 찌꺼기를 마음에서 덜어 길에 놓아 흩어버렸다.

2시간 10분을 날아 영종도에 착륙했다. 남북대치가 아니었다면 육로를 통해 나진과 평양, 개성을 지나 서울에 왔을 터이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분단 66주년이 다 되어가는 2019년에 이산가족마저도 자유롭게 오가지 못하는 그 길이 일개 필부에게 허락될 리 만무했다.   

1948년 4월 19일 김구와 아들 김신(오르쪽), 비서 선우진(왼쪽)이 평양에서 열린 남북 지도자 연석회의에 참여하기 위해 38선을 넘고 있다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까지 국방군과 유엔군, 인민군과 중공군은 38선을 넘나들며 죽고 죽였다. 정전 이후에는 숱한 남북의 형제들이 북파공작원이나 무장공비가 되어 목숨을 걸고 휴전선을 넘었다. 많은 이들은 살육과 분노로 피범벅이 된 그 선은 절대로 지워지지 않으리라 여겼다. 그 문은 결코 열리지 않으리라 절망했다.  

하지만 오랜 나날 끊겼던 그 길이, 그 길을 막고 있는 거대한 문이 훈풍을 맞아 바야흐로 열리려 한다. 닫힌 문이 열리면 그 길을 따라 사람과 물자가 남북으로 이동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해묵은 경험과 기억, 편견에 의해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건 반목과 갈등도 불거질 것이다. 동포 간 불화를 조장하거나 이용하는 세력도 분명 있을 것이다. 

백범 김구 선생은 “마음속의 38선이 무너지고야 땅 위의 38선도 철폐될 수 있다”고 ‘백범어록’에서 말씀하셨다. 우리는 각자의 마음속에 알게 모르게 새겨진 38선을 알고 있을까? 더 굵고 짙게 긋고 있지는 않나? 그 선 위에 벽돌을 쌓고 있지는 않는가? 

새로운 시대는 위정자들의 선언에 더불어 우리네 마음속 38선이 무너지고서야 비롯되리라 믿는다. 마음속 38선이 지워진 그 길 위로 마음이 열린 사람과 사람들이 인간의 도리를 지키고 정을 건네는 윤기(倫氣)가 흐르길 희망한다. 윤기(倫氣)가 한반도를 넘어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지르기를 기도한다.

시베리아의 로맨스. 그제야 시작이다. 


옛날 어느 곳에서 형제가 조실(早失) 부모를 하고 집을 나서 멀리 헤어졌는데 묘하게 한 마을에서 살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작별한 지가 오래인지라 형제인 줄도 모르고 서로 사이가 좋지 못하더니 하루는 극하여 죽도록 싸우고 나서 한 사람이 묻기를 “도대체 당신 고향은 어디며, 어찌하여 여기까지 왔소.”하니, “나의 고향은 영광군 백수면 길용리인데 조실부모를 하고 이렇게 왔소.” 이 말을 듣던 사람이 “나도 역시 그렇소.”하고 자세히 알고 보니 수십 년 전에 서로 눈물을 머금고 헤어진 형제였더라, 그러하니 여태껏 싸운 것을 속 아프게 뉘우치고, 이때로부터 새로운 윤기(倫氣)를 맺고 화목하게 살았다 한다. 이와 같이 우리가 개인과 개인끼리 싸우고 사회와 사회끼리 반목하고 국가 간에 전쟁하는 것도 다 우주의 한 동포형제인 줄을 모르는 연고라 마치 철모르는 아이가 저희 집 살림을 때려 부순 격이다. 그러니 우리는 하루속히 만법(萬法)이 하나로 돌아가는 성품(性稟) 자리를 보아 우리의 일가(一家)를 찾고 천지·부모·동포·법률이 없어서는 살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 새로운 윤기를 건넬 것이며, 이리하여 원수를 은혜로 돌려 감사생활을 하면 사방이 툭 터져서 한 없이 넓고, 만일 원망생활을 하면 이 세상이 바늘 꽂을 데가 없이 좁을 것이다. <원불교 대산2집 1부 교리 : 원만평등한 세계건설>

 

 

백종훈 원불교 교무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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