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C <뉴하트> ⓒMBC
대학병원 흉부외과를 배경으로 다양한 이야기들을 흥미롭게 펼쳐 보이고 있는 MBC 수목미니시리즈 드라마 <뉴하트>(황은경 극본, 박홍균·이민우 연출)가 시청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의학드라마 불패론'을 이야기할 정도로 <뉴하트>에 대한 시청자들의 관심이 뜨거운 것은 이 드라마가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병원의 긴박감 넘치는 상황을 '눈물'과 '웃음'으로 버무려내면서 의학드라마 특유의 장점을 제대로 살렸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많다.

그런데 과연 정말 그러할까? 어쩌면 2007년 한국형 의학드라마의 새로운 전형을 개척한 것으로 평가받은 <하얀거탑>과 <외과의사 봉달희>의 장점만을 취하면서 전문직 드라마로서 의학드라마의 미래에 독으로 작용할 가능성은 없는 것일까?

의학드라마를 즐겨보았다면 곰곰이 생각해보자. <뉴하트>에는 있는데 <하얀거탑>에는 없는 것, <뉴하트>에는 있는데 <외과의사 봉달희>에는 없는 것은 무엇일까?

첫 번째는 '사랑'이고, 두 번째는 '권력을 둘러싼 암투'이다. <뉴하트>는 흉부외과 레지던트 '이은성(지성 분)'과 '남혜석(김민정 분)' 그리고 톱스타 '이동권(이지훈 분)'을 중심으로 '성장과 사랑' 이야기를 펼쳐 나가는 한편, 흉부외과 과장 '최강국(조재현 분)'과 병원장 '박재현(정동환 분)'의 대립을 중심으로 '병원 조직 내의 권력 암투'를 다루고 있다. 이처럼 의사들의 성장과 사랑, 그리고 병원 조직 내의 암투를 적절하게 배합한 이야기 구조는 <뉴하트>의 장점일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기존 의학드라마의 성과를 안일하게 답습함으로써 전문직 드라마의 싹을 자르는 칼날이 될 수도 있다.

2007년의 기억을 떠올려보자. <하얀거탑>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의학드라마'를 표방했던 기존의 드라마들이 받았던, "병원에서 의사들이 연애하는 이야기"라는 비아냥거림에서 벗어나 인간의 내면을 날카롭게 파헤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록 기록적인 시청률은 아니었지만, 병원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 비열한 행위도 마다하지 않는 '장준혁 과장'의 행동 하나하나가 시청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면서 사회 현상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었다. 만약 <하얀거탑>에 '사랑' 이야기까지 접목되었다면, '장준혁 과장 신드롬'은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외과의사 봉달희> 역시 흉부외과 레지던트 1년차 '봉달희(이요원 분)'가 지방 의과대학 출신이라는 편견을 극복하고 전문의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생동감 있게 그리면서 좋은 평가를 받은 의학드라마이다. '봉달희'가 전문의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함께 다뤄진 '사랑' 문제는 자칫 심각하고 무거운 이야기로 흐를 수 있는 이야기의 흐름을 조절하면서 의사의 인간적인 면모를 돋보이게 만들었다. <외과의사 봉달희>는 이렇게 기존의 권위적이고 위압적인 이미지의 의사에 대한 편견을 지우면서 '의학'과 '사랑'이 결합된 인간적인 의학드라마로 평가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 SBS <외과의사 봉달희> ⓒSBS
그런데 <뉴하트>는 어떠한가?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병원 조직 내의 권력 다툼은 <하얀거탑>에서, 레지던트들의 사랑 이야기는 <외과의사 봉달희>에서 차용한 듯한 혐의에서 벗어나기 힘들지 않을까? 흉부외과에서 최고 실력을 자랑하는 <뉴하트>의 '최강국'은 <하얀거탑>의 '장준혁'과 닮아 있고, '꼴통'이란 소리를 들으면서도 굽힘없이 끊임없는 노력과 열정으로 흉부외과 전문의가 되고자 노력하는 '이은성'은 <외과의사 봉달희>의 '봉달희'와 닮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과 높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뉴하트>의 작품성을 좋게 평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하트>는 뛰어난 실력의 남성과 우유부단한 성격의 여성을 대비하던 기존의 멜로드라마적인 공식을 버린 드라마로 고정관념으로 굳어있던 성 역할에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한 드라마이다. 남혜석이 뛰어난 실력으로 수재로 등장하고, 이은성이 열정만을 앞세우는 '남성 캔디'라는 설정이 대표적이다. 원칙대로 환자를 대하는 남혜석과 의사이기 전에 따뜻한 가슴을 가진 인간으로서 환자를 대하는 이은성의 대립과 갈등은 이를 잘 보여준다. 하지만 이 같은 새로움은 어느새 멜로드라마의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돌아간 남혜석이 이은성에게 "너 때문에 아프고, 여자이고 싶다"라고 절규하는 장면 때문에 좀 더 두고 볼 필요가 있다.

▲ MBC <하얀거탑> ⓒMBC
누군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분명 흥미로운 경험이다. '이은성'과 '남혜석'의 성장과 '최강국'의 변모를 지켜볼 수 있다는 점에서 <뉴하트>는 분명히 매력적인 드라마이다. 그런데 그것을 보여주는 과정에서 극적 긴장감을 유발하기 위해 개연성이 부족한 상황을 남발하는 것은 드라마에 대한 몰입을 방해할 뿐이다.

예를 들면 드라마 초반부에 레지던트 면접에서 떨어진 남혜석이 여성의 인권 운운하며 시위하는 것이나 남혜석의 초등학교 동창이자 톱스타인 이동권의 병원 입원, 그리고 재계와 정계 실력자 수술을 둘러싼 갈등 상황으로 인간적인 의사와 비인간적인 의사의 이분법적인 대립 구도를 만들어내는 것이 대표적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사건들이 자극적으로 되풀이되고 있다는 점이다. VIP 환자를 우선시하지 않고 돈 없는 서민을 위해 의술을 베푸는 행위는 분명히 인간적이다. 하지만 이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 식상할 수밖에 없고, 등장인물의 캐릭터는 진부하게 정형화될 우려가 크다. 앞으로 남은 방영분에서 이 같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의학드라마 <뉴하트>가 '작품성'과 '시청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지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하얀거탑>에는 없는데 <뉴하트>에는 있고, <외과의사 봉달희>에는 없는데 <뉴하트>에는 있는 것이 전문직 드라마의 미래에 '약'이 될지 '독'이 될지 좀 더 두고 볼 필요가 있다.

윤석진 교수는 2000년 여름 한양대에서 <1960년대 멜로드라마 연구-연극·방송극·영화를 중심으로>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2004년 가을 <시사저널>에 '캔디렐라 따라 웃고 웃는다'를 발표하면서 드라마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김삼순과 장준혁의 드라마공방전> <한국 멜로드라마의 근대적 상상력> <한국 대중서사, 그 끊임없는 유혹> 등의 저서와 <디지털 시대, 스토리텔러로서의 TV드라마 시론> <극작가 한운사의 방송극 연구>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현재 충남대 국문과에서 드라마 관련 전공 과목을 강의하면서 한국 드라마의 영상미학적 특징에 대해 연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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