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도우리 객원기자] 의회 권력 지도를 가를 21대 총선이 1년도 채 남지 않았다. 언론에서는 총선 구도 및 민심의 흐름을 좌우할 변수들을 가늠하는 기사들을 앞다투어 쏟아내고 있다. 그런데 이번 총선에서는 역대 총선과 달리 새롭게 부상한 변수가 있다. 바로 ‘젠더’다.

이전까지는 ‘청년층’으로 한 데 묶이던 20대 유권자들이 젠더라는 변수로 갈라지게 되었다. <시사인>에서 이른바 ‘20대 남자 현상’으로 분석할 정도로 20대 남성의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눈에 띄게 하락했지만, 20대 여성 유권자들은 ‘혜화역 시위’나 ‘강간약물 카르텔 규탄 시위’에서 정부를 비판하면서도 문 대통령에 대해 높은 지지를 나타내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여야 할 것 없이 ‘젠더’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페미니스트 대통령’ 선언부터 바른미래당의 ‘워마드’ 척결 행보, 그리고 얼마 전 패스트트랙 정국 때 문희상 국회의장의 한국당 임이자 의원 성추행 논란이 대표적이다.

사실 ‘젠더’는 새롭게 추가된 변수가 아니라, 항상 존재했던 ‘상수’였다. ‘여소남대(女小男大)’, 아니 ‘여점남대(女點男大)’라고 할 만큼 국회 권력지도는 ‘중산층 중년 남성’으로 과잉대표 되어왔다. 그나마 국회에 입성한 여성 의원들조차 ‘토큰 여성(명목상의 여성)’의 역할을 떠맡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강남역 10번 출구 살인사건으로 촉발된 ‘페미니즘 리부트’와 ‘미투(#MeToo)’ 정국을 맞이하며 ‘젠더’라는 상수가 새롭게 부상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도 ‘아재 독식 정치’, 즉 성평등이 이슈가 될 수 있었다.

지난 12일 여성미래센터에서 한국여성단체연합의 주최로 제 1차 성평등포럼 '젠더와 권력' 토론회가 열렸다(사진=미디어스)

지난 12일 여성미래센터에서 열린 제 1차 성평등포럼 <젠더와 권력>에서는 이러한 젠더와 권력의 관계를 재사유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의 주최로 열린 이날 포럼에서는 정치권에서의 백래시와 할당제(비레대표제)를 둘러싼 쟁점, 여성대표성 확대를 위한 선거제도 개혁 과제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다.

‘20대 남성 현상’과 백래시

첫 번째 발제 ‘백래시에 올라탄 정치’를 맡은 신경아 한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미국 저널리스트 수전 팔루디의 ‘백래시(backlash)’ 개념으로 지금의 정치를 진단했다. 신 교수는 먼저 기존 정치에서 ‘청년세대’ 담론으로 묶였던 20대가 ‘젠더’ 전선에 따라 분열했다고 설명했다. 신 교수는 “이전까지 20대의 정치의식은 중도나 무관심이 다수였으나 최근 20대 여성들이 강남역 살인사건, 미투 고발 격변기를 통과하며 진보로 이동하게 되었다”고 했다. 이에 대해 “20대 여성의 경우에 젠더 의식이 정치 의식을 견인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풀이했다.

반면 신 교수는 ‘20대 남성 현상’이나 정치권에서의 여성혐오에 대해서는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 현상으로 규정했다. ‘백래시’란 수전 팔루디가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정부가 들어선 뒤 청년 남성의 보수화 및 반(反)페미니즘 현상을 페미니즘에 대한 ‘반격(backlash)’이라고 진단한 이론이다. 팔루디는 특히 이 ‘반격’이 1970년대 미국을 휩쓴 페미니즘 제 2물결 이후 찾아온 것에 주목했다. 신 교수가 백래시란 “여성들에게 주어지는 모든 공격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일정 성숙 단계에 접어들었을 때 발생하는 ‘반격’”이라고 설명한 이유다.

나아가 신 교수는 이러한 백래시의 감정적 토대를 철학 용어 ‘르상티망(Ressentiment, 원한)’에서 찾았다. 신 교수는 “20대 남성들의 분노 현상은 분개(resentment)가 아니라 ‘르상티망’이다. 분개는 불공정하게 대우받고 있다는 감각에서 형성되는 도덕적 감정이자 정의에 대한 판단이다. 반면 ‘르상티망’은 인정받지 못할 때의 감정이다. 복수심이 중요한 토대가 된다. 욕망하는 것의 가치를 인정하는 대신 처음 욕망한 것의 가치를 전도시켜 버리는 신포도, 허위의식”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이진옥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는 ‘20대 남성 현상’을 반페미니즘으로 규정하는 것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정치적 전략이라고 주장했다. 페미니즘에 대한 반응들 자체가 범주화해야 하는 젠더 정치의 지형이라는 것이다. 그는 “페미니즘에 대한 동의 여부를 성폭력 처벌의 문제로 묻는다면 남자들도 그렇게 반대 경향이 높지 않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의 백래시 : 할당제

두 번째 발제 ‘정치혐오와 여성혐오의 교차로에서 멈춰 선 할당제’를 맡은 이 대표는 “백래시가 이제 본격적으로 한국사회에 왔다는 것은 곧 정치영역으로 왔다는 것이다. 그 전에는 정치와 젠더 이슈 관련 없다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젠더 관점에서) 권력을 재사유할 시기가 왔다. 그 주제가 작년 2018년 지방선거 때는 성평등이었고, 지금 21대 총선을 앞두고는 할당제라는게 정설”이라며 할당제에 초점을 맞춰 여성 정치에 대한 논의를 이어갔다.

이 대표는 먼저 현재 우리나라에서 할당제가 비례대표제에만 안착된 배경을 밝히면서, 할당제가 항상 다른 제도와 맞물려 존재해왔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 대표는 2004년 정치개혁 당시 국회에서 IMF 이후 국민과의 고통 분담 취지로 내놓았던 26석의 지역구를 되찾기 위해 여성과 할당제를 내세웠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당시 15대 국회에서 ‘(전체 의원수 대비 여성 의원 수가)3%도 안된다. 이건 너무 국제적인 수치다. WTO(세계무역기구) 가입까지 했으니 국제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활동해야 한다’라고 이야기하며 할당제 확대를 주장했다. 그러면서 의원정수 확대라는 카드 매만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정개특위에서 할당제를 강제할 방법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당시 이재오 위원장이 ‘그런 일 없다’고 했다. 의원 정수 299석 원래대로 회복할 때 여성을 팔아먹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비례대표 축소는 곧 여성대표성 저해

이 대표는 비례대표 축소는 곧 여성대표성 저해라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여성은 기본적으로 비례대표로 국회에 진입한다. 이번에 한국당 나경원 의원에게 (선거제 패스트트랙 반대에 대한)대안을 내놓으라고 하자 (내각제)개헌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며 자기가 들어온 경로, 사다리 걷어차기를 했다. 20대 여성 국회의원 중 83%가 비례대표로 진입했다. 추미애, 백혜련, 손혜원 의원 등의 예외 빼고 비례대표는 여성의 제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어 “여성(의원)은 한 번이라도 삐끗하면 안 된다. 반면 남성들은 동아줄이 많이 작동한다. 비례대표 남성의원을 기억하는 사람 없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할당제에 대한 국민적 반감은 여성이 낙인화되는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여성의원들의 생존 방식 : ‘막말’의 계보

이 대표는 최근 여성의원들의 막말의 수위가 높아지는 것 역시 여성의원들의 생존 방식이자 백래시 현상으로 분석했다. 그는 “여성의원들의 필살기가 무엇인지 아느냐. ‘막말’이다. 남성 의원들의 막말은 효과가 덜하기 때문이다. 김현아 자유한국당 의원은 비례대표 맨 마지막 문을 닫고 들어갔던 건축 전문가인데 한국당에서 유일하게 탄핵을 찬성했던 인물이다. 그리고 최근 ‘한센병’ 막말을 했다. 김현아 의원이 한국당 의원들에게 사과의 편지를 쓴 그 다음 문재인 공격수 역할을 받은 것이다. 지금 한국당에서 막말하는 여성의원들은 전여옥 의원 계보다. 민주당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여성이 공격수 역할 하지 않으면 그 여성 다시 공천받기 어려운 구조”라고 비판했다.

또 이 대표는 여성의원의 당선 경쟁력도 과소평가되었다며 “역대 선거 투표율이 증가 추세인데, 상승폭이 큰 주체가 20대 여성이다. 오마이뉴스에서 <비례초선 여성의원의 재발견>이라는, 필리버스터를 기록한 책 나왔는데 그것을 가장 많이 구매한 층이 20대 여성이다. 이전에도 하이힐 부대, 나꼼수 비키니, 유모차 부대, 촛불 소녀 등 여성들의 정치참여 현상이 나타나고 있었다”라며 “선거 변수에서 성 변수는 중요하다. 수도권에서 여성의원 나왔을 때 당선 가능성 2.4배 높아졌다. 이는 급속한 여성들의 투표율 상승, 특히 20대 여성이 견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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