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소송 아닌 조선일보사 주요 주주 지분 변동 등이 걸려

삼성 비자금 조성 의혹과 서해안 유조선 원유유출 사고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정권 인수 작업에 가려 세간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는 중요한 소송 사건이 있다.

사건의 겉만 보면 흔히 있는 상속재산분할 청구소송이지만, 원고와 피고 등 당사자와 사건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 결과에 따라 언론계와 법조계 안팎에서 만만찮은 파문과 관심을 불러일으킬만한 사건이다.

우선 핵심 당사자가 조선일보사와 사주들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부에 계류 중인 사건(들)의 개요는 이렇다.

▲ 지난 22일 오후 6시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방우영 조선일보 명예회장의 회고록 <나는 아침이 두려웠다> 출판 기념회. 왼쪽에서 네번째가 조선일보 방우영 명예회장이다. ⓒ곽상아
‘밤의 대통령’으로 불리며 박정희 전 대통령과 요정을 드나들며 언론계 황제처럼 군림했던 고 방일영 조선일보 전 회장과 세 번째 부인(혼외) 사이에서 난 2녀 1남의 자식들이 친자확인 소송을 거쳐, 조선일보사 주식을 비롯한 상속재산(유류분반환) 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피고는 (주)조선일보사와 방상훈, 방용훈 형제 등도 포함

피고는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과 방상훈 사장의 장남인 방준오 조선일보 기자도 포함돼 있다. 물론 주식회사 조선일보사도 피고로 들어있다. 원고들은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과 방용훈 코리아아나호텔 사장의 ‘배가 다른 동생들’이다.

지난 2005년 1월 시작돼 3년 째 진행 중인 이 소송은 현재 방상훈 사장 등 피고들이 고 방일영 전 회장으로부터 조선일보 주식 등 상속받은 재산이 법정상속권을 초과해 상속인들인 원고들의 ‘유류분’을 침해하였으니, 원고들의 상속분(유류분) 만큼의 부동산과 주식을 돌려달라는 것이다.

이 소송의 핵심 쟁점 중의 하나는 방상훈 사장 등이 소유한 조선일보 주식이 고 방 전 회장으로부터 증여받은 것인지, 매입한 것인지다. 방 사장은 2001년 탈세혐의로 구속기소돼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증여받았다고 답변했고, 2003년 10월 열린 6차 공판에서 본인 외 임직원 명의로 소유하고 있는 주식(11.45%)도 선대(先代) 때부터 명의신탁을 해 온 것이라고 진술했었다.

방 사장의 진술대로라면 회사 고위 임직원 명의로 된 주식지분의 경우도 고 방 전 회장의 것이기 때문에 원고에게도 상속분을 줘야 한다는 것이 원고들의 주장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난해 6월 방 사장이 탈세혐의에 대한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은 뒤, 유류분 반환 재판 과정에서 “돈을 주고 샀다”고 입장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방 사장은 매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매매계약서나 영수증 혹은 주주명부 등 어떤 자료도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방 사장 등이 아버지인 방일영 전 회장으로부터 주식과 재산 등을 증여 받았다면 법정상속분을 초과하기 때문에 유류분 반환요구가 가능하지만, 모두 매입한 것이라면 원고의 청구는 성립되지 않게 된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법리를 따질 때가 아니다.

우선 이 사건의 원고측 증인으로 채택된 방우영 조선일보 명예회장은 오는 30일 예정된 증인신문을 위한 재판에 출두할 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이미 두 차례의 증인소환을 거부한 바 있는 방 명예회장은 세 번째 증인소환장을 받은 상태다.

방계성 전 부사장은 이미 증인신문 마쳐

방 명예회장과 함께 증인으로 채택된 방계성 전 조선일보 부사장은 지난 해 법정에 출두해 증인신문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소송 사건의 내용도 장난이 아니지만, 당장 관심거리는 크게 세가지다.

첫째, 방 명예회장이 이번에도 증인소환을 거부할 것인가다.

2003년 8월 8일 80세로 작고한 방일영 전 회장은, 나머지 형제와 가족들의 상속권 포기를 전제로,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7월 경 실종한 것으로 보이는(조선일보는 납북이라고 주장함), 조부인 조선일보 창업주 방응모에 대해 1957년 실종신고를 하고, 1979년 서울가정법원의 실종선고 심판 확정에 따라 호주(戶主) 상속을 하여 조부가 가지고 있던 조선일보사 주식을 비롯한 거의 전 재산을 물려받은 바 있다.

이를 토대로, 이후 방일영 회장은 동생인 방우영과 함께 조선일보를 소유, 경영하다가 장남인 방상훈에게 대부분의 주식과 경영권을 넘겨주게 된다. (별표 조선일보사 주주명부 참조)

▲ 조선일보사 주주명부

그런데 ‘형님이 뿌린 씨앗’ 때문에, 1989년 5공화국 언론청문회 출두를 제외하고는 한번도 법정 근처에 가 본 적이 없는 방 명예회장으로서는, 비록 피의자나 피고의 신분이 아니지만, 장조카 가족과 조선일보사가 피고가 된 사건에 증인으로 출두해 신문을 당한다는 것이 여간 곤혹스런 일이 아닐 수 없을 것 같다.

게다가 방 명예회장은 지난 22일로 만 80세가 된 고령에다 두 번째 회고록인 ‘나는 아침이 두려웠다’ 출판기념회를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를 비롯한 각계각층 지도급 인사 1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치룬 직후다.

방우영 명예회장의 증인 출두를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은, 그가 만약 법정에 출두해 진술할 경우, 어떤 식으로 어떤 내용을 진술할 것인가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고 방일영 전 회장, 주식 등 재산 임직원 등의 명의로 차명관리

조선일보사의 주식을 포함한 거의 모든 재산에 대한 소유권은 형님인 방일영 전 회장의 이름으로 가지고 있거나, 일부 주식 등을 (직계)가족과 친인척 그리고 회사 고위 간주들의 이름을 빌려 차명관리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 번째 부인의 자식들인 원고 3명이 방상훈 사장을 제외한 나머지 형제 자매를 포함한 8명의 이름으로 차명관리해 온 주식의 8분의 3을 돌려달라는 것이다.

방상훈 사장과 작은 아버지 방우영 명예회장 사이 갈등 소지도

둘째, 이 소송 사건과 결과는 말할 것도 없고, 재판 진행 과정에서 방상훈 사장과 작은 아버지인 방 명예회장 사이에 미묘한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 ⓒ 미디어스
그동안 고 방일영(方一榮) 회장과 방우영(方又榮) 명예회장 형제는 그 이름이 보여주듯 둘도 없는 형제애를 자랑해 왔고, ‘집안싸움과 파벌이 없는 회사’로 방일영 전 회장의 전기인 ‘激浪 六十年: 方一榮과 朝鮮日報’ 등에 기록할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 뿐이 아니다. 평소 방우영 명예회장은 형님을 아버지처럼 모시고 두려워했다고 입버릇처럼 말해 왔다.

게다가, 방 명예회장 입장에서는 원고들에 의해 부인 이선영씨와 외아들 방성훈 (주)스포츠조선 전무마저 피고로 민사소송을 당한 상태다.

따라서 장조카이자 최대주주인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등 직계가족이 원고인 배다른 형제들과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기를 바라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방 명예회장 세 번째 증인출석 거부시 재판부 대응도 주목거리

셋째, 방 명예회장이 세 번째 증인소환마저 응하지 않을 경우, 담당 재판부가 취할 입장이다. 원고들이 재판부에 과태료 부과를 요구할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강제구인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담당 재판부도 보통 난처할 것 같지 않다. 법과 원칙대로 하면 그만이지만, 우리의 현실이 어디 그런가.

그리고 조선일보가 어떤 회사인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언론사 중의 하나이고 어떤 정권도 두려워한 족벌언론왕국의 대명사 아닌가.

이미 조선일보의 위력은 2001년 탈세 관련 형사재판 진행 과정에서 입증(?)된 바 있다. 동아일보 김병관 전 회장은 2005년 6월 10일 탈세 관련 대법원에서 유죄확정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은 이 보다 1년 뒤인 2006년 6월 29일 대법원에서 회삿돈을 횡령하고 세금을 포탈한 혐의(조세범 처벌법 위반 등)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벌금 25억원을 선고받았다.

또 흥미로운 것은 법원을 출입하는 많은 언론사 기자들이 이 소송 사건을 거의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법원이 ‘중요사건의 접수와 종국 보고’에 관한 재판예규(제1174호)를 적용하지 않고, 이 사건을 ‘중요사건기일표’에 포함시키지 않아 법원 기자실 등에 이 소송 사건 자체가 공지되지 않았던 것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방우영 명예회장의 증인 출석 여부와 향후 재판부의 행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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