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사원의 94.9%, 주임‧대리급은 98%, 과장급 89.7%, 우리 사회 직장인들의 평균 95%가 '번아웃 증후군'을 경험한다고 한다. '타버리다, 소진하다'는 뜻의 번아웃 증후군은 일에 몰두하는 사람이 마치 에너지가 방전된 것처럼 갑자기 무기력해지는 증상을 나타내는 심리학적 용어로, 2019년 세계보건기구는 '번아웃 증후군'을 만성적인 직장 스트레스로 정의 내렸다.

6월 3~4일에 걸쳐 2부작으로 방영된 EBS <다큐프라임>은 만연해가는 번아웃 증후군에 대처하는 방법을 다양하게 모색해 본다. 바로 <휴식의 기술>이다.

당신은 일이 아니다, 번아웃 사회

EBS <다큐프라임> ‘휴식의 기술’ 편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일하던 알렉스 수정 킴밤은 일주일에 50~60시간씩을 일하다 번아웃에 이르렀다. 일하는 시간이 많기도 했지만, 해도 해도 자신이 하고자 하는 업무를 미처 다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늘 시달렸다. 무한 경쟁사회에서 자신이 맡은 일, 그리고 고객을 응대함에 있어 최선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언제든 누군가 그 자리를 대체할 수 있다는 강박이 과로를 당연하도록 만들었다. 알렉스만이 아니다. 일을 다하고 쉬어야지 하지만 일을 다하는 것이 불가능한 시대, 사람들은 항상 일을 하고 있다.

광고대행사를 운영하고 있는 47세의 강준구 씨는 20년 직장생활 동안 신혼여행을 제외하고는 3일 이상 휴가를 써본 적이 없다. 휴가를 가도, 집에 있어도 그는 늘 일하는 중이었다. 한 해 동안 열심히 달린 것 같지만 해가 바뀌면 마치 택시미터기를 0으로 꺾듯이, 마라톤이어야 할 인생 여정에서 100m 달리기를 420번 하듯 달려온 시간. 결국 그의 몸이 자신을 공격하는 '자가면역공격'을 당하고야 만다. 재수학원에 붙여졌던 '오늘 쉬면 내일 뛰어야 한다'던 문구가 바로 자신들 세대를 대변한다고 입을 모으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중견 직장인들.

IT업계의 프리랜서 40세의 차경묵 씨의 책상 위에 타이머가 놓여 있다. 20분 돌아가고 울리는 벨, 그는 5분을 쉬고 다시 타이머를 돌린다. 그렇게 타이머 8바퀴에서 16바퀴로 돌아가는 일상, 만약 자신에게 갑자기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아이가 생기고 나서 가장이라는 중압감이 프리랜서라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지난 몇 년간 개운하게 잠을 자본 적이 없다. 연달아 마시는 커피로 반수면 상태에서 일을 해왔다. 자신의 몸에게 미안해졌던 상황, 결국 호흡 곤란이 왔다. 쉬며 자기 자신을 돌보라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17살에 IT업계에 들어와 20년 동안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다. 아니 자신을 위해 시간을 쓸 줄 몰랐다는 게 그만이 아니라 그와 동종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소회이다.

명상하는 물리학자로 알려진 미나스 카파토스는 오늘날 현대인들은 재능은 많지만 행복하지는 않다고 단언한다. 과도한 경쟁체제 속에 놓인 사람들, 미나스는 반문한다. 그 경쟁을 만든 사람이 누구냐고, 바로 우리들 자신이 아니냐고. 더 많이 가져야 행복할 것 같은 강박, 목말라 죽어가는 현대인들 앞에 물 한 컵과 1억 원이 놓여있다면 과연 무엇을 선택할까? 라고 그는 묻는다.

휴식이 필요한 사람들, 휴식을 주는 사회

EBS <다큐프라임> ‘휴식의 기술’ 편

과로사회의 상징적인 나라 같았던 일본. 저출산으로 노동 인구가 줄며 상대적으로 일하는 세대의 노동 하중량이 늘어났다. 그와 함께 휴식에 대한 갈망이 다양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최근 도쿄에서 새로운 휴식법이 등장했다. 사람이 흰 보자기 위에 앉아있으면 도우미가 그를 보자기로 감싸고 동여매기 시작한다. 이른바 성인 보자기, 오토나마키이다. 따스한 엄마 자궁에서 놓여난 아기들에게 엄마 자궁과 같은 환경을 제공하려 속싸개로 꽁꽁 싸매듯 어른들을 싸매고 뉘여 준다. 그렇게 한참을 자고난 사람들은 모처럼 숙면을 취했다며 편안해 한다. 보자기에 동여매져서야 숙면을 취하게 된 현대인들.

이런 '휴식 산업'만이 아니다. 2019년 노동법을 개정하며 초과 근무를 제한하고, 동일노동 동일임금제를 취하는 등 일하는 방식에 대한 사회적 시각의 변화를 '법'으로 반영했다. 정부만이 아니다. 기업들도 휴가와 휴식에 주목하고 있다. 과거 무조건 많이 일해야 한다던 방침에서 변화하여 충분한 휴식과 휴가가 외려 기업의 생산성을 높여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변화의 움직임이 반영되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워케이션', 업무차 간 출장 과정에서 개인에게 휴가의 시간을 제공하는 식으로 일과 휴식을 함께할 수 있도록 일정을 배려해 주기 시작했다.

도쿄에서 건설 컨설턴트로 일하던 쿠리야마 타카시. 역시나 번아웃을 경험한 그는 30살이 될 때가지 자기 삶의 연표를 그려봤다고 한다. 30살이 될 때까지 하고 싶었던 일보다 할 수밖에 없었던 일을 해오며 살아왔던 삶. 그래서 그는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자신이 해오던 일에서 벗어났다. 카이야마 밸리 위성 사무실에서 귀촌한 동료들과 함께 마을 일을 하고 있는 수나다 리사 역시 마찬가지다. 도시생활에서 늘 피로감을 느끼던 그녀는 철 따라 피고 지는 꽃을 보며 살아가는 지금이 바로 나답게 살아가는 삶이라, 행복하다 자부한다.

하지만, 모든 도시인들이 쿠리야마나 수나다처럼 자신이 하던 일을 그만 둘 수는 없다. 자신이 하던 일을 계속하면서 '번아웃 증후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없을까?

휴식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마음 챙김

EBS <다큐프라임> ‘휴식의 기술’ 편

자신이 하던 일로부터 탈출할 수 없는, 혹은 탈출하고 싶지 않은 직장인들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의외로 간단한 해결 방법이 있다. 그저 하루 적게는 5분에서 10분만 투자하면 된다. 바로 '명상을 통한 마음 챙김'이다.

미국의 실리콘밸리에서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40세의 김미루 씨. '빠르게 실행하라'는 슬로건의 회사에서 그녀 역시 5년 전 번아웃을 경험했다.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회사에 들어가고, MBA를 밟고 승진을 해왔던 시간들. 남들이 보기에 좋다는 걸 얻기 위해 자신을 바쳤던 시간을 지나며 '이렇게 살아도 되나'라는 우울감에 한없이 빠져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로부터 5년이 흐른 후 그녀는 달라졌다. '해커톤(해킹과 마라톤의 합성어, 일과 관련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도출하고 비지니스 모델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일상화된 생활에서도 거뜬하다. '명상'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는 여유를 얻었기 때문이다. 또한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사내에서 직원들과 함께 '마음 챙김'의 시간을 가지며 스트레스의 반복인 업무적 긴장감을 풀어낸다. 이렇게 명상에서 시작된 마음 챙김은 이제 식생활로 이어져 건강한 삶의 토대가 되고 있다.

EBS <다큐프라임> ‘휴식의 기술’ 편

어번 리저널 공원에서 열린 마라톤 대회에 참석한 구가야 아키라 씨는 정신과 의사이자 뇌 과학자이다. 하루 10시간 환자들과의 상담 등 정신노동에 집중하는 그에게 마라톤이라는 육체적 강도가 높은 운동은 정신적 피로를 풀어내는 과정이 된다. 또 하나 그에게 중요한 스트레스 해소 방식은 바로 '명상'이다. 명상을 통해 뇌를 휴식하게 만든다. 집의 기둥에 해당되는 뇌를 활성화시키는 핵심 회로인 DMN(defalt mode network)는 멍한 상태이거나 휴식을 취할 때 활발해지는 뇌의 영역이다. 명상과 같은 과정을 통해 뇌는 휴식을 취하면서 자신이 받아들였던 정보를 기억으로 축적하고 강화한다. 또한 감정 인식과 감정 기억을 좌우하는 불안과 우울도 가라앉게 된다.

심지어 캘리포니아 대학의 앨리사 에델 박사에 의하면 명상에 의해 세포 속 염색체를 보호하고 덮개 역할을 하는 텔로미어가 길어지고 활성화된다고 주장한다.

타인에 대한 연민, 그런데 내가 치유됐다

EBS <다큐프라임> ‘휴식의 기술’ 편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던 차경묵 씨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함께 1박2일 라이프 쉐어를 하기로 했다. 함께한 사람들은 저마다 고민의 화두를 가지고 있다. 가지고 있던 핸드폰과의 잠시 이별인 ‘디지털 디톡스’로 시작된 모임. 익숙한 것과 거리 두는 시간을 가지고 대신 그 시간 동안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사람을 만나는 게, 심지어 전화조차도 두렵다며 자신의 속 이야기를 꺼내든 차경묵 씨. 얘기 나눌 상대가 마땅치 않다던 그가 '신뢰할 수 있는 익명'의 사람들에게 허심탄회하게 자신을 꺼내든다.

그런데 자신에 대한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그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상대방에게 공감하고 조언을 했을 뿐인데 '나 자신'이 치유되는 느낌이라고 하는 참여자들. 무슨 이유 때문일까?

그 이유를 스탠퍼드 대학의 '연민과 이타심 연구 센터'의 제임스 도티 박사는 '연민'에서 찾는다. 일찍이 달라이 라마는 '연민을 가질 때는 이기적이어도 괜찮은 유일한 시간'이라고 했듯이, 타인을 돌보고 친절하게 대할 때 정작 그 혜택이 나에게 돌아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연민이란 무엇일까? 관계의 동물인 인간은 나와 다른 사람 사이에 교감이 모자라면 ‘냉담’이 되고, 지나치면 ‘전염’ 상태가 된다고 한다. 이 두 상태가 지속되면 번아웃에 빠질 위험이 높아지는데, 나와 타인 사이의 적절한 교집합이 바로 '연민'과 '공감'이다.

하지만 그 시작은 '자신'이다. 우선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것, 자신의 말을 잘 듣는 것, 자신을 위한 휴식을 갖는 것. 스스로에 대한 저항을 멈추는 명상의 시간을 통해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과 상대해서 무슨 이득이 있다'고 하는 연민의 상태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휴식의 기술>은 '번아웃'을 피해갈 수 없는 현대인들을 위한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과학적인 지침서이다. 또한 '번아웃'을 조장하는 사회에서 도망갈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구명보트'이자, 휴식할 줄 모르는 사회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휴식할 줄 모를 것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자구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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